[Opinion] 프란츠 카프카의 <성>을 읽고 - 소설과 연극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3.0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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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아마 중학교 국어 시간에 카프카에 대한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변신>을 읽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줄거리와 결론, 징그러운 잔상만이 머릿속에 남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강력한 힘에 저항해도 이길 수 없는 상태, 카프카적’이라는 단어가 싫었고 고독과 외로움을 항상 안고 지낸 그에게 거부감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노력’으로 그가 틀렸음을 보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현실에서 차츰 잊히고 나는 성인이 되어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사실 카프카에 대한 적개심보다 두려움과 겁이 앞섰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조금은 깨달아서였는지 ‘나의 신념이 틀렸고 우리 사회는 정말 카프카가 말한 세상일까?’라는 두려움으로 책도 읽고 국립극단의 연극으로도 만나보았다. 그를 만나는 동안, 나는 왠지 모를 껄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책의 내용과 그것이 구현된 연극으로 내가 사는 세상과 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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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펼쳐지는 연극의 매력



우선 나는 책을 읽고 연극을 보면서 각종 무대 장치들이 작품에 몰입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함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 덕분에 몰입이 잘되어 극이 끝난 뒤 그들의 세상과 지금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무대는 칙칙한 색의 문들이 한 5층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내가 정말 그 굳게 닫힌 문들 앞에 서 있는 것 같아 막막함을 느꼈다. 더구나 객석 1층 중앙 맨 앞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나는 극이 시작하기도 전에 무대에 압도당했다. 또한 공연 시작 전부터 강한 바람 소리가 들리고 흰 조각들이 객석에까지 날려서, 극이 시작되면서 자연스레 K와 함께 추운 겨울날 외딴 마을에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인물의 행동 출발점이 되어주는 문을 통해 다양한 공간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무대를 보면서 나는 성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무대의 높은 곳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극에 나오는 인물들 중 가장 성에 가까운 사람인 클람 국장의 비서 에어랑어는 4층에서 등장하고, 연락비서 뷔르겔은 3층, 마을 촌장과 교사는 2층에서 등장한다. 클람 국장과 연인관계였던 프리다와 고용된 K도 2층에 등장하기도 한다.


무대의 높은 곳에서 등장할수록 관객들은 그 인물을 올려다보게 되므로 큰 위압감을 느낄 수 있고 조명 장치도 이를 더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성에 가까운 사람들이 다른 마을 사람들보다 신분이 높거나 더 잘 사는 것처럼 느꼈고, 마을 사람들이 가진 정체 모를 경외심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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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을 사람들의 기분에 공감해가면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보다 더 풍부한 감정을 느끼고 극을 이해해갔다. 이 ‘성’을 이데아로 보고 사람들이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성과 연줄이 있는 사람을 곁에 두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성에 직접 가기는 꺼린다. 이런 마을 사람들의 이상한 가치관이 이데아에 다가가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실천계획을 세우지 않는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싶지만 노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이기적인 면이 다양한 인물들에서 나타나는데, 결국 그들은 현실인 회색빛 구렁텅이를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부족해 보였고 꾀죄죄한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어둡고 해진 옷을 입고 걸음걸이, 머리 스타일, 말투, 표정, 성격 등에서 하나씩은 모자란다. 인물의 겉모습을 보면 성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정장을 입는 식으로 차려입었지만, 우리 시선에는 그들에게서도 엉성한 느낌이 났기 때문에 그들조차도 이데아에 다가가지 못했음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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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원색의 코트를 입으며 자신의 색을 뽐내던 K조차도 마지막엔 쓸쓸하게 길가에 쓰러져 눈에 덮인다. 결국 그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절망스러운, 회색빛 칙칙한 ‘인간 파멸’을 맞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연극의 무대장치나 의상 등 연출이 내가 마을 사람의 기분을 공감하며 그들에 대해 더 자세히 깊게 생각해보게끔 도와주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그들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우리 사회의 ‘성’



카프카의 <성>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무엇인가 이루려 노력하지만 어떠한 강력한 힘으로 막힐 때가 있다. 그 힘이 정치 권력이든, 돈이든 물리적인 힘이든 우리는 분명 무엇인가 한계에 부딪혀 절망하면서 살고 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인간존재의 가치를 눈에 보이고 수치로 평가되는 학력과 재산 등으로 인정받으려고 애쓴다. 그렇게 살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 의문을 가져 회의감과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없어졌음을 느낄 때, 자괴감으로 이어져 인간 파멸에 이르게 된다. 나는 이것이 자살이나 범죄 등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로 세상에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 현대사회의 이면을 19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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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극을 보기 전 겁이 났던 이유도 정확히 알게 되었다. 바로 나도 인간 존재의 가치를 상실해가는 K처럼 어릴 적의 나의 이데아를 잊어가며 현실에 순응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말 그대로 수동적으로 점점 ‘카프카적’ 인생을 살고 있던 것이다. 내가 마을 사람들처럼 되는 것을 겉으로는 외면하고 있었지만, 나의 내면에서는 느끼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껄끄러움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해, 그리고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진정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이 시대의 어두운 인간관계와 인간 존재의 가치에 대한 좋은 소설을 만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다소 어려워 보이고 어두운 작품들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느끼고 있는 거부감 같은 감정이 오히려 나를 돌아보게 하고 좋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내가 알아보지 못했던 카프카의 진가를 조금이나마 깨달은 것은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할 소설과 작가를 찾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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