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여전히 떨리고 두려운 우리에게

이 글이 삶의 꽃이 되어 이따금 위로가 되어주길
글 입력 2019.03.0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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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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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어떤 장르건 영화를 볼 때마다 꼭 하는 오랜 습관이 있다. 일단 한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화에 대한 평론가의 글을 몇 편이고 찾아 읽는 것이다. 그중 마음에 드는 글을 하나 발견하면, 그제야 비로소 그 영화를 제대로 보았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그 글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부터 영화평론가들을 동경하기 시작했고, 이내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영화 취업은 판타지다.”



스물한 살, 전공 교수님과 상담할 기회가 있었다. 영화 일을 하고 싶다는 내 말에, 교수님은 “영화 취업은 판타지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뒤로는 남들 앞에서 영화 일을 하고 싶단 말을 하지 않았다.


겉으로 내비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영화로 글을 쓰는 일을 꿈꿨다. 그래서 영화 수업과 글쓰기 수업을 모조리 수강했다. 대학교 3학년 때, <비평적 글쓰기>라는 수업을 들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수업에서 최종적으로 B+를 받았다. ‘이 50명 안에서 겨우 평균이라니, 나 정말 글쓰기에 재능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좌절했고, 이때부터 영화평론가라는 꿈을 스스로 덮어둔 채 모른 척 외면했다.




뭐가 되고 싶냐고요? 모르겠어요



그 뒤로는 남들이 졸업 후 뭐 할래 물으면, 막연히 마케터나 기획자가 되겠다고 둘러댔다. 실제 그 분야로 공모전도 참가하고 이력서도 제출했다. 운 좋게 대기업 1차 면접에 붙었을 때, 이러다 덜컥 붙어서 평생 이 일을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상상을 했다. 끔찍했다. 하나도 즐거울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2차 면접은 아예 안 갔다. 그날 면접을 안 간 것에 후회는 없었지만, 한편으론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학교의 취업상담센터를 찾아갔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졸업 후 어떤 진로를 희망하는지 물었고, 역시 마케터나 기획자 쪽 생각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왜 그렇게 자신이 없냐고 하셨다. 할 말이 없었다. 일단 지금까지 해 온 활동들을 정리해보라기에,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한 활동들을 표로 정리해서 드렸다. 선생님은 그 표를 보자마자, 혹시 영화나 글쓰기에 관심 있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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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듯이, 내 이력은 온통 영화와 글로 가득 차 있었다. 전공의 영화 수업뿐만 아니라 부전공인 시각정보디자인 수업에서도 나는 영화를 제작했고 영화를 소재로 소논문을 썼다. 예술영화관에서 1년 동안 리뷰단으로 활동하며 평론집을 발간하기도 했고, 영화 블로그를 5년 동안 꾸준히 운영해왔다. 졸업 직전 학기에는 취미로 단편소설집을 독립 출판했다.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이쪽으로 진로를 선택할 생각은 안 하냐고 하셨다. 말문이 막혔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고,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씀으로 상담이 끝났다. 집에 와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책장에 꽂혀있는 세상에 단 50권밖에 없는 내 책을 꺼내 들었다. 몇 달을 붙잡고 쓴 글인데도 낯설게 느껴졌다. 천천히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눈물이 났다. 이거, 나잖아.




날 위로한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 소설 <비꽃>은 좋아하는 일에 대한 재능이 없다고 느낄 때, 주인공이 겪는 갈등을 그린 이야기다.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지만 어떤 사건으로 작곡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꿈을 포기한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창작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처음 보여줬을 때, 주위에서 다들 혹시 이거 네 얘기냐고 물었다. 그땐 가수를 꿈꾸는 것도, 주인공이 남자라는 것도 나와는 거리가 먼데 왜 나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이건 그냥 지어낸 이야기일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까, 그 청년은 그냥 나였다. 재능이 없어서 좋아하는 일을 포기한, 안타까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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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꽃’은 오랜 가뭄 끝에 한두 방울씩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트라우마로 인해 오래 방황하지만, 결국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가수를 꿈꿨던 그 시절이라는 걸 깨닫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어쩌면 나는 해답을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조금은 용기 내어 좋아하는 일을 해도 된다는 걸. 그래야 비로소 행복하다는 걸. 날 위로한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억지로 원하지 않는 직무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했을 때, 그토록 자기소개서를 쓰는 게 힘들었던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영화를,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니 오랫동안 답답하고 불편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편해졌다. 의욕이 샘솟고 활기가 돋았다. 사는 게 재밌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주저 없이 도전했다.




꿈을 향한 도전의 시작,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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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아시안 필름마켓에서 일을 해서, 국내외 영화계 종사자들과 직접 대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에겐 용기 내어 말도 걸고 친해지기도 했다. 그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고, 미래 저들 틈에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영화제 기간 내내 ‘아, 행복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다음으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었다. 문화예술에 대해 내 의견을 자유롭게 쓰고, 내 이름에 ‘감히’ 에디터라는 수식을 달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아직도 합격 메일 받은 순간이 생생하다. 십년지기 고향 친구가 서울 놀러 왔다가, 내가 합격메일 받은 걸 함께 기뻐해 줬다. 메일을 열람한 게 버스 안이어서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대외활동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아트인사이트는 꿈을 향한 도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4개월이 흘렀다. 처음엔 글 쓰는 게 어려웠다. 여전히 내 글에 자신이 없었고, 상대적으로 훌륭한 다른 글에 기죽기도 했다. 하지만 주 1회 기고를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항상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고, 그로 인해 내 삶이 풍성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분명 내 글쓰기 실력도 향상되고 있다. 요즘 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것 같다.


에디터 활동 마무리와 동시에, 앞으로는 문화리뷰단이라는 이름으로 꿈을 향한 여정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사실 여전히 떨리고 두렵다. 하지만 다신 공허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은 나에게 지금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스스로 용기를 주는 글이다. <비꽃>이 그랬던 것처럼, 이 글이 내 삶의 꽃이 되어 이따금 위로가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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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책을 한 권 읽었는데, 지금 내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을 주는 글귀를 발견했다. 그것으로 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진짜로 할 수 있을까?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감히

그것을 목표로 할 수가 있겠어’하고 떨리고 두렵다면

지금 바로 용기를 내서 그것을 하세요.

나는 그것 때문에 성장합니다.

설령 실패를 하고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더라도요.


- 혜민, <고요할수록 빛나는 것들>



여전히 떨리고 두려운 나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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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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