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날이다. 유달리 춥지 않던 시시한 겨울도 이제는 끝이 나고, 문틈으로 스며드는 햇살엔 봄기운이 완연하다. 독일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어가던 작년 10월 무렵. 여전히 머릿속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막연하게 기자와 평론가 같은 직업을 떠올리면서. 그러던 중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평소 음악, 책, 영화 등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글쓰기를 좋아하던 나였기에 망설임 없이 지원을 결심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맘껏 풀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고, 잘 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재밌을 것 같았다. 지난 시간들을 찬찬히 돌아보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시작하게 된 4개월간의 에디터 활동. 그 시작과 끝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
![[크기변환]무제-6.jpg](http://www.artinsight.co.kr/data/tmp/1903/7624a588b4b1cc89d7f2e53b9a3f412e_CfEdOswNNWwbWkxgH.jpg)
늘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좋아하는 음악, 영화, 아티스트 그리고 다녀왔던 공연과 전시, 또는 일상의 하루에 대해. 고등학생 무렵 새롭게 블로그도 만들었지만 나는 늘 망설이기만 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막상 글을 올리면 너무 부끄러웠다. 솔직한 생각을 담은 일기를 올렸다가 이내 삭제하거나 이웃 공개로 돌려버리곤 했다. 남의 시선을 참 많이도 의식했던 거다.
생각과 고민이 너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한 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 내게 찾아온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은 나를 변화시켰다. 수북이 먼지가 쌓여있던 보따리를 하나 둘 풀게 만들었고, 그간 꽁꽁 숨겨두었던 것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게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맘껏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블로그에도 나만의 이야기와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크기변환]무제-2.jpg](http://www.artinsight.co.kr/data/tmp/1903/7624a588b4b1cc89d7f2e53b9a3f412e_AJNIZTEiFCmn2Q6N.jpg)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도 글을 쓰고 싶어 했던 걸까? 단순히 '좋아서'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말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툰 나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어째 말로는 내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기분이었고, 때로는 표현이 서툴러 의도치 않은 오해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이건데, 자꾸 이상하게 그 주변만 맴돌곤 했다.
이렇게 소심한 내가 글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당당했다. 글과 함께라면 수다쟁이가 되어버렸다.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고민할 때, 또는 무언가 떠오를 때면 노트를 펼치거나 메모 앱을 켜고 줄줄이 써 내려갔다. 한번 일기장을 펼치면 쉽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뭐 그리 쓸 말이 많냐며 묻는다. 글은 내게 일종의 해방구였던 것 같다. 복잡한 머릿속을 깨끗하게 정리해주고, 현실을 버티게 하고 나를 편안하게 보듬어줬다.
#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를 소개받고, 초대도 받아 풍성하게 향유할 수 있었다. 음악, 영화, 책을 넘어 전시, 연극, 뮤지컬 등으로 관심 분야가 넓어지기도 했다.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선도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그동안 문화예술을 단순히 좋아만 했었다면, 이제는 문화예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관련된 이야기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크기변환]무제-1.jpg](http://www.artinsight.co.kr/data/tmp/1903/7624a588b4b1cc89d7f2e53b9a3f412e_bZtBgqYNBPuRBiSgrxjB.jpg)
그동안의 과정이 마냥 쉬웠던 건 아니다. 평소에도 미루기 대장이었던 나는 늘 마감에 시달렸고, 신청했던 문화 초대의 프리뷰와 리뷰를 작성하느라 바빴다. 글을 쓰는 걸 좋아했지만 이렇게 꾸준히 공적인 글을 쓰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조금은 낯설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글쓰기와 문화예술을 좋아했기에 시작했던 에디터 활동이다. 애정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게 두렵지 않고, 전보다 넓은 관점으로 문화를 바라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문화예술을 아주 많이 좋아하고, 여전히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번 활동으로 글쓰기에 대한 열망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그동안 내게 문화예술은 그저 가장 좋아하며 관심 있던 분야였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이 분야에서 일을 해나가고 싶다.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다채로운 문화를 소개해주며 시야를 넓혀준 아트인사이트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있잖아, 여기서 일 년 전 이때쯤에 우린 세계 일주에 대해 말했고 캣파워를 듣고 있었지."
글의 마지막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김사월의 노래로 마무리하고 싶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은 내게 정말 각별하고도 특별하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지원서에 제출했던 글 중 하나도 김사월에 대한 글이었다. 수험생 시절을 비롯해서 어른이 된 지금도 그녀의 노래는 내게 건네진 따뜻한 한 줌의 위로다. 삶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날들의 반복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가 있기에 하루를 견뎌낼 수 있다.
작년 11월 방문했던 김사월의 단독 공연에서 나는 자주 웃었고 조금 울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김사월님을 만나 얘기를 했을 때, 나는 어쩐지 울먹거렸던 것 같다. 덕분에 그동안 얼마나 위로를 받았고 힘이 되었는지 횡설수설 얘기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번 2019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그녀의 앨범 <로맨스>가 최우수 포크 음반으로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
![[크기변환]KakaoTalk_20190228_145653449.jpg](http://www.artinsight.co.kr/data/tmp/1903/7624a588b4b1cc89d7f2e53b9a3f412e_4OaTJZdB4.jpg)
불행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행복을 얘기하는 김사월의 노래처럼, 삶에 보다 의연해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고, 순간을 살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더 열렬히 이야기하고 싶다. <파우스트>의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그리하여 노력하는 한 방황할 것이다. 그러나 열망하는 자 구원받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