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추악한 유토피아의 민낯, 연극 <하거도>

글 입력 2019.02.2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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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추악한 유토피아의 민낯
<하거도>


"바다에 이유 모를 시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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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_  하거도

공연일시_ 2019.03.08-03.17

공연시간_ 평일 20시 / 토 15시, 19시 / 일 15시

공연장소_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관람연령_ 만 16세 이상

티켓가격_ R석 40,000원 / S석 30,000원




바다에 이유 모를 시체가 떠올랐다.

연극 <하거도>의 시작인 사건이다. 섬 '하거도', 유토피아라는 정의가 내려진 그곳에서 '시체'라는 유토피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의의 단어가 등장했다. 유토피아라는 완벽한 상황 속에서의 붕괴, 즉 사건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극중 '하거도'는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목포에서 뱃길로 6시간, 정부의 공업도시 활성화 정책으로 유토피아와 같이 행복한 섬이 된 곳이다. 그러한 섬에 '시체'가 떠오르고, 마냥 행복한 줄로만 보였던 그 섬의 어둠이 드러난다. 무엇이든지 균열을 새로운 면을 보이게 하는 창구가 된다. 그리고 아무리 균열을 가리고 가린다고 해도, 한 번 생긴 균열을 영영 없어지지 않아 언젠가 터지게 된다. '하거도'처럼 말이다.

섬 '하거도'에는 과거 발전소 시설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 발전소는 이름만 발전소일 뿐, 범죄자들의 노역 수용소였다. 고립되어 남아있는 것은 수직관계인 그곳에서 범죄자들의 강제 노역에서 그치지 않고, 일반 시민들까지 강제 노역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발전소를 운영하던 조직은 더욱 잔인한 방식으로 그들을 발전소 안에 가둔다. 이제 추악한 과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우리 인간은 어떠한 본성을 보여줄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하거도'라는 공간을 보게 될까? 섬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본 연극은 이러한 나의 질문에 어떤 답을 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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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목포에서 뱃길로 6시간 반이나 떨어진 섬 하거도는 정부 주도하에 공업도시로 개발되어 모두들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게 유토피아가 된 섬에서 6개월 동안 삼백여 구의 시신이 떠오르자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그 원인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1964년에 발전소 하나가 세워졌다. 이곳은 이름만 발전소인 거대한 수용소다. 그곳은 범죄자들을 데려다 강제로 노역을 시켜 그 이익을 관리자들이 가로채는 조직이었다. 이익이 늘자 일부 관리들은 수감자들을 범죄자에서 일반 시민으로 늘려 강제 노역에 참여시키고 조직은 이를 숨기기 위해 더욱 잔인한 수감 방식을 취하는데... 한국 땅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존재들이 가득한 곳, 들리지 않는 비명이 끊이지 않는 곳, 그곳은 아름답고 눈부신 섬 하거도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본 연극의 시놉시스를 읽고 있자니 어슐러 K . 르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문득 떠올랐다. 어슐러 K. 르귄은 SF 소설, 판타지 소설을 쓰던 작가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중에서 내가 읽은 것은 <바람의 열두 방향>이라는 단편집이었고, 그 단편집에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수록되어있다.

간단히 내용을 요약하자면, 가상의 유토피아인 '오멜라스'에는 지하에 어린 소녀가 감금당해있다. 그 소녀의 존재로 '오멜라스'의 행복함, 평화로움이 유지가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은 마을 전체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떠나는 사람도, 평소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오멜라스'는 계속 유지된다. 유토피아인 '오멜라스'도 완벽하지 않다.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의 행복을 이끌어내는, 일종의 치부가 있는 세계다.

그러한 치부를 아는 사람들의 행동은 열심히 순응하여 더 큰 선을 추구하여 살거나, 그저 떠난다. 그 어린 소녀를 구해내지는 않는다. 소수의 희생, 다수의 행복이라는 딜레마를 갖고 있는 이 소설이 떠오른 이유는, 치부를 알게 된 '하거도' 주민들의 모습이 본 연극에서 가장 궁금하기 때문이다. 더 파헤치려 들지, 아니면 그저 떠날지, 아니면 그냥 살지에 대해서 말이다. 소수의 희생, 다수의 행복은 꽤나 오래된 윤리적 딜레마다.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이러한 딜레마에 대해 서술한다. 여기서 '소수'가 '나'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또 이야기는 달라지니 말이다. 딜레마라 함은 사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벌어진다. 어떠한 것이 정의일까. 정의라 함은 비인간적인 행위의 시작에 있어서의 저항이겠다. 만약 이해관계가 더 깊게 얽혀있고, 가족과 내가 위험해진다면 비인간적 행위는 개인에게 정의가 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연극 <하거도> 속에서 인간의 다면적인 부분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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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도
-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


일자 : 2019.03.08 ~ 03.17

시간
화-금 20:00
토 15:00, 19:00
일 15:00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티켓가격
R석 40,000원
S석 30,000원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작
극단 작은신화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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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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