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유토피아에서 일어나는 탐욕 [공연]

인간이 동물을 생매장하듯 일어나는 일
글 입력 2019.02.2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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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대학로를 향한 발길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웃음을 주기 위한' 연극이라는 장르로, 조금은 가볍게 연극을 바라봤다. 일반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로 문화예술을 바라보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뭐랄까, 예전에 한번 아트인사이트 대표님과 티타임을 가졌을 때 대표님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다. 너무 연극이나 예술 작품들을 많이 보다 보니, 더는 작품을 단순히 작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하셨다. 너무 높은 기준을 갖게 되어서 1년간 작품 보는 것을 쉰 적도 있다고 하셨다.


겨우 에디터 활동 몇 개월 차에 불과한 나에게도 그런 현상이 나타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당분간 공부를 하며 쉬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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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작품을 보고서 평소에 내가 하던 행동들을 하지 않았다. 일기를 쓰거나, 영화감상문을 적거나, 독서일지를 적거나 하는 일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야기를 했다. 나 혼자 보는 대신, 가족들과 남자친구와 문화생활을 하며 그들과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설에는 대세 영화로 유명했던 '극한 직업'을 보기도 했고, 대학로로 '옥탑방 고양이'를 보러 갔다.


어쩌면, 정체기가 아니라 외로움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가리는 것 없이 신청해서 듣고 본 문화생활이 오히려 나를 더 공허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분명히 나름대로 의미를 품고 있는 작품들이지만 비교적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것이었다. 요즘 접하는 것들과는 다르게, 한참을 생각해야만 내 안에서 결론이 나오는 것이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생활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그것들을 심각하게 보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속에서 정체되어 나오지 못한 생각들이 고여서, 입력되기만 하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그런 상태. 평생 글을 써왔지만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공부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한 것도 아니어서 시험을 취소했다. 내 인생에서 시험을 취소하고 다음 회차로 넘어가는 일은 정말 처음이었다. 분명 두 달 전부터 준비해온 시험인데, 하나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인생에 전반적으로 무기력함과 나태함을 느꼈고, 아무것도 변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기간이었다. 나름대로 그 불안정한 리듬은 정리되었다고 느꼈고, 다시 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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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쉬다, '하거도'라는 연극 포스터를 접하게 되었다. 사실은 포스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모든 색채를 어둡게 맞춰서 차분한 느낌. 그리고 '하거도'라는 제목 그 자체.


언제나 섬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신비로운 분위기가 떠오른다.


3년 전에 과 선배의 졸업작품 시다를 뛰었을 때가 생각난다. (*건축학과는 5학년 1학기에 졸업작품을 하는데, 우리 학교의 경우 1, 2, 3학년 각 한 명씩을 시다로 붙여준다. 선배들이 사주는 밥을 매끼 얻어먹으면서 모델을 만들거나, 캐드를 치는 일을 도와준다. 별개로 아는 사람에게 추가로 부탁할 수도 있다)


그 선배는 특이하게도 졸업작품의 장소를 유럽의 어느 섬으로 정했다. 우리나라의 설계 수업은 땅의 성질 자체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주변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설계할 구역을 '섬'으로 한다는 것은 주변 상황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물론 항구 정도는 만들겠지만, 어느 것도 내가 만들 건물, 도시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도로도, 건물도, 거기에 어울릴만한 사람도 다 자기가 지정하게 된다. 그야말로 가상의 공간이다. 현실적인 설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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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평생 자기가 딱 한 번 원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 그때는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많은 선배들이 졸업하고 졸업작품을 남기고 그들이 남긴 졸업작품들을 본 지금은, 얼마나 그것이 대담한 시도였는지를 안다.


마음껏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말로 어려운 문제다. 건축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도 주제가 없는 글을 공모하는 게 가장 어렵지 않은가. 주제에 따라 글 쓰는 게 재밌어지기도 한다. 맥락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맥락이 없는 곳에서는 무엇을 만들든 그것은 자유지만, 어느 것과도 연결되지 않는다. 그 혼자만의 독립된 체계와 독립된 영역.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아주 외로운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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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8일부터 17일까지, 2주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공연되는 '하거도'는 그런 섬의 특성을 잘 활용한 작품이다. 목포에서 뱃길로 6시간 반 정도 떨어진 가상의 섬 '하거도'는 아주 평화롭고 고요한 섬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갑자기 섬 주변에 시신이 여러 차례 떠오르면서 사람들의 불안이 시작된다.


'하거도'는 유토피아로 알려진 섬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범법자의 강제 노역소라는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사람들이 사라져 가는지도 모르는 채 사라져 가고,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범죄자가 아닌 일반인도 수용되어 노동을 하게 된다.


이런 단어를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흥미로웠다.' 사실 외딴 섬에 범죄자를 가두어 노역을 시킨다는 주제를 다룬 작품은 꽤 많다. 사회에서 '재생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모조리 섬에 가둬서 그들끼리만 살게 하자는 반 농담(?) 주장도 가끔 나오기도 한다. 범죄자끼리만 모여 사는 세상은 어떨지 상상하는 것도 예측 못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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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당한 노동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돈을 버는 행위는 계속해서 일어난다. 작년에 남자친구와 강원도 여행을 갔을 때 가장 놀라웠던 건, 오후 8시쯤 되면 횟집이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한 가게마다 외국인 노동자가 5~6명이 있었다는 거였다. 지나다니는 관광객 수와 시장 내의 전체 외국인 노동자 수가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은 어설픈 한국어로 자꾸만 닭강정과 아바이 순대를 사라고 외쳐댔다.


추측하건대, 그들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받아야 하는 최저임금을 받지 못할 것이다. 서울에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주는 시급도 힘들어 사장님이 직접 일을 하시는데, 속초가 아무리 관광지로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다 하더라도 대여섯 명의 아르바이트생에게 최저 시급을 줄 만한 여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이 사회에서 '적응'해 나가기 위해서 불공정한 처우에도 노력하고 있는 거겠지.


*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고 믿는다. 이타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예로 들자면, 그들은 이타적인 행동을 해서 얻는 자신만의 이익이 이기적인 행동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크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옳고 그른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과 비교적 도움이 되지 않는 일 두 가지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규칙과 법을 정해서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그래도 어느 정도 다 같이 조금은 희생하고 살자고 법을 만들어놓은 거다. 하지만 그 법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당연히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 때리면 안 된다, 고 하지만 그것마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법을 어긴 사람들을 강제 노역을 해서 죽을 때까지 부려 먹어야 하는 건가? 하면 그것도 또 이상하다. 결국은 국가나, 어떤 단체를 위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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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체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 하면 나는 모르겠다. 차라리 인간들이 애초에 법을 정하지 않고 동물들처럼 자유롭게 살았으면 더 행복했을 것 같다. 원숭이처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뛰어다니며 바나나를 따서 하나씩 우물우물 먹고, 고양이처럼 뒹굴어도 귀여운 존재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부를 가지는 것을 추구하는 대신에 초기 인류가 그런 삶을 선택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여유로운 삶을 선택한 인류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다만, 다른 이기적인 선택을 한 인간들 앞에서 굴복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수많은 동물들이 인간에게 지금 그런 상황을 마주한 것처럼 인간도 그랬을 때가 분명히 있었다.


이런 주제는 주로 글이나 만화책, 2차원적으로만 접했고, 아니면 영화 정도에서만 접했기 때문에 '하거도'에서는 연극이라는 장르로 어떻게 구현해줄지 기대된다.






하거도
-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


일자 : 2019.03.08 ~ 03.17

시간
화-금 20:00
토 15:00, 19:00
일 15:00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티켓가격
R석 40,000원
S석 30,000원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작
극단 작은신화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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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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