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그리움 사이에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고
글 입력 2019.02.2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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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대작을 쓰고 싶은 욕심에 완성은 커녕 한 장도 채우지 못하던 2018년의 나를 위안하는 순간이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고 친구와 감상을 편지로 공유하던 날이었다. 행복감에 푹 젖어 감정을 쏟아내는 두서없는 글. 나는 여전히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에 글을 쓰지 못하는 미련함을 품고 있고, 같은 고민에 시름시름 앓고 있다. 그 날의 행복을 다시 느껴보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편지를 여러분과 공유할까 한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더욱이 불친절한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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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2018년의 편지



창가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입에서도 흐린 입김이 솟아오르는 걸 바라보고 있어. 나는 손끝에 맞닿는 책 속의 안개를 떠올렸어. 책장을 넘기는 내도록 뿌연 안개가 독자의 시야를 흐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책이야.


곤혹스러운 손짓으로 몇 번이고 앞장을 뒤적이며, 신기하게도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은 그 흐림이 나를 감싸 안는 따스함으로 변모하는 것을 느꼈어. 언제나 카밀라를 따라다니던 지은의 안개가, 그 고통스러운 진실의 무게가 항상 그녀를 생각하는 온기와 애정이었던 것처럼 말이야.


나는 카밀라와 유이치의 만남에서 정지은과 이희재의 만남을 떠올렸어. 이 시점에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었지? 첫 번째로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최성식과 이희재 사이에서 갈팡질팡 헤맸지. 두 번째로 책장을 덮은 지금은 그 당시의 의문이 묘한 확신이 되었어. 그러나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한정적인 생각임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기를 바랄게.


이희재의 사랑과 최성식의 사랑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 있어. 꿉꿉하고 질척거리는 부정과 애틋하고 간절한 온정. 우월감과 도취감으로 물든 시선 사이를 가르는 안타까운 공백. 최성식이 정지은에게 원초적인 탐욕의 눈길을 보냈다면 이희재는 그 가운데를 갈라 빈 공간으로 채우는 공백을 놓았지. 시선은 눈 돌리면 금세 흩어지는 순간의 것이지만, 그 공백은 언제까지고 남아서 채워나가는 영원의 존재라고 생각했어. 실제로 20여 년간의 간극을 메우는 공간이 되어주었다는 생각이었지.


이 공백을 채우는 것이 바로 정희재야. 그 어떠한 물질적이고 과학적인 추론이 불가능한 영역 속에서 나는 정지은이 날개로 칭한 정희재에게 주목한 거야. 나는 정희재를 향한 정지은의 시점에서 향긋한 꽃내음을 맡았어. 동백꽃 향기였지. 참으로 따뜻한 향이 그녀의 애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했지. 그런데 그 향기 속에서 때때로 이질감을 느꼈어. 그건 이따금 흘러오는 바다 내음이었어. 정희재를 향한 시선이 다른 곳을 직시하는 순간을 포착했다고 여겨지는 때에 퍼지는 짭조름한 바다 냄새.


논리의 비약이라 여겨질지도 모르겠어. 그러나 나는 이제 이희재와 정지은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 나는 지도를 뒤집어 붙여 만들어낸 북해와 날개를 지닌 나비 사이의 상관관계에 매달리고 말았으니까. 신혜숙이 최성식과 정희재 사이의 관계를 종결한 두 편의 시에서도 그의 그림자가 묵묵하게 배어 있었으니까.


서해도, 동해도, 심지어 남해도 아닌 북해는 오직 그만이 닻을 내릴 수 있는 바다였어. 정지은이 최성식에게 꺼낸 말이 생각나.


"그 나비는 바다를 건너갈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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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날개를, 정희재를 잃은 정지은은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제 날개가 다시 곁으로 돌아오기를 차가운 바닷속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만, 20여 년의 시간이 지나 날개와 다시 만난 나비는 드디어 북해를 건넌 거야.


정희재와 이희재의 만남이 곧 이희재와 정지은의 만남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것이라고 생각했어. 고작 형편없는 추문 따위는 그녀를 추락시킬 수 없었어.


그저, 단 하나였던 거야. 바다를 건널 날개를 잃었기 때문에…….

카밀라와 유이치의 관계로 돌아올까. 이 연인의 이별도 지극히 단순한 관점에서 바라보았어, 이들은 칼 샌드버그의 '안개'로 만나지. 레드우드가 카밀라였다면 안개는 유이치였을까. 카밀라가 끝까지 카밀라였다면 이들은 더없이 상호 지지하는 공생관계로 계속해서 이어나갔겠지.


그러나 카밀라는 레드우드의 삶을 버리고 날개인 정희재가 되었어. 안개는 그저 날개의 목적지를 흐릴 뿐이야. 정희재를 카밀라고 정체시키지. 카밀라가 더는 카밀라로 남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정희재가 아닌 카밀라의 연인이었던 유이치는 함께 할 수가 없었던 거야. 바닷속에서 정지은을 만나 그녀의 날개가 된 정희재는, 진실을 목도하기 이전의 카밀라고 남을 수 없었어. 그러니 연인은 이별하고, 나비는 북해를 향할 수밖에.


나는 이 이야기가 정지은과 이희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상도 그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20년 뒤의 희재에게'에서 희재도 이희재와 정희재 모두를 뜻한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라디오의 사연도 결국 이희재가 보낸 한 줌 진심이 아니었을까 골몰했어.


인물들은 정체된 시간의 미로와 함께하고 있어. 안개 낀 길을 헤매면서도 나아가는 인물이 정희재라면 그 미로의 종착에서 떠나간 이와 다가올 이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인물은 이희재가 되겠지. 이들은 모두 서로를 기다렸을 거야. 파도가 바다의 일이듯 서로를 기다리고 생각하는 일은 그들의 몫이었으니까.


가해자가 동시에 피해자이고, 피해자가 동시에 가해자인 이야기였지. 이 인물들이 원하든 원치 않은 서로의 조력자가 되는 모습이 아니려니 해. 그러나 이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인물이 곧 인간상이겠지. 지극히 불안하고 위태로우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인간들의 삶이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 나는 이렇듯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존재를 향한 애정에서 위로를 받기도 해. 지금이 더없이 흔들리는 시기라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나도 이 책을 처음 읽은 고등학생 때와 지금 사이에 몇 년의 공백이 있어. 그래서 네게 무척이나 고마워. 글을 써도 완성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었어. 몇 번을 써 내려가도 그저 졸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거든. 이 편지의 탈을 쓴 감상문, 혹은 감상문의 꺼풀을 쓴 편지를 너에게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내게는 네 존재가 마치 대양을 건너는 날개가 되어준 것만 같아. 덕분에 고등학생 때처럼 부담 없이 즐겁게, 무조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어.


내가 지금 느끼는 행복을 너도 느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저 감사할 따름이야.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좋겠어.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즐거웠어. 벌써 너와 만날 날이 다가왔구나.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을 거야.


오늘이 네게도 다정한 하루였기를, 또 만나자.




2019년의 오늘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고, 글다운 글은 써본 일이 없다. 그래도 글을 쓰는 일을 사랑하기에, 여전히 이리 몰두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강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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