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망각과도 다름없는 기억으로 이어진 관계에 대해서 [도서]

손홍규 「기억을 잃은 자들의 도시」 서평
글 입력 2019.02.2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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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환상세계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이 소설은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잠에서 깨어나며 시작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왜 이 사무실에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린 도시에서 방황하던 남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신분증에 적힌 주소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자신의 ‘가족’이라 칭해지는 낯선 여자와 여자 아이를 만나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신분증이나 사진, 가족관계증명서와 같이 서로의 관계를 증명하는 서류들은 갖고 있지만, 서로의 관계를 신뢰하고 내적으로 인정할만한 기억과 추억을 잃어버린다. 즉, 기억의 상실로 인해 이들은 ‘가족’이라는 관계를 맺은 상태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한 이상(異常) 현실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도시의 사람들이 기억을 잃었다는 기이한 현상과 도시에 그대로 남아있는 외적인 리얼리티(동사무소에서 증명서를 떼는 것 등)가 어우러지면서 환상이 작용하고 있는 환상 소설이다. 과연 이 소설은 이러한 환상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기억을 잃은 가족의 허울뿐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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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장소의 층위’에서 공간적 배경은 남자가 신분증으로 알 수 있었던 ‘1202호’라는 어느 아파트의 주소이다. 현재 남자는 집과 가족 모두를 ‘신분증’에만 의존해서 알아보는 상태이며. ‘1202호’라는 장소는 그저 남자의 정보에 지나지 않은 요소이다. 다음으로 ‘공간의 층위’에서 공간적 배경은 ‘집’이다. 이때 소설에서 묘사되는 집은 ‘기억을 잃은 뒤의 집’이다. 이 집은 어색하고 서먹한 분위기이며, 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어둡고, 변질되고 상한 공기가 흐르는 듯한 공간이다. 분위기 묘사로 비추어봤을 때, 집이 그리 긍정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곳의 ‘공간성’을 알아보기 위해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면, 남자가 처음 집에 왔을 때 자신의 가족들과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고, 샤워를 허락받으며, 세탁기 안에 자신의 속옷을 넣는 것을 망설인다. 남자가 오기 전부터 함께 있던 아내와 딸 또한 서먹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집’ 안에서 남자 가족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이 공간이 ‘감정적 교류가 부재한 채로 몸만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에 남자는 자는 딸에게 감정 없이 입맞춤을 하고 이불을 덮어주며, 아내와는 흥분 없는 성관계를 한다. 이러한 공간 속의 사건은 ‘집’에 대해 ‘가족이라면 응당 할 것을 규정하고 감정 없이 행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뿐만 아니라, 남자는 ‘집’으로 찾아온 자신의 부모님께 별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다만 20만 원을 줄 뿐이다. 이러한 모습 또한 ‘감정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으로 교류하는’ 집의 공간성을 보여준다. 결국, 소설 속에서 ‘집’이라는 공간은 ‘감정적 교류가 부재한 채로 살아가는 가족들의 공간’이라는 공간성을 가지는 것이다.



기억이 있는 그들의 시간은 과연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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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적 배경을 살펴보면,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기억’이라는 주관적인 시간을 소멸시키며 시작한다. 소설 자체는 ‘기억을 잃은 후’의 시간을 흘러가는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감정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도시 사람들의 모습은 쉽게 디스토피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기억을 잃기 전에도 기억이 그리 소중하지 않았다면 기억을 잃은 다음에야 기억이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비겁한 일인 듯했다.’라는 주인공의 내면이 드러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기억을 잃기 전의 시간’, 즉 ‘환상 이전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주관적인 시간인 기억이 소멸한 시간적 배경의 특징과 남자의 내면은 ‘과연 기억을 잃기 전의 시간에 지금의 남자가 기대하는 ’기억‘과 ’추억‘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물음표를 갖게 한다.



환상이라 여겼던 디스토피아가 현실임을 마주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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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앞서 밝혔던 환상세계에서 나타난 ‘집’의 공간성과 시간적 배경으로 발생하는 독자의 물음표는 ‘기억을 잃기 전의 가족 관계’로 향한다. 이에 대한 대답은 회의적인데, 기억을 잃은 후 남자는 과거의 자신이 다정한 남편이었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기억을 잃기 전 시간에 대한 남자의 막연한 기대일 뿐이다. 맥주를 마신 ‘아내의 기억’은 그런 남자에게 ‘다정한 척했거나.’라는 말을 하는데, 이를 통해 기억을 잃기 전 가족 관계가 환상세계의 디스토피아적인 가족 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우리의 기억과 관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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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책을 덮고 ‘우리’를 생각해보자.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당장 내일 눈을 떴을 때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너무도 아쉬운 관계들이 존재하는가, 혹은 망각과도 다름없는 관계들이 대다수일까? 너무 빨리 맺어지는 관계 속에서 타인과 나누는 우리의 기억조차도 찰나가 되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세계가 그 존재만으로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더 깊은 관계를 위해, 더 소중한 기억들을 쌓아가야만 할 것이다.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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