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검정치마, 비틀어진 욕망에 대해 노래하다 [음악]

더욱 깊어진 감성으로 우리 곁을 찾아온 검정치마
글 입력 2019.02.2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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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가 우리들 곁으로 돌아왔다. 이번 달 12일, 검정치마의 3집 Part.2 <THIRSTY>가 발매되었다. 정규 3집 Part.1 <TEAM BABY> 이후 1년 9개월 만의 앨범이었다. 팬들이 '일해라 조휴일'을 열심히 외친 보람이 있던 걸까? 오랜 공백 끝의 반가운 소식이었다. 사랑으로 넘쳐흐르던 지난 앨범과는 꽤나 대조적인 앨범이다. 앨범 커버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로테스크한 앨범 표지처럼 음악은 전반적으로 거칠고 무거운 질감을 띄고 있다.


검정치마를 알게 되었던 건 지금으로부터 무려 9년 전이다. 인디 음악에 한창 빠져 있었던 중학교 시절, 그의 첫 정규 앨범 <201>을 듣게 되었다. 젊은 열기로 가득 찬 패기롭고 도발적인 그의 음악은 어린 내게 꽤나 충격이었다. 멜로디의 발랄함에 놀라고 거침없이 솔직한 가사에 두 번 놀랐다. 이렇게 발칙하고 귀여운 음악이라니.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좋아해 달라 말하고, 빙하기가 찾아와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도 우리 둘만은 그렇지 않을 거라는 로맨틱한 사랑고백을 내뱉다가도, 어른이 되었지만 그저 세상을 외면하고만 싶다며 노래한다. 이후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어떤 곡은 귀에 닳도록 들었고, 어떤 곡은 영원히 사랑했다.




#1 앨범의 전반적인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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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를 연상시키는 앨범 커버.
 부모님의 웨딩사진이었던 Part.1의
앨범 커버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뻔뻔하고 그로테스크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그럼에도 나에겐 하나같이 다 어쩔 수 없는 사랑 노래처럼 들린다. 하긴, 전부 다 내가 지어낸 얘기라고 해도 영원히 알 순 없겠지."


- 앨범 소개 中



1. 틀린질문

2. Lester Burnham

3. 섬 (Queen of Diamonds) ★

4. 상수역

5. 광견일기 ★

6. Bollywood ★

7. 빨간 나를

8. Put me on drugs ★

9. 하와이 검은 모래 ★

10. 맑고 묽게 ★

11. 그늘은 그림자로

12. 피와 갈증 (King of Hurts)


* ★: 추천하는 수록곡



"사랑 빼고 해줄게 더 지껄여봐"

-광견일기 中


"뭘 기대하는지 알아

어디서 들어봤겠지 먼 별들의 고향

넌 근데 잘못 온 거야 여긴

춤과 눈물에 순서가 없는 걸"

-Bollywood 中


"틀린 게 많았을 때도 난 다 사랑이었어"

-Put me on drugs 中


"꽃이 되면 좋을 텐데

잎이 되어 지는구나

이제 우리 어떡하나

잎이 노란데 이미 노란데"

-맑고 묽게 中



50분의 알찬 러닝타임을 지닌 이번 정규 앨범. 검정치마는 검게 물든 심장이 자꾸만 입 밖으로 나온다는 고백을 시작으로(틀린질문) 비틀어진 욕망을 매섭게 노래한다(Lester Burnham). 여기서 Lester burnham은 부인을 두고 딸의 친구에게 욕망을 품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앨범의 백미인 <섬>에선 얌전하게 노래하는가 싶더니 중반부에 들려오는 시끄러운 여자의 비명소리와 함께 곡의 분위기는 전환된다. 그리고 찰랑거리는 경쾌한 기타 소리와는 대조적인 가사를 지닌<광견일기>까지.


이제 찬란한 젊음의 <Hollywood>는 온데간데없고 그들은 <Bollywood>에 도착해 버렸다. 그녀는 이미 떠났지만 자꾸만 목이 마르고(빨간 나를), 약에 취해 서성이다가(Put me on drugs) 자신의 죄가 너무 무거워 그대의 섬에 가지 못한다 토로한다.(하와의 검은 모래). 결국 그는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엉엉 울어버린다. 다시 돌아갈 수 없을까, 하고 후회해 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그는 이제 혼자다.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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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주인공 Lester Burnham.



#2 Part.1 <TEAM BABY>와의 연결고리



지난 3집 앨범 Part.1과 <EVERYTHING>으로 검정치마를 접한 이들은 이번 앨범이 사뭇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어디 가고 본능과 욕망에 지배당한 목마른 한 남자의 이야기만 남았으니까.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예고되어 있었다. Part.1과 Part.2, 두 앨범은 아주 긴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치밀하다 느껴질 만큼 촘촘히 쌓여있다. Part.1은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이었다면 Part.2는 비틀어진 욕망과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다. 아래 가사에서 비교할 수 있듯 Part.1 <TEAM BABY>의 수록곡<Love is All>과 이번 앨범 <THIRSTY>의 수록곡 <피와 갈증>은 비슷한 가사 구성으로 상반된 사랑의 모습을 노래한다.



줄이 그새 줄어들었네

나를 기다린 줄 알았던

사람들은 떠나가고

다시 우리 둘만 남았네

술이 가득한 눈으로 날 사랑한다 말했었지

슬프도록 과장된 네 모습도 뭐 나쁘지 않은 걸

- Love Is All 中


줄은 처음부터 없었네

나를 기다릴 줄 알았던

사람은 너 하나였는데

이제 난 혼자 남았네

술이 가득한 눈으로 날 미워한다 말했었지

슬프도록 차가운 네 모습만 내 기억에 남기고


- 피와 갈증 中



또한 <광견일기> 도입부의 개 짖는 소리는 그의 정규 1집의 수록곡 <강아지>를 떠올리게 한다. 한 마리의 개처럼 본능에 충실한 하룻밤의 사랑. 그의 이전 싱글 EP <Hollywood>와 이번 <Bollywood>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Bollywood>의 후반부엔 <Hollywood>의 도입부 멜로디가 울려 퍼지기도 한다. <피와 갈증>은 지난 앨범 수록곡<Everything>의 몽롱함을 닮았고, <Put me on drugs>는 정규 1집의 수록곡 <fling: fig from france>의 찬란하고 풍성한 사운드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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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것만 같이 빛나는
젊음을 노래하던 <Hollywood> MV 中



나는 오히려 지난 정규 앨범 <TEAM BABY>가 너무도 달콤했기에 낯설기도 했었다. 일관되게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는 앨범이었다. 그동안 그의 음악은 발칙하고 도발적이었고, 거침없이 솔직한 가사는 허를 찌르곤 했었는데. 가사는 둥글어졌고 음악은 한결 말랑해졌고 포근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가 결혼을 하면서 음악 색이 자연스레 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TEAM BABY> 대부분의 곡들은 정규 2집 활동 시기인 2011년, 혹은 그 이전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전작의 달콤함을 유난히 부각시킨 이유는 이번 앨범의 씁쓸함과 어두움이 더욱 돋보이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 모든 게 치밀하게 구성된 그의 계획이었다. 오히려 이번 앨범이 검정치마 특유의 색이 더욱 돋보이는 앨범이라고 생각된다. 1집의 발칙함과 거친 솔직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으면서도 음악은 더욱 성숙해졌고 다채로워졌다.




#3 불거진 혐오 논란



달콤하고 사랑스럽던 지난 앨범과 대조적으로 비틀어진 욕망에 대해 노래하는 이번 앨범 <THIRSTY>. 그래서인지 이번 앨범은 사람들 사이에서 시끌벅적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티스트의 작품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논의가 오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지닌 생각과 가치가 다른 만큼 같은 작품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맥락을 배제한 판단과 혐오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Part.1과의 유기성과 연관성을 배제한 채 단편만 보고 무작정 단정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앨범은 아티스트의 일기장이 아닌, 그저 창작된 허구의 세계일 뿐이다. 주로 창작자 본인의 목소리를 통해 음악이 전달되어서 그런지, 가사의 이야기는 종종 음악가 본인의 것으로 동일시되곤 한다.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가 가상의 인물과 배경을 설정하여 이야기를 써 내려가듯 음악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실제 경험이 녹아들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사이코패스와 살인마, 또는 불륜을 저지른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 우리는 그런 영화를 만든 감독을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작품은 작품 그 자체이고, 감독은 감독일 뿐이니까. 배우도 자신이 맡은 배역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매번 모습을 바꿔 입듯 음악가도 마찬가지이다. 아름답지 못하고, 마주하기 불편하지만 모두 다 인간의 모습의 일부이다. 그런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건 우리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조차도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데, 어떻게 모든 예술이 아름답기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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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출판사 <1984> 인스타그램



사회적, 윤리적 관점으로만 예술을 평가하면 예술의 다양성은 저해될 수밖에 없다. 예술은 공익광고가 아니다. 올바르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노래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우리가 외면하고픈 세상을 노래하기에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혐오에 초점을 두기보단 지난 앨범과의 긴밀한 연관성과 그 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그가 이 앨범을 통해 우리에게 무슨 얘기를 전하고 싶은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검정치마는 <TEAM BABY>와 이번에 발매된 <THIRSTY>, 그리고 이와 이어지는 마지막 Part.3 앨범 발매를 남겨두고 있다. 완전히 상반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두 앨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마지막 앨범에서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두 정규 앨범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들어보자. 그가 앞으로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






에디터 임정은 이름표.jpg
 



[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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