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움', 보다 '인간다움' [애니메이션]

<도쿄 구울 1기>를 보고
글 입력 2019.02.17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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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과 달리

우리들은 인간밖에 죽이지 않아…


- 도쿄 구울 1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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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마땅히 사람이 가져야 할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추상적이다. 그렇다고 조건을 따지 듯 인간다움을 나열하기도 쉽지는 않다. 그 어딘가 모호한 영역 안에 있는 것들을 우리는 흔히 인간다움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생각한다. 알고 있지만, 설명하기 어렵다. 자연스레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다. 이 정도의 표현이 아마 비슷한 표현일 테다.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여러 관계를 만들어가고 학습하는 과정을 겪는다. 혼자서 지내는 걸 좋아해도 그렇다.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 함부로 남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모두 똑같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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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 스이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도쿄 구울』은 구울의 신체 조직을 이식 당해 반구울로 삶을 살아가게 되는 대학생 카네키 켄의 이야기를 담았다. 구울은 인간과 같은 외형과 사고를 가지고 있지만, 오로지 인육만으로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그들은 다양한 형태로 도심에 존재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육을 갈구하는 구울도 있다. 인간에게 주는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그들 사이로 녹아들어 사는 구울 역시 존재한다.

'인간'과 '구울'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익숙한 이미지인 '선'과 '악'을 연상시킬 법도 하다. 실제로 그러한 클리셰를 끌고 가면서도, 중간중간 신선한 물음을 건네는 스토리 또한 적지는 않다. 카네키 켄이 '반구울'이라는 점은 그러한 물음을 지속적으로 던지기에 충분하다. 직접 말한 표현을 빌리자면, 신체는 '구울'이지만 정신은 '인간'인 상태로 그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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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서 나타나는 인간다움은 자신의 욕망대로 휘둘려 살지 않는 인생이다. 인육을 먹고 싶더라도 함부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우리가 지키며 살아가는 규칙과 도덕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히려 인간 사회에서 함께 어울리기 위해 평범한 음식들을 먹는 척까지 배우려 한다. 켄을 비롯한 20지구의 '안테이크' 구울들은 정체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전혀 구울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식인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선뜻 납득하기에는 어려운 점은 맞다. 그러한 점에 빗대어 확장해 볼 때, 자신이 위해를 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는 건 자연스럽다. 공포는 두려움을 조장한다. 그리고 두려움은 갈등을 부추긴다. 혹시 모를 구울들의 습격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CCG는 그래서 존재한다. 다수의 구울들은 인간들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가거나, CCG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주의를 가지며 산다.

『도쿄 구울』의 스토리가 배틀물로 바뀌어가는 이후를 제외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구울은 적어도 20지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다만, 그들이 일으키는 사건은 끔찍하고 잔혹하다. 그런 구울들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CCG는 구울을 맞서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상대를 적으로 정해버린 이상, 더 이상 어떠한 교감과 공감도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애니메이션에서도 구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벌이는 시점 역시 우연찮게도 이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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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갈등의 화살은 아무런 죄가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구울에게로 향한다. 그로 인해 죽게 되는 구울인 후에구치 료코나, 상등 수사관 마도 쿠레오는 갈등이 극에 다한 상황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러면서 어느새 스토리는 '인간다움'보다는 '인간과 구울'로 초점이 맞추어진다.

'인간'과 '인간다움'은 다르다.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는 않는다. 흔히 짐승만도 못하다는 표현은 마음먹기에 따라 사람이 어떻게까지 변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아니라고 해서 인간 다울 수 없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SF/판타지적 요소를 배제하고 생각하더라도 그렇다. 타자는 나와 '다른' 존재일 뿐, '틀린' 존재가 아니다. 이 둘이 명확하지 않고 혼동될 때, 오해나 상처는 걷잡을 수없이 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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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이후 『도쿄 구울』은 구울들의 능력인 '카쿠호'와 이를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CCG들의 무기인 '쿠인케'를 활용한 배틀에 이야기 초점이 맞추어진다. 스토리가 흐르면서 남겨진 물음들 또한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게 있고, 결말이 주는 메시지 또한 클리셰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구울과 인간 사이를 고뇌하던 카네키가 사실상 구울로 살아가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어렵지 않게 생각은 해 볼 수 있다. 다만 마지못한 아쉬움은 카네키 켄이 정체성을 두고 고민할 때를 보면 해소할 수 있을까. 그를 거두어 준 요미무라가 건넨 말처럼 말이다.



자넨 구울이기도 하며 인간이기도 하네.

두 세계를 동시에 있을 장소를 가진,

단 하나의 존재일 뿐.


- 도쿄 구울 1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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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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