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존버'해서 '소확행' 얻기 [문화전반]

버텨라! 그러면 승리할 것이다. ...정말?
글 입력 2019.02.1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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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점에 가면 온갖 가시 돋은 말로 청춘을 채찍질하던 자기계발서가 즐비했다. 청춘, 대체 이 삶 어디에 푸른 새싹이 돋고 봄 햇살이 떨어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스무 해를 조금 넘게 살았다는 이유로 생판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혼나야만 했던 사람이 꽤 많았을 것이다.

채찍을 휘두르기에 지친 건지, 아니면 채찍 맞아가며 20대를 보낸 후 맞이한 30대가 더 버석버석 메마른 통에 자기계발서를 불신하게 된 탓인지, 이제는 서점 가판대에 자기계발서보다 ‘힐링서’가 다양하게 놓여있다. 하긴, “아파라! 달려라! 왜냐하면 너는 어리니까!” 따위의 충고를 듣는 것보단 예쁘장한 표지를 바라보는 게 인생을 버티는 데에 조금 더 도움이 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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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기”



작년쯤부터 인터넷상에 ‘존버’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비속어가 섞인 탓에 뜻을 풀이해 쓰기는 조금 머쓱하지만, ‘버’가 ‘버티기’의 준말이라는 것만 알아도 충분할 듯하다. 비트코인의 가치가 분명히 오를 거라는 믿음 하나로 비트코인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는 말로 쓰기 시작했는데, 각자의 자리에서 제각각 다른 이유로 버티고 있던 현대인들을 묘사할 때 그만큼 적절한 단어도 없어 급격하게 퍼졌다.

버텨라! 그렇다면 성공하리라. 이 문장 하나만을 믿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존버.JPG▲ 새해를 맞이했던 날 친구들과의 대화
 

‘존버는 승리한다.’

시험기간 때도, 과제를 할 때도, 수강신청을 할 때도, 하다못해 내가 사고 싶은 옷이 비쌀 때도 버릇처럼 이 말을 썼다. 나뿐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이 제각기 다른 이유로 저 문장을 되뇌었다. 하기 싫고 힘든 일을 꼭 해야만 할 때, 우리는 그 자리에서 버티기라도 하며 어떻게든 시간을 죽이기 마련이다. 아울러 기다리기 힘든 대상을 기다릴 때도 목을 쭉 빼고는 다리를 땅에 붙인 채 언제 오나, 하며 시간을 버텨낸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 전체를 버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근데 존버가 승리하는 게 아니라

승리할 때까지 존버하는 거 아니야?”



친구가 무심결에 뱉은 말에 각자의 이유로 버티고 있던 개구리 몇 마리(개중에는 나도 있었다)가 맞아 죽었다. 하긴, 버팀이 승리하는 게 아니고 승리할 때까지 버티는 게 논리에 맞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다가는 힘이 쪽 빠져 버티지도 못할 테니 제멋대로 앞뒤를 바꾸어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열심히 클릭을 하다보면 언젠가 강의를 하나쯤 주울 수 있겠지, 그러면 나도 순탄히 졸업할 수 있겠지, 하며 자신을 다독이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언젠가 시험에 붙을 수 있겠지, 목표 점수를 넘을 수 있겠지, 그러면 나도 취업을 할 수 있겠지, 하며 희망에 차 있는 편이 훨씬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하여



그렇다면 우리는 왜 버텨야할까. 가끔은 주저앉거나 한숨 돌릴 수도 있을 텐데, 왜 오천만 국민 모두가 이렇게 힘들게 버텨야만 할까. 청년실업시대에 몇몇 사람들은 ‘과잉 스펙’이라는 이유로 취업에 실패하고, 또 몇몇 사람들은 ‘스펙이 없다’는 이유로 서류 전형에서 낙방한다. 과잉 스펙이라는 말만큼 모순적인 말도 없지만 그만큼 요즘 세대를 잘 설명하는 말도 없는 듯하다.

이 친구가 버티니 나도 버티고, 내가 버티니 저 친구도 버티고, 버팀의 굴레에서 너도나도 걸음을 빨리하다보니 자꾸만 모든 게 상향평준화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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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버티다 버티다 정말 한계에 도달할 즈음에 목을 축일 오아시스라도 있어야 하기에 ‘소확행’을 부르짖는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어째서 ‘대단하고도 확실한’이 될 수 없는지는 잠깐 무시하도록 하고, 아무튼 소소한 행복을 오아시스 삼아 사막을 횡단한다.

나의 소확행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볕이 잘 드는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책을 읽는 것이다. 내 친구의 소확행은 사람이 별로 없는 밤거리를 음악과 함께 산책하는 것이고, 다른 친구의 소확행은 하루 일정을 마친 후에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것이다. 이쯤되면 나의 소확행은 소소함의 범주가 아니라 대단함의 범주에 속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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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버틴 뒤 포상처럼 주어지는 소확행에 기대 또 다시 다음날을 버티는 게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몇 년 전까지는 서점에서도 혼이 났는데, 이제는 서점에서도 소확행을 찾을 수가 있다.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또는 SNS에서 인기가 많을 듯한 감성적인 표지와 함께 ‘이대로도 괜찮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담은 책들이 참 많다.

나는 인문학 책이나 소설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기계발서나 힐링서를 그다지 자주 찾는 편은 아니지만, 우리 집 책장에도 몇 권 꽂혀있기는 하다. 힘들고 지칠 때 펼쳐보면 표지만큼 예쁜 일러스트와 함께 마음이 편안해지는 문구가 잔뜩 적혀있어서 나도 모르게 위안을 받기도 한다.


[크기변환]힐링.JPG▲ 구글 '힐링 책' 이미지 검색 결과
 

하지만 매일 같이 의문을 갖는다. 버티지 않고도 대단하고 확실한 행복을 가질 수는 없을지. 아마 몇 년 전 자기계발서가 이런 날 봤다면 ‘왜 그렇게 단물만 쏙 빼먹으면서 쉽게 살려고 해! 버텨야지! 너는 이십대니까!’라며 혼냈을 터다. 사실 맞는 말이라 반박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소소한 행복을 위해 버티는 것보단 대단하고 확실한 행복을 위해 버티자는 편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다들 단물을 빼먹으려고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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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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