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은 정성들이 모여 만들어진 큰 영화 [전시]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영화의 얼굴창조 展>
글 입력 2019.02.1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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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대략 200번 이상의 수정을 거쳐 시나리오가 겨우 완성되면 배우/감독/스탭 캐스팅이 힘겹게 진행되고, 투자사들과의 미팅이 더더욱 힘겹게 진행되며, 드디어 크랭크인이 들어가면 밤샘촬영과 변덕부리는 날씨 때문에 고생을 한다. 후반작업과 마케팅에서도 역시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최소 2년이 걸린다는 이 길고도 복잡한 여정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오직 한 사람만의 역량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 수십, 수백명이 대중에게 사랑받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야만 이겨낼 수 있는 과정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우리가 무심코 보고 넘기는 영화 한 편, 그 뒤에 숨은 수많은 피와 땀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영화의 얼굴창조 展>에서 나는 이 사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왔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 자체로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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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부터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화의 얼굴창조 展>은 ‘㈜하늘분장’의 대표이자 17년차 분장감독인 조태희 감독이 무려 7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기획한 국내 최초 분장 콘텐츠 전시이다. 아라아트센터 4층을 통째로 활용할 정도로 그 규모가 방대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천만영화 <광해>부터 <역린>, <남한산성>, <사도>, <안시성> 그리고 현대극 <변산>, <꾼>, <완벽한 타인> 등까지 조태희 감독의 손길이 닿은 작품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각 층마다 작품의 OST가 흘러나와 전시의 몰입을 돕고, 각 콘텐츠 옆에 쓰여 있는 자세한 설명들은 도슨트 없이도 충분히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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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부터 망건, 가발, 떨잠, 분장도구, 심지어는 수염까지. 평소 영화를 볼 때는 미처 자세하게 인지하지 못했던 작은 소품들이 각각의 사연을 담은 채 저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소품이 만들어졌고, 어떤 고비가 있었으며, 얼만큼의 정성이 들어갔는지 등등의 말들을 말이다. 모든 콘텐츠들이 실제 촬영에 사용되었던 것들이기에 배우들 분칠의 흔적마저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궁금하다. 사극영화를 볼 때 남자 배우의 수염만 집중해서 본 적이 있는가? 아마 그 분야 전공자가 아닌 이상 한 명도 없지 않을까 싶다. 이 전시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단연 <남한산성> 배우들의 수염이었다. <남한산성>은 유독 눈 날리는 풍경이 많았고, 해서 캐릭터들의 수염에도 서리가 끼어 있어야 했다. 헌데 서리가 낀 수염은 재활용을 할 수가 없어서 매 촬영 때마다 새로 만들었다는 기록을 보고는 정말 경탄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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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치 수염까지 군데 군데 넣어주어 나이와 함께 고집도 있는 느낌을 주었다. 명길의 수염에 비해 두껍고 고불거린다. 고집 있고 자기 주장이 강한 성격을 수염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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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수염은 정갈하다. 전쟁중이었지만 왕은 잘 관리하고 정돈했을 것 같다. 인조의 콧수염은 숱이 훨씬 적고 입가의 수염은 얇고 길다. 인조의 우유부단함과 연약함을 얇은 수염의 선 느낌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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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쇠는 대장장이다. 대장장이 특유의 남성스러움과 캐릭터의 묵직함을 주고 싶었다. 또한 멋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수염은 살짝 동그랗게 굴린 느낌이 있다."



집안일은 하면 티가 안나고 안하면 티가 난다고 하더라. 영화 분장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일반관객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담당자가 조금만 방심한다면 바로 티가 날 것이다. 감독이나 배우에 비해 크게 박수갈채 받지 못할지라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프로의식을 발휘하고 있을 분장 아티스트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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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조태희 분장감독의 작업은 단순한 재현이 아닌 창작이었다는 점이다. 사극 영화는 언제나 고증 논란에 시달리지만 본인은 현재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기에 기존 작품에서는 시도되지 않은 새롭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감독의 소신이 마음에 들었다. 그 소신 덕에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풍요로운 시각적 즐거움을 누렸으리라.


현재를 사는 우리도 상황에 따라서 복장과 머리가 바뀌지 않는가? 매일 똑같은 비녀와 망건을 하고 있다면 얼마나 관객에게 무성의한 것인가. 그런 이유에서 중복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관객인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도 누군가는 정말 작고 세세한 부분에까지 최대한의 정성을 쏟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얼마나 많은 진심들이 모여 이 영화를 이루고 있었을지 생각하면 영화에 대한 개인의 취향, 작품성 모두 다 떠나서 그저 마음이 따듯해진다.

영화는 분명 진심의 산물인 것 같다. 영화가 사람을 웃기고, 울리고, 인생까지 바꾸는 힘을 가진 것 역시 이 덕분이지 않을까. 전시장 벽에 너무도 좋은 글귀가 있어서 찍었는데, 지금 보니 이 글귀는 조태희 분장감독에게 그대로 해당되는 글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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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이 단순히 메이크업이 아닌 한 작품의 캐릭터 이미지를 완성하는 고도의 기술임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에서는 감독 스스로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열정을 갖는 사람들은, 항상 멋지다.

미처 알지 못했기에 보내지 못했던 박수를 보낼 수 있게 되어 좋았고, 영화가 이토록 수많은 프로들이 협력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어 좋았다. 가슴 따듯한 전시를 만났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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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얼굴창조展
- 한국 영화 분장의 방대한 기록 -


일자 : 2018.12.29 ~ 2019.04.23

시간
11:00~20:00 (19:00 입장마감)

*
연중무휴

장소
아라아트센터 B1~B4

티켓가격
성인 15,000원
초중고교생 10,000원
(미취학아동 무료입장)

주최
㈜하늘분장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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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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