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글쓰기에 지친 당신에게 : 도서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글 입력 2019.02.1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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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중국 작가 위화의 읽기, 쓰기 그리고 사람으로 살기



글쓰기를 나름의 업으로 여기고 있는 내가 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노래의 가사를 듣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의식이 생긴 이후 가장 처음으로 가사에 감명(?)을 받았던 건 리쌍의 ‘광대’를 들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3, 4학년 남짓한 아이가 20대의 애환을 어떻게 이해했겠냐 싶지만, 그 노래를 듣기 위해 난생 처음으로 mp3를 구매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노랫말에 마음이 동했던 것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꽤나 허세 가득한 그때의 초딩 감성으로 음악과 가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니 거창하진 않지만 계속해서 글을 곁에 두고 지내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글을 쓰게 된 첫 목적은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글’로 소개하고 설명하는 것이었는데, 요즘 들어 그 글쓰기가 점점 어렵게만 느껴진다. 본인의 글 속에는 가상의 인물도, 허구의 사건도 존재하지 않아서 진짜 작가들의 고뇌나 역경까지는 느낄 수 없다만, 아무튼 글을 쓰는 행위가 예전만큼 즐겁게 여겨지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도서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을 읽게 된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감옥과 같은 글쓰기라니. 힘겹고 고되지만 벗어날 수가 없는 글쓰기를 명확하게 표현해낸 것 같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위화(余華)의 글쓰기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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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은 세계적인 중국 작가 위화(余華)가 서울, 베이징, 프랑크푸르트, 뉴욕, 베오그라드 등 세계 곳곳에서 독자를 대상으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에세이다. 여러 강연을 한 데 묶어 놓은 책이라 흐름이 부자연스럽다거나 내용이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힘을 믿고 그를 전달하는 데 온 마음을 다하는 작가인 만큼 같은 이야기도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며 갖은 감상을 건넨다.

 

‘일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면 중국에는 위화가 있다’고 할 만큼 작가 위화(余華)는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거두고 있나보다. 애석하게도 필자는 위화에 대해서, 심지어 중국 문학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다. 책 속에서는 <허삼관 매혈기>, <가랑비 속의 외침>, <제7일>, <형제> 등의 작품을 써내려갈 당시의 작가의 경험이나 감상을 담아내고 있기에 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긴 했지만, 글을 진정한 업으로 삼는 진짜 작가의 이야기를, 그것도 작가만의 유쾌하면서도 사색이 담긴 표현 방식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에 꽤나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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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작가가 되기 이전에 훌륭한 독자가 되어야 하고, 좋은 글을 위해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뛰어넘어야 한다-와 같은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그를 통해 그간의 생활을 반추해보고 나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이야기’를 대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듯하다.


루쉰과 마오쩌둥 외에는 읽기가 금지되었던 문화대혁명의 시대를 지나 20대가 되어 ‘읽기’와 동시에 ‘쓰기’를 시작한 그는 스스로 ‘시대를 잘 타고났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솔직한 면모를 보인다. 출판 과정에서 만난 모든 이들의 실명을 거론하고, 황당한 자국의 상황을 보며 ‘중국은 재떨이를 주고는 금연을 하라고 말하는 나라’라 표현하는 등의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작가로서 가질 수 있는 사색과 사유를 담아 글쓰기에 대해, 우리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의 이야기에 절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글쓰기에 지친 당신에게




글쓰기에는 끊임없이 앞을 막는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동시에 글쓰기는 물줄기가 모여 도랑을 이루는 과정이지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장애물이 눈앞에 있을 때는 아주 거대하게 느껴지지만, 이를 피하거나 넘어서고 나면 갑자기 그리 거대하지 않게 느껴지고, 그저 종이호랑이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용기 있는 작가들은 항상 장애물을 향해 전진하고, 종종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넘어섭니다. 지나친 다음에야 깨닫고 이렇게 가볍게 지나쳤나 하고 놀라는 경우도 많지요.


71p



이 글 속에서 알게 모르게 ‘진짜 작가’라는 말을 강조한 건 필자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문학에 진정으로 몸 담그고 있는 이들만큼 고려하고 구상해야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글에 대해 ‘작가 흉내를 내는데 불과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힘겨워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보니 조금 우습기도 하고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럴 때 ‘진짜 작가’의 이야기가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글쓰기에서 그들이 느꼈던 고난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을 보니 내심 위안이 되었다. 위대한 글 앞에도 숱한 고난이 자리 잡고 있었을 테다. 이토록 보잘 것 없는 글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넘어서기란 비교적 쉬운 일이지 않을까. 그 이전에 누군가도 나와 같은 시련을 겪고 이겨냈다는 사실 하나로 위로가 되었다. 거대해보이기만 했던 장애물을 피하거나 넘고 나서야 거대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건, 사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 이유로 더욱 와닿았다.



마침내 저는 제가 얼마나 멍청한 지 의식했습니다. 침대를 바꾸지 않고 한 침대에서 잤다면 한 침대의 벼룩들만 배불리 먹였을 것이고, 다른 침대의 벼룩은 먹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 저는 그때 벼룩에 대처하던 방식으로 완성하지 못한 저의 장편소설들을 대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구상에 유혹되지 않을 것이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현상도 더는 없을 것입니다.


121p



위화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현상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소설을 쓰는 바람에 전에 쓰던 여러 소설들을 완성하지 못했다. 이제 그는 완성하지 못했던 소설들에 숨을 불어넣을 계획이라 말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마음이 가고,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본인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을 써야하는 우리에게 글쓰기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알아채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전에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을 때는 항상 학생들과 젊은이들로부터 어떻게 해야 작가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단 한 단어로 대답하곤 했지요. “쓰세요.”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인생을 경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인생이 채워지지 않아요.


62p



경험하지 않고서는 인생이 채워지지 않는다. 하물며 음식도 먹어봐야 맛을 아는데, 글쓰기란 어떻겠는가. 무심한 듯 건네는 ‘쓰세요.’라는 말은 그래서 더욱 명쾌한 해답처럼 느껴졌다. 거창한 표현으로 '글을 쓰는 숙명'을 따라가고자 했다면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만이 필연적인 해답이 된다.


*


글을 쓴다는 건 여전히 어렵다. 이 짧은 글을 써내려가는 데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으며, 떠오르지 않는 어휘들에 머리를 싸매야 했다. 어쩌면 글쓰기가 앞으로도 계속 어렵게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점은 위화의 인생과 이야기를 통해 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미루고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계속해서 글을 쓸 수밖에. 여전히, 그리고 계속해서 글을 써야할 누군가에게 인생으로 점철되는 글쓰기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위안이 되기도, 조언이 되기도, 영감이 되기도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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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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