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 속 세상, 심즈 [게임]

글 입력 2019.02.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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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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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즈가 악마의 게임으로 유명하잖아.

 

친구의 말에 그게 무슨 소리냐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바로 그 악마에게 붙잡힌 재물이 아니었나 싶었다. <심즈1>부터 <심즈4>까지, 17년동안 심즈를 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말이다.

 

친구의 언급에 오랜만에 <심즈 4>를 플레이했다. <심즈>는 여전히 재밌었다. 그와 함께 나는 왜 심즈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심즈의 세상에 대해 더 생각해보았다.



 

심즈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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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즈로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오히려 가장 이상한 사람이다.’

 


심즈를 하면서 ‘막장’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니,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는 구절이다. 얼마나 막장으로 갈 수 있는지 자신이 직접 만들어나갈 때의 짜릿함이 있다. ‘마을 내의 모든 심 꼬시기’, ‘마을 내 모든 심들의 아기가 사용자의 친자녀일 수 있게 만들기’. 이혼과 결혼의 반복, 바람과 화해, 돌고 도는 스토리를 통해 재미를 느낀다. 심이 죽으면 나타나는 사신과 연인 관계로 만들고 싶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미국 하이틴 드라마스러운 플레이를 하기 위해 시놉시스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그대로 플레이하려니 귀찮아서 곧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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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즈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치트키에 있지 않을까 싶다. 치트키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며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하는 가장 빠른 수단이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곧바로 늘리고 심의 욕구 상태를 바뀌게 할 수도 있다. 치트키를 이용해 더 쉽게 어떤 심을 죽일 수도 있고 그 사람과의 친밀도를 극대화하는등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나는 그중 돈을 늘리는 치트키를 기본으로 하여 플레이한다. 왜냐면 그것이 내가 심즈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고층의 라운지에서 야경을 보며 비싼 음식과 음료를 마신다. 또한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드림하우스, 드림카를 타면서 계속 파티만 하는 인생이라니!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 셀럽의 삶이 아닐까? 이러한 삶은 절대 심즈에서 착실하게 벌어오는 월급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비록 가상 세계지만 그 순간만큼은 호화로움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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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즈3> 플레이할 당시, 확장팩 중 하나였던 ‘좌충우돌 세계모험’ 중에서 ‘샹즐레 심즈’(프랑스)를 좋아했다. 이 확장팩은 세 가지 여행지(중국, 이집트, 프랑스를 모티브로 한 여행지) 중 하나를 골라 모험을 하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모험을 하는 것도 무척 재밌지만 초반에 플레이할 때 '샹즐레 심라'에서는 정말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나머지 두 여행지에 비해 모험의 정도가 덜 해 보이기도 했고 모험지 외에 체험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기 때문이다. 포도주를 만든다거나 광장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이 정말 나 스스로 프랑스에 있는 듯했다. 이처럼 <심즈>에서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굉장히 좋아했다.



 

심즈의 세계는 계속 돌아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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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룬 파로키 <평행> 中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룬 파로키 회고전인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의작품 중 하나였던 <평행>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았다. 기존 유명 컴퓨터 게임의 그래픽을 분석한 작품인 <평행> 시리즈를 보면서 <심즈>가 무척 떠올랐다.


 

“세상은 내가 바라보고 있지 않을 때도 존재하는가?”



<평행>에서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하며 위와 같은 말이 내래이션으로 흘러나왔다. <마인 크래프트>에서는 설정한 거리만큼 가까워지지 않으면 맵이 렌더링되지 않는다. 사용자가 바라보지 않을 때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 심즈 또한 마찬가지일까? 사용자가 플레이하면 심의 시간과 함께 사용자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심의 지인들의 시간도 흘러간다.


그에 따라 누군가는 죽기도 하고 아이였던 심이 성인이 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를 생각하면 마치 사용자가 바라보고 있지 않아도 심즈의 세상은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한테 보이지 않는 다른 심의 삶은 어떨까 문득 궁금해졌다가 결국 사라질 세계라는 것에 허탈함을 느꼈다. 결국 그시간의 흐름은 사용자가 설정으로 들어가 심의 시간이 흐르지 않게 설정한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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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출렁이는 모습으로 물 아래에도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만 (좌)
그 아래는 프로그래밍 되어있지 않은 모습임을 확인할 수 있다(우)


하룬 파로키의 말처럼 게임 속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컴퓨터로 구성된 이미지는 의도적으로 계산되고 프로그래밍 되어야만 나타난다는 점 때문이다. 하룬 파로키의 작품에서 알 수 있듯 한 게임 세상 속 물은 출렁이는 것처럼 보여 아래로내리면 아무것도 없다. 프로그래머가 물 아래는 프로그래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심즈에 1인칭 시점이 도입되었다. 항상 제 3자의 눈, 신의 눈으로 심즈를 플레이하던 사용자는 심의 눈으로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는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1인칭 시점으로 궁금했던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심즈에서 심들이 사랑 나누기를 할 때 침대 아래에 들어가 여러 소리가 나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 안이 궁금했던 사람들은 1인칭 시점을 이용했다. 사실 결과는 하룬 파로키의 말과 같았다.


프로그래머는 구체적인 행동을 프로그래밍하지 않았다. 1인칭 시점으로 봤을 때 그들은 이불 안에 가만히 있고 소리만 나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하룬 파로키의 말처럼 게임 속 세상은 사용자의 궁금증만 증폭시킬 뿐 내가 보지 않을 때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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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기본 8시간씩 심즈를 하던 고등학교 때에는 세상이 모두 심즈 같았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조차 심즈에 있는 메뉴 고르기를 같았다. 마치 친구를 클릭한 후 ‘재미’-‘둘만의 농담하기’ 메뉴를 누르듯이 말이다. 점점 피로하거나 배고플 때는 내 에너지 상태가 화면 하단의 바로 보였다.

 

<심즈>의 세상은 사용자가 있을 때만 존재하면서도 막상 사용자의 삶은 <심즈>였다니, 당시의 아이러니함에 웃음이 났다. 게임 속 세상은 내가 바라보고 있지 않을 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삶은 게임 속 세상이 꺼져있을 때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연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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