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군가에게 영원히 기억될 이야기 [도서]

글 입력 2019.02.06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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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전쟁 중에는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그만큼 많은 일이 묻혀버린다. 생과 사를 반복하는 정신없이 긴 시간이 지나고 삶의 터전은 황폐해진다. 시간은 여느 때와 같이 지나가고 남겨진 사람들은 전과 같지 않다. 이제 생존자들의 내면에는 각자의 슬픈 이야기가 상처로 남아 마음 한 켠에서 흐르게 된다. 소설 속의 두 고아, 노아와 아스트리드의 이야기는 이제 분명한 사건들과 감정들은 흐려진 채 전설처럼 남아 기억되거나 사라질 것이다.

 

 

 

비밀과 상처



노아는 열여섯 살에 독일 군인과의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집에서 쫓겨나 어느 기차역에서 유개화차 속의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갓 태어나 이름도, 부모도 모를 수많은 아이들이 실려 있는 틈바구니 속에서 빼앗긴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곤 덜컥 아이 하나를 데려온다. 아이는 테오라는 남동생으로, 기차역 이전의 삶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가출에서 비롯된 것으로 만들어 비밀을 품게 된다. 아스트리드는 자신이 한번 독일인 남편에게 버림받았으며 사실은 유대인이라는 상처를 갖고 있다.

 

둘은 비밀이자 상처가 되어버린 과거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서커스단에서의 삶을 이어간다. 비밀 때문에 처음에는 서로를 믿지 못했지만, 결국 자신들의 가장 아픈 부분을 꺼내 보이며 서로에게 누구보다도 강렬한 애착을 느끼게 된다. 초반에 두 인물이 지닌 서사가 진행되며 조금 더딘 느낌이 들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노아와 아스트리드가 어떻게 서로를 끔찍이 위하게 되었는지 가장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 되기도 하는 것이 이들의 과거이다. 만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고, 아무리 전시의 서커스단 생활이라지만 좋지 않았던 첫 만남을 생각하면 이들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저 언덕 너머로 갈 수만 있다면 독일을 벗어나서 자유와 안전을 보장해 줄 출구를 찾을 수 있을 텐데. 테오와 함께 이 공중그네를 타고 저 멀리 날아가 버릴 수만 있다면!


- 113p 〈고아 이야기〉 중에서


 

 

 

전쟁 속 고아



말하자면 세 명의 고아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집에서 쫓겨나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에 고아와 다름없는 노아, 그녀가 데려온 테오, 가족을 잃은 아스트리드. 게다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 상황에서 테오와 아스트리드는 유대인이라는 약점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들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애증의 서커스단만이 위험을 덜어줄 뿐이었다.

 

전쟁 속에서 환상을 연기하고 없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공연을 이어나가야 하는 서커스단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해준 공간이기도 하지만 매일 목숨을 내놓다시피 하며 연습을 하고, 점점 위험해지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해야 했다. 그마저도 아스트리드는 어렵게 만난 피터를 잃었고, 모두를 지켜주던 단장 노이호프의 죽음을 맞이하며 이야기는 점점 비극으로 치달았다. 

 


우리의 눈동자가 맞닿았다. 나만 믿어. 아스트리드의 눈빛이 말하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양손을 놓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아스트리드가 내 손을 붙잡았고, 나는 거꾸로 매달린 그녀 아래로 매달렸다. 안도감과 흥분이 온몸으로 퍼졌다.


- 191p 〈고아 이야기〉 중에서


     

이해하기 어렵고 상상조차 하기 싫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고아들의 이야기. 지금 생각해보면 노아와 아스트리드의 삶은 그 자체로 비극이었다. 늘 삶에 절박하고 간절하지만 기쁨의 순간에 비해 너무도 큰 슬픔이 잠식해버린 生이었다. 더 잃을 것이 없다고 했던 곳에서 또다시 소중한 것을 잃고, 그럼에도 살기 위해 도망쳐야 했다. 인물들의 삶에서 그 몇 달은 물리적 시간으로는 얼마 되지 않겠으나, 이때의 경험은 가장 강렬하고 슬픈 기억들로 점철되어 이후의 삶을 크게 바꾸어 버렸다. 두 인물의 결말은 달랐지만 누구의 것도 해피엔딩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남은 행운으로 남은 삶을 이어가지만 씁쓸하고 힘든 기억이 남긴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아와 아스트리드가 그토록 서로를 위할 수 있었던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불신과 좌절이 가득했던 전쟁이 남긴 슬픔. 그리고 그 슬픔을 기리는 생존자들이 느낄 삶의 무게. 감히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책이 전하고자 한 이야기는 결국 이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이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삶에서도 인간이 보여주는 사랑과 희생의 의미. 한번 책을 읽은 것으로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종종 이들의 이야기가 생각이 날 것 같다.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떠올려보며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있었을 법한 이 <고아 이야기>를 곱씹어보려 한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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