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울 앞에서 웅크리는 당신에게 [도서]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글 입력 2019.02.0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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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젊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외모라고 교육한다면 당연히 남성(그리고 여성)은 여성에게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히고 싶을 때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에린은 그 사실을 잘 묘사했다. “이해가 가죠? 왜냐하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니까요. ‘너는 못생겼어.’ 이게 바로 여자를 난도질할 가장 손쉽고도 날카로운 칼이에요.”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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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을 맞아 오랜만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이 날은 내가 안 되고, 저 날은 네가 안 되고, 그 날은 쟤가 안 되고, 결국 미루고 미루다 1월 끝자락에야 만나게 되었다. 약속 시간은 7시, 장소는 집에서 40분 거리인 강남역 11번 출구 앞. 지금 시간은 5시, 나는 친구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나 좀 늦을 것 같다. 미안!”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약속 시간까지 두 시간이나 남겨두고서 왜 지각을 직감했는지, 알 사람은 모두 알 것이다. 나도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외출 준비에 한 시간 이상을 쏟았던 사람이었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머리를 세팅한 후 액세서리와 향수를 뿌리고는 파우치를 챙긴 후 가방에 넣고 구두를 신기까지 넉넉잡아 한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었다. 행여 화장이 망가질까, 치마가 나풀거릴까, 목걸이가 삐뚤어졌을까, 머리가 엉킬까 걱정되어 늘 손에 손거울을 들고 다녔다.

작년 여름쯤부터 인터넷상에서 ‘탈코르셋’이라는 용어가 내 눈에 띄었던 것 같다. 과거 귀족 여성들이 허리를 잘록하게 보이기 위해 착용했던 코르셋이 현재는 여성들의 외모 강박을 비유하는 용어로 사용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탈코르셋 담론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졌기 때문인지 관련 최신 논문이나 연구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평소에도 여성학과 여성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몇 안 되는 논문을 찾아 읽은 후 탈코르셋에 더 관심이 생겼다. 이 책을 접하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 책은 여성들의 외모 강박이 왜 생겼는지, 외모 평가와 외모 칭찬이 어째서 여성혐오적 텍스트인지, 또 여성들이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다룬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그 어디에도 답을 제시해 두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답은 개인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처한 강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Case-by-case,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자는 것이 저자의 핵심 논지다.

 

주체적 꾸밈 VS 답습되는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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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머릿속이 많이 복잡했다. 내가 화장을 하는 이유는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자기만족과 자기표현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눈두덩에 화려한 펄 섀도를 바르고,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바를 때만 느낄 수 있는 쾌감이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 속에서 펄 섀도와 붉은 립스틱을 바르는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는 걸 간과했다.

이 책에서는 꾸미는 여성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꾸미고 싶다면 마음껏 꾸며도 좋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에 가깝다. 책에서는 외모 강박에 시달렸던, 혹은 여전히 시달리는 중인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여성은 화장품을 깨부수기도 했고, 어떤 여성은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기도 했지만 또 어떤 여성은 여전히 화장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핵심은 화장의 유무가 아니라 화장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화장이 아니더라도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며, 치마를 입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사랑 받을 만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머리에 새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탈코르셋 담론에 이견이 많은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백래시(backlash)’ 때문이다. ‘백래시’라는 용어는 원래 ‘반발’이라는 뜻을 가진 사회학적 용어지만 수전 팔루디가 본인의 책 ‘백래시’에서 그 용어를 여성주의적으로 재정의한 후로 여성학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는 여성 인권 성장에 제지를 거는 행동을 ‘백래시’로 칭하며, 1980년대 미국 신보수주의에서 파생한 반페미니즘 물결을 자세히 분석했다. 그 후로 여성학에서 ‘백래시’가 상당히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탈코르셋과 백래시, 어떻게 보면 두 용어는 절대 대립하지 않는 개념으로 보인다. 두 용어 모두 여성의 인권 성장을 목표로 둔 여성학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삶은 평평한 2차원이 아니라 온갖 모순으로 엉킨 3차원이다. 탈코르셋 담론이 백래시와 합쳐진 후, 내가 원해서 하는 화장이 누군가의 외모 강박을 심화시킬 수 있기에 화장 자체가 백래시라는 지적이 나왔다. 따라서 여성의 화장과 꾸밈, 나아가 가부장제가 그대로 답습된 결혼 및 남성과의 연애 또한 여성 인권을 퇴보시키는 백래시가 아니냐는 의견도 속출했다. 이러한 담론이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발전된 경향이 있어, 요새는 ‘래디컬 페미니즘’ 하면 치를 떠는 사람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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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제다. 나는 여전히 파운데이션과 립스틱을 버리지 못했고, 가끔씩 원피스와 구두를 신고 싶기도 하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걸 싫어해서 클럽은 원래도 가지 않았지만 소개팅은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여성주의적으로 한국 문학을 분석하는 동아리를 기획하러 갈 때도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갔다. 이렇게 모순적일 수가 없다.

얼마 전 한 클럽에서 여성에게 불법 약물을 먹인 후 끌고 나가려던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제지당하자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약물을 먹인 남성을 모른 체 하자, 세간에서는 경찰도 저런 성추행 및 성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세상 참 흉흉하다. 유명 아이돌이 엮여 있다는 사실보다도 경찰이 내 치안을 책임져 주지 못할지 모른다는 게 더 충격적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뇌리에 스치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나 위험한데, 꼭 클럽을 가야겠느냐는 반문이 나오는 것도 십분 이해가 간다. 나 같아도 주위 친구가 클럽을 좋아한다면 “이제 제발 가지 마”라며 발 벗고 말릴 터다. 당신의 행동이 여성 인권을 퇴보시킨다는 죄책감을 얹어 주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저 당신의 행동에 딸려 오는 위험을 책임져 줄 타인이 없기에, 같은 여성으로서 건네는 한 가지 걱정일 뿐이다.

어떠한 운동이 거세다는 것은 그만큼 억압이 심하다는 뜻이라던 명언이 떠오른다. 한국에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점차 그 영역을 넓히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일 터다. 인권 운동의 갈래는 수도 없이 많고 방법 또한 셀 수 없이 다양하다. 하지만 그 운동 안에서 잊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진리는 ‘인권이 소중하다’이다. 페미니즘에서 잊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진리는 ‘여성 연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탈코르셋과 백래시가 어떤 상황에서 나온 용어인지 다시 한 번만 생각해보자는 의미다.

여성 해방과 성평등을 위해서는 여성들의 클럽 불매와 꾸밈 노동 파업도 물론 중요하나, 불법 동영상 카르텔과 클럽 카르텔을 무너뜨리는 것이 직접적 해방 운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달리는 말 앞에 우뚝 서서 ‘여성에게 참정권을!’을 외치고,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그들의 희생과 운동이 현재의 여성들을 만들어낸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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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듯하게 말을 포장하기는 했으나 나는 여성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상세한 연구를 진행해 본 적도 없는 ‘조무래기’다. 단지 책 몇 권, 강의 몇 번을 들었을 뿐 여성학에 관해 조예가 깊은 편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연을 전공하지 않아도, 문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클래식이나 성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저마다의 생각을 담은 글을 생산하고 향유한다. 물론 문화와 인권은 참으로 거리가 먼 학문이나, 한 여성 개인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야 말로 나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고민하고 공부한다. 어디 가서 “저 페미니스트예요.”라고 선뜻 이야기할 용기는 여전히 없고, 화장품을 죄 버리지도 못했지만 더 나은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숏컷을 하지는 못했지만 단발로 잘랐고, 화장품을 부수지는 못했지만 외출 준비 시간을 30분으로 줄였다. 저마다의 노력이 모여 하나의 물결을 이루듯이, 이런 활자가 모여 누군가에게 용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도서 정보>

책 제목 :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저자 : 러네이 엥겔른
역자 : 김문주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페이지 : 352쪽
ISBN : 9788901219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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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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