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그녀의 예술 [시각예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아트
글 입력 2019.01.31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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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아트라는 장르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언제쯤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좀처럼 해석하기 어려운 행위, 와 닿지 않았던 표현 방식들은 나와 퍼포먼스 아트 사이에 장벽을 쌓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이지 않는 묵직한 언어로 나의 장벽을 허물어준 작가가 있다. 바로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 모비치(Marina Abramovic)’이다. 내가 느꼈던 이 울림을 함께 느끼고 싶어 그녀의 예술세계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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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출생의 작가이다. 그녀는 도발적인 퍼포먼스의 대가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삶의 배경을 보면 짐작해볼 수 있다. 과거에 작가의 할아버지는 세르비아의 그리스도 정교회 대주교였다. 그러나 그는 왕에게 살해당하였고, 작가의 부모님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르티잔(유격전을 수행하는 비정규군 요원의 별칭)으로 활동하시며 많은 정신적·육체적 수난을 당하셨다. 평탄치 않은 배경으로 작가는 죽음과 고통, 두려움, 한계 등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표현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약 40년의 시간 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각국의 문화를 접하고 인간과 내면, 의식 등을 계속해서 탐구했다. 브라질에서 힐러들을 만나며 치유 의식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고, 티베트에서 명상의 본질을 연구하기도 했으며, 일본과 한국에서 샤먼 문화를 학습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바탕으로 인간 내면의 의식을 이해하고 존중했으며 이를 예술과 접목시키는 과정을 사회에 선보였다.




리듬 0 (Rhythm 0),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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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한쪽 테이블에는 72가지의 물체가 놓여있다. 칼, 가위, 면도날, 권총, 꽃, 향수, 포도 알, 빵 등이다. 그리고 안내문이 하나 쓰여 있다. <테이블 위의 72가지 물건을 원하는 대로 제게 쓰십시오. 나는 객체입니다. 프로젝트 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 소요시간 : 6시간> 처음엔 관람객들은 머뭇거리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에게 다가와 꽃을 건넸고, 키스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2시간이 지난 후, 누군가가 면도날로 그녀의 옷을 찢었다. 그 면도 날로 살을 살짝 베기도 했고 성적 추행을 행하기도 했으며, 머리에 총을 겨누는 사태도 벌어졌다. 공연이 끝난 후, 작가가 관람객들에게 다가가자 눈치를 보며 그녀를 피했고 멀리 도망쳤다.


작가는 이 퍼포먼스를 통해 각자에게 무관심한 모습, 메마른 감정의 시대, 고통에 대한 방관을 일깨우게 했다. 6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로 나약함을 뿜어내는 개인을 막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였다. 그저 바라보고, 수군대고, 사진을 찍어대기 바빴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힘과 지성, 집단적 규모를 이루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 ‘방관자’로 전락한 관객 즉 우리에게 “그저 바라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Rest Energy,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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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속 작가와 함께 등장한 남성은 작가의 옛 연인이자 퍼포먼스 아트의 대부라 불리는 와 울라이(F. Ulay)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The Others’라는 예술 그룹에서 함께 활동하며 다양한 실험적 예술을 선보였다. 이 둘은 장기간 만남을 끝내고 이 작품을 통해 몇 년 만에 다시 만남을 가졌다. 아브라모비치는 활대를 잡고 있고, 울레이는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화살이 겨냥된 곳은 아브라모비치의 심장이다. 화살이라는 그 위험하고 날카로운 존재는 균형을 잃을 시 언제든 아브라모비치를 다치게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이 아찔하고 떨리는 순간에 눈을 떼지 못하며 이 둘의 모습과 흔들리는 활시위를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작가는 둘 사이에 놓인 화살이라는 소재를 수단 삼아 서로에 대한 신뢰와 균형을 선보이고 있다. 행위를 통해 “나는 이 활시위를 놓지 않을게”, “나는 네가 화살을 쏘지 않을 것을 알아”라는 말을 주고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공간에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서로 뿐이다. 자신들 외에 아무도 알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쌓여온 그들만의 눈빛, 몸짓, 표정으로 균형을 이루며 믿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The Artist is Present,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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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마주하라는 이 작품은 아브라모비치와 관객들이 아무 대화도 없이 딱딱한 탁자에 마주 앉는다. 그리고 서로를 관찰하고 견딜 수 있을 만큼 지긋하게 바라본다. 참여 관객은 ‘모르는 사이가 마주 앉는 일’이라는 불편한 상황을 직면하고, 바라보는 관객들은 이 침묵의 상황을 직면한다. 그러나 점차 서로 간의 벽을 허물고 내면의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과정 속에서 무표정 안에 감춰진 즐거움, 공포, 슬픔, 행복 등의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이 퍼포먼스를 행하던 중, 그녀의 옛 연인 울라이를 만나게 된다. 무표정, 무감정 이라는 퍼포먼스의 틀에 벗어나 작가는 감정이 담긴 표정과 미세한 떨림과 눈물을 보였다. 울라이는 많은 이야기를 하듯 눈을 여러 번 깜박이고 고개를 움직인다. 이내 이들은 손을 잡고 진심어린 마음을 나눈다. 그 누구도 그것을 비난하지 않았고, 박수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보냈다. 관객들도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대화를 느끼고 응축된 진심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과 나, 너와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무언의 대화를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인지하기 어려운 서로간의 간극을 무형의 예술로 보여주었다. 인간의 내면에 대한 그녀의 깊은 탐구가 드러나는 퍼포먼스였다. 또한 우연치 않게 성사된 울라이와의 만남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따뜻한 본질을 보여주는 듯 했다.


*


퍼포먼스아트라는 장르를 통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관객이 직접 참여하고 과정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피부로 와 닿게끔 했다. 급변하는 사회와 기술 사이에 놓인 우리, 물질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쫓는 우리, 명예와 인정에 대한 욕구를 놓지 못하는 우리, 외관과 품위에 치우친 우리에게 가장 저면에 자리한 내면의 의식과 진실된 감정을 살펴보게 하였다.



아뇨. 안타깝게도 못합니다. 요제프 보이스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절대로.


세상은 각성된 개인이 모두 실천할 때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술이 세상이 나아갈 길 정도는 보여줄 수 있겠죠. 하지만 의식의 변화는 개인이 이루는 겁니다.


-Marina Abramovic



예술은 세상을 마법처럼 변화시키진 못하지만,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개인을 변화시킬 힘을 지녔다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그녀가 진심으로 대한 예술은 관객들의 생각을 깨우게 할 것이다. 진심과 스토리가 담긴 예술이야 말로 지금 가장 필요한 예술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다.






The Artist is Present, 2010





[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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