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쟁에서 피어난 한 줄기 애정 - 고아 이야기 [도서]

그리고 21세기의 모든 고아를 위하여
글 입력 2019.01.3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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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받아 봤을 때,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한 번 놀라고,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급속도로 높아진 흡입력에 두 번 놀랐다. 제2차 세계대전, 어떻게 보면 뻔한 주제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뻔해져서 전쟁에 완전히 물려버릴 정도로 많이 다루어져야 하는 주제기도 하다. 전쟁 상황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메시지는 차고 넘치지만, 그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에 달렸다.

그런 의미에서 ‘고아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독특한 캐릭터 서사와 흡입력 있는 플롯 구성, 세심한 고증과 섬세하고도 거침없는 전개가 전쟁을 그려내어 메시지는 한층 더 강해졌다.



노아와 아스트리드 – 고아의 재정의



독일군과 의도치 않게 아이를 가져버린 노아는 한 순간에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떠돌게 된다. 그러다 아기들을 잔뜩 실은 유개화차를 발견하고는 본능적으로 유대인 아이 한 명을 데리고 도망친다. 독일군에게 빼앗겨버린 자신의 아이를 생각하며 손을 뻗은 것이다. 길고 긴 유랑 끝에 노아는 한 서커스단에 도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유대인 곡예사 아스트리드를 만난다. 아스트리드는 전쟁 탓에 독일군 남편과 이혼한 후 가족과도 뿔뿔이 흩어져 노이호프의 서커스단에 자리를 잡은 뛰어난 곡예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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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와 아스트리드는 서로를 견제하기도, 미워하기도, 거짓으로 속이기도 하며 여러 갈등을 겪는다. 관계가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갈등을 겪어야 하는 법, 그들은 결국 서로의 상처와 상실을 보듬는 존재로 성장한다. 그러나 전쟁 상황 속에서 애틋함과 배려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유대인 아이를 제 자식처럼 키우는 노아, 그리고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아스트리드는 전쟁이 심각한 국면을 맞이할수록 더욱 더 궁지에 몰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아는 금지된 사랑에 빠져버리고, 노아와 아스트리드의 관계는 마치 안전 장치 하나 없는 공중곡예처럼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노아와 아스트리드는 ‘고아’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노아의 부모님이나 아스트리드의 부모님은 서로와 뿔뿔이 헤어지기 전까지 살아계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고아는 사전적 정의의 고아가 아니다. 어디 하나 기댈 곳 없이 버려진, 전쟁이라는 참혹하고 극단적인 상황에서 믿을 구석이라곤 제 육신뿐인 사람을 지칭한다. 아스트리드와 노아는 그런 면에서 공통적인 결핍을 가지고 있었고, 우정을 넘어선 유대와 사랑으로 믿음을 빚어냈다.


“이제 이해할 수 있어요. 두려움을 없애 주려고 일부러 그런 거겠죠.”

아스트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바보들이나 두려워하지 않는 거야. 힘든 상황일수록 두려움을 놓지 말아야 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기를 바랐어.”

- 134쪽


우리는 둘 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다. 나는 부모님에게, 아스트리드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셈이니까. 게다가 가족을 잃었다는 점에서도 똑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어느 면에서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 135쪽




그들의 유대,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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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서커스는 단순한 유흥이나 오락거리로 소비되지 않는다. 국경을 넘어 모두에게 한 줄기 행복으로 작용하는 작은 위로다. 서커스의 관객도, 서커스 무대 위의 곡예사도, 서커스를 준비하는 모든 직원들에게도 서커스는 공연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아스트리드는 목숨을 걸지언정 서커스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노아 또한 제 모든 걸 포기하고서라도 공연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를 악 문다. 서커스 단장 노이호프는 어떻게든 서커스를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며 목숨 바쳐 공연을 지킨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공연을 사랑하는 이유는 서커스가 유대감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커스로 만나 서커스로 뭉쳤다. 전쟁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웃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서커스였고, 자신들이 웃을 수 있는 순간도 공중으로 몸을 날릴 때뿐이었다. 상대를 온전히 믿지 않으면 성공적인 곡예가 불가능하기에, 이들은 서로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갖게 된다. 노아와 아스트리드가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진실로 다가가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관계의 시작은 서커스였고, 관계의 절정 또한 서커스였다.


“걱정 마. 사람들은 아직도 서커스를 사랑하니까. 서커스는 국경이 없어.”

- 155쪽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건 생존이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타인의 도움이다. 물리적인 도움보다도 심리적인 안정, 유대,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다. 서커스가 전쟁 중에도 미약하게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 당시 모두가 행복을 간절히 갈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서커스가 보여주는 작은 환상과 잠깐의 오락이 전쟁에 지친 심신을 달랬을 것이다. 노아와 아스트리드도 그런 이유에서 서커스를 쉽게 포기하지 못했고, 서로의 손을 쉽사리 놓지 않았다.



전쟁에서 피어난 애정




“사는 게 죽는 것보다 견디기 힘들 때가 있는 법이니까.”

- 420쪽


나는 이제 루크도 부모님도 필요하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건 나만의 집이었다.

- 4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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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전쟁의 참상은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갈등과 상실의 근원이 전쟁이라는 점에서 그 참혹함은 더욱 더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전쟁이 심해질수록 그들은 많은 것을 잃는다. 사람, 사랑, 믿음, 그리고 인생까지. 이 작품은 역사소설이 아니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도 2차 대전의 재난을 성실히 그려낸다. 자극적이거나 수위가 높지도 않지만, 담담하고 무미건조해서 더욱 마음을 파고든다. 전쟁 속에서 점차 멀어지는 인물들을 볼 때면 눈에 눈물마저 괸다.


“나더러 서커스단을 떠나라는 뜻이에요?”

노아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눈빛에 의구심이 서려 있었다.

“당신을 두고는 절대 못 떠나요.”

나는 노아의 충성 어린 태도에 감동 받아 미소 지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노아는 서커스에 나타난 이방인이었다. 낯선 사람. 이제 서커스는 노아가 아는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 344쪽


이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이들의 애정이 꽃을 피웠기에 그 유대가 눈이 시리게 아름답다. 책을 읽을수록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은 덤, 이들이 어떻게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 결국 마지막 선택을 남겨둔 상황에서 각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볼 때는 마음을 잔뜩 졸였다. 그만큼 이야기의 흡입력이 강하고 매력적이다. 동시에 서사가 가진 메시지가 육중해 뇌리에 깊게 박힌다.

이 책을 읽는 우리는 2차 대전 속에 있지도 않고, 빗발치는 총알 틈에서 생존을 위해 도망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노아와 아스트리드에 깊게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까닭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전쟁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 속에서 찾는 유대감과 따뜻한 애정, 시린 아픔과 상실까지, ‘고아 이야기’는 말 그대로 ‘고아’의 이야기다. 어디 하나 기댈 곳 없이 홀로 서 있는 현대인들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도서 정보

제목: 고아 이야기
(원제: The Orphan’s Tale)
분류: 소설 / 외국소설 / 미국소설
지은이: 팜 제노프(Pam Jenoff)
옮긴이: 정윤희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8년 11월 12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페이지: 504쪽
정가: 14,800원
ISBN: 979-11-965176-0-1 03840
CIP제어번호: CIP2018034684


책 소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2017년 굿리즈 역사소설분야 베스트셀러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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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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