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사랑하는 이름들에게 [사람]

글 입력 2019.01.2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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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


- 괴테



올해의 시작은 마치 파도처럼 내게 밀려왔다. 겉잡을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쏟아졌고, 나는 그것들을 이제 피할 수 없이 주워 담아야만 했다. ‘취준생’이라는 신분, 자격증 공부, 각종 지원서 등등. 뉴스로만 접했던 취준 생활에 나는 드디어 내던져졌고 내가 내딛어야 할 길은 시작부터 깜깜했다. 나름 대학 4년 열심히 보낸 것 같았는데, 막상 지원서 양식을 펼치고 나면 ‘나 도대체 뭐 한 거지?’라는 문장을 연신 내뱉게 되는 마법 같은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앞길이 막막한 진짜 취준생이 되었고, 어느덧 명절이 신경 쓰이는 나이에 다다랐다.


당당히 이력서를 채워 넣을 경험이나 자격들이 급히 필요해진 나는 1월 1일이 되자 ‘올해는 정말 누구보다 알차게 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고, 후회 없는 한 해를 만들어 보기 위해 닥치는 대로 계획을 세우고, 휴식을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취준 모드’의 도입인 셈이었다.


본격적인 취준 시작과 동시에, 나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겨났다. 그건 바로 이따금씩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백업해 둔 예전 사진 파일들을 틈날 때마다 한 번씩 들여다보는 것이다. 과거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비록 훨씬 촌스럽고 서툴렀지만 나의 과거들은 지금의 나를 잘 위로해주었다. 그것은 아마 나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들을 기록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열여덟을 지날 무렵이 그러했다. 열여덟이 된 후 나는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일곱 명의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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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을 지나, 열여덟이 막 시작될 무렵의 나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과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쉽게 절망하고, 몹시 의존적이며, 잘 웃지도 않았다.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나 스스로를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었다. 자존감이 없으니 자신 있게 의견을 피는 것도 불가능했다. 열일곱까지의 나의 신경을 오로지 지배했던 것은 부정적인 추측과 나를 향한 자책이었다. 어린 나는 나 스스로를 그렇게 갉아먹으며 점점 병들어갔다.


그렇게 내내 회색의 날들을 보내던 나는 열여덟의 입구에 들어서고, 일곱 친구들을 처음 만났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처음 만났고, 친해지게 되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오래 지나지 않아 내가 어떤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친구들이 내 삶의 하늘에 박혀 오랫동안 반짝거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우리는 어느 하나 모난 사람이 없었다. 친구 사이라는 것이, 특히 교복을 입을 시절의 여자 아이들 무리를 말하자면 자칫 작은 것으로도 크게 다투고 불화가 생기기 쉬운 집단이기 마련인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렇지가 않았다. 온통 동그란 원 여덟 개가 매일을 마주보며 닿아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늘 함께했다. 이른 아침부터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늦은 밤까지. 잔뜩 피곤에 찌든 월요일부터, 끝나고 먹을 간식 생각에 들떴던 주말 자습의 끝까지. 누구 하나 뾰족한 날을 세우는 사람 없이, 우리는 서로 맞닿으며 둥근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점차 안정을 되찾으며 예전보다 더 많이 웃고, 예전보다 더 많이 희망과 미래를 말하기 시작했다. 일곱 명의 친구들이 내게 만들어 준 기적같은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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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계절을 함께 거쳐왔다. 행복하게도 많은 계절의 풍경 속, 그동안의 사진에는 함께 성장을 거듭해 온 ‘우리’가 있다. 열여덟의 순간, 놀랍게도 나는 순식간에 행복한 사람이 된 것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우리는 늘 거기, 서로의 옆에 있었다.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었다. 또한 무척이나 행복하고, 행운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일이기도 하다.


어느덧 우리는, 지금 각자의 삶에 불어 닥친 거대한 파도들과 마주하고 있다. 그 파도 앞에서 누군가를 잠깐 멈춰 휴식을, 누군가는 끊임없는 도전을, 탐색을 각각 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 모두가 가진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씩씩하게 파도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일 테다.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삶을 등지지 않고 매 순간 직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내 곁에 두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엄청난 행운과 행복으로 느껴지게 된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그들을 보며 나도 다시 한 번 삶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 사랑하지 않을 구석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나는 진심으로 우리 모두가 각자의 앞에 불어 닥친 이번 파도를 무사히 잘 견디기를 바란다. 그래서 결국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의 바다로 나아가 닿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충분히 그래왔으므로. 더불어 고개를 돌리면 서로가 늘 거기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이제는 비로소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야 할 2019년, 우리 여덟 명의 앞날에 늘 행운이 따르길. 인생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멋지게 버티길. 마지막으로 나를 다시 성장하게 해준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이토록 새삼스럽게 하고 싶었지만 전하지 못했던 한마디를 전한다. 우리는 지금도 늘 잘 나아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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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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