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워라밸의 시대 : 뉴필로소퍼 4호 Review

뉴필로소퍼 4호 Review
글 입력 2019.01.27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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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걷는다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대학 합격을 위해 잠을 줄이고 자투리 시간까지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하는 수험생들에게는 거의 진리와도 같은 말이다. 언제나 적들의 책장은 빠르게 넘어가고 있기에,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수험생들에게 느린 걸음은 사치다. 항상 숨이 차도록 뛰어야 한다. 오늘을 그렇게 열심히 뛰고 나면, 또 다시 뛰어야 하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 숨 차는 하루하루가 지나면 반드시 밝은 미래가 올 것이다. 많은 수험생은 그렇게 믿는다.  생산적이고 유용한 삶에 대한 강박은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생산적이고 유용한 일에 모든 시간을 바치는 삶의 심각한 문제점은 단지 성공하지 못할 경우 지치고 낙담한다는 데 있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인생의 모든 경험이 오로지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살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순간에만 가치를 두게 된다.



‘성취가 과거나 미래에만 있어 끊임없이 현재로부터 멀어지는 삶’은 내적인 공허함만을 남긴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는 지극히 ‘현재 지향적’인 놀이가 필요하다. 하지만 멈춰 서는 것이 두려운 많은 사람들에게는 노는 것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하면 제대로 놀고 휴식할 수 있을까.


뉴 필로소퍼 4호는, 이러한 물음에 흥미로운 답을 내놓는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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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워라밸의 시대다. 하지만 아직도 노는 것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걷는다면 내일은 뛰어야 하는’ 일상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이런 불안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성실과 근면은 분명 미덕이다. 하지만 잠시 멈추는 것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그것이 누구를 위한 미덕인지는 잠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노동은 현대 사회에는 불필요한 노예의 도덕이며, 역사적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아닌 주인의 이익을 살아야 한다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동의 의무를 강조했다고 주장한다. 기술이 발달해 전처럼 수많은 노역이 불필요해진 현대 사회에서 굳이 여가를 버려가며 ‘신성한 노동’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러셀의 의견은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가 심각하게 무너져 있는 현대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누군가의 여가를 위해 누군가가 밤을 새워 일하는 현대 사회가 노예의 도덕을 강조했던 산업화 사회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현대인들에게 강요되는 성실 근면의 가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우리가 산업화 시대 노예의 도덕에서 벗어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놀이’다. 무목적이고, 현재 지향적이며, 사소하면서도 심각한 놀이는 그래서 가장 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이 특권층의 여가나 사회 구조의 유지를 위한 것이라면 놀이는 나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것이다. 잠시 멈춰 서서 노는 것마저 불안해진다면, 그동안 놀이에 너무 적은 가치를, 혹은 일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해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스터디 앤 라이프 밸런스




어른들을 위한 놀이는 세상의 온갖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데 반해, 아이들은 점점 놀 때조차 정해진 방식과 목표를 추구하며 지나치게 빠른 성장을 강요받고 있다.



워라밸의 붕괴 현상은 비단 어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욱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정말 없는 학원이 없다. 학원을 몇 개씩 순방하다 밤을 새워 유튜브를 보는 것이 많은 아이들의 일과다. 밖에서 다른 아이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수많은 변수에 노출되는 경험이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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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어른들은 아이 시절을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시간은 온갖 유익한 교육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이들은 놀 때조차 무언가 교훈을 주는 교육용 완구와 교육용 서적을 가지고 논다. 하지만 이렇게 뚜렷한 하나의 목표를 가진 놀이 도구는 아이들의 자유와 상상력을 제한할 뿐이다. 교육은 어른들이 의도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고 놀이는 아이들이 새로운 관계와 상황을 온몸으로 겪으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거기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도 있고, 전혀 배우지 못할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교육용 완구를 던져 주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우길 바라는 마음이겠지만, 아이라고 해서 항상 무언가를 배울 필요는 없다.


노는 법을 모르는 아이는 노는 법을 모르는 어른으로 자란다. 교육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은 의도치 않은 곳에서 번뜩이는 발상을 얻어내는 경험과 어른들의 시선 밖에서 놀며 자유를 만끽하는 경험도 해 보아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스터디 앤 라이프 밸런스가 절실한 시점이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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