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역사라는 이야기, 그에 관한 주저리 [문화 공간]

국립고궁박물관을 다녀와서
글 입력 2019.01.2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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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 지나온 날의 기록이라는 뜻풀이처럼, 영어의 ‘history’에도 ‘story’라는 단어가 숨겨져 있다. 역사는 결국 이야기이다. 사람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을 서술한 각종 소설, 드라마, 영화처럼 역사도 결국 사람들이 만든, 사람에 의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초중고를 넘어 대학까지 수도 없이 많은 역사 수업을 듣고, 외우고, 시험을 치렀다. 사실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연도, 인물, 개혁 내용 등 달달 외운 것들이 많지만 수업을 듣는, 즉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만큼은 나도 함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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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하고 말고를 떠나 올림픽과 한일전 때만큼은 누구나 애국자가 되듯이, 옛 사람들의 이야기에 웃고 울고 때로는 분노하게 되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학창시절 수업시간,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서로의 지배를 인정한 협약인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배울 때 한 친구가 ‘지들이 뭔데 마음대로 인정하냐’며 질문하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분명, 역사 속에는 아픈 이야기가 많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배우는 게 역사라지만 그 시절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을 마주할 때는 더 아프기도 하다. 어차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데, 또 시대가 변한 만큼 환경과 가치관이 천차만별인데 굳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정답은 없을 것이다. 내가 수학을 싫어하는 만큼 누군가는 역사를 싫어할 것이기에, ‘한국인이라면 알아야지!’라며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타인이 억지로 떠먹여주는 밥은 체할 뿐, 절대 내 것으로 온전히 소화시킬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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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공부한 양에 비해 많이 까먹었다. 촘촘하게 연표를 만들어 하나하나 다 외우던 시절은 이미 가버렸고, 수능과 함께 기억은 소멸되었다. 한국사가 전체 필수 과목이 아닌 서울대 필수 과목이던 시절, 한국사만큼은 만점을 놓치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수능 때 실수로 2점짜리를 틀려 2등급을 받았던 뼈아픈 기억만 남았을 뿐.

 

하지만 역사는 하나의 ‘이야기’이기에, 결과와는 관계없이 관련 수업, 전시, 영화 등을 경험한 후 느낄 수 있는 울림이 있다. 시대를 넘어 같은 사람이기에 공감할 수 있고, 또 교감할 수 있다. 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써내려갈 수 있을지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지난 수업시간에 태종 이방원에 관해 자세히 배웠었다. 복잡한 권력다툼에 얽혀들지 않고 한 나라의 왕자로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는 못 살겠다’며 이복형제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아버지에게 말하던 태종. 그에 비해 순순히 양위를 하고 평생 풍류를 즐기며 호의호식한 정종은 같은 부모를 둔 형제임에도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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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육룡이 나르샤> 中)


여러분이라면 어떤 삶을 택하겠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 인정하는 ‘쫄보’이기에 정종처럼 편하게 살고 싶다가도 인간의 가장 최상위 욕구라는 자아실현욕구는 또 커서 태종처럼 하고 싶은 일은 해야 직성이 풀린다(물론 그렇다고 법적 도덕적으로 위배되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결국 또 제자리다. 하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것, 그것이 역사라는 ‘이야기’의 가치이자 매력이 아닐까. 같은 작품을 읽고도 저마다의 의견이 다른 것처럼, 같은 이야기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이야기의 색은 완전히 달라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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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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