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우리 : 영화 '영주'

글 입력 2019.01.2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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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인디스페이스'



평소에 영화관을 즐겨 찾는 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데드풀2>였던가, 대충 어림잡아도 영화관에 간지 반년은 훌쩍 지난 듯하다. 그러던 와중에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이 있다는 소식에 호기심을 느껴 영화를 보러 나섰다. 아마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이 극장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지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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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페이스는 서울극장 내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매표소를 찾기가 어려워서 직원에게 묻고 물어 겨우 도착했다. 티켓에는 상영관이 어디인지 표기되어 있지 않았고, 표지판이나 포스터도 비치되어 있지 않아 상영관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영화관이 너무 불친절한 것 아니냐-고 투덜대다 결국 친구와 함께 5분정도 지각을 하고 말았다.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영화는 정시에 시작된 상태였다. 상업, 자본과 독립된 ‘독립영화’만의 공간이라는 점이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객석 내부에는 10명가량의 관객뿐이었다. 불친절함에 투덜대던 나는 그제야 ‘독립영화’라는 장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화려하지 않고, 상업적이지 않은. 영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기는 예술 장르이지 않은가. 낯선 분위기 속에서 ‘영주’의 삶 그 자체와 같은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열아홉 어른아이,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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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애 아니에요.
엄마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영주-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게 된 열아홉 살의 '영주'.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가족과 함께 살던 아파트 한 채와 남동생 '영인'뿐이다. 남동생을 제외한 유일한 가족은 고모와 고모부뿐이지만, 그들은 영주의 아파트를 팔아 이익을 얻으려 할 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홀로 남은 영주의 삶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 영주는 이들에게 말한다. ‘저 애 아니에요. 엄마 같은 건 필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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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고 강인한 듯 보이지만, 영주는 인생을 홀로 짊어지기엔 버거운 열아홉 살 소녀일 뿐이다. 졸지에 가장이 된 영주는 자신의 학업을 포기한 채 동생 영인이를 책임지려 노력한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자꾸만 어긋나는 동생은 절도죄로 경찰서에 수감되고, 300만원이라는 거금의 합의금을 구하려던 영주는 설상가상으로 대부업체에 사기까지 당하게 된다. 연거푸 덮쳐오는 불행에 영주는 애써 지켜오던 집을 팔아 버려야하나,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고민 끝에 영주는 자신의 부모를 죽게 만든 ‘상문’에게로 향한다.


아이처럼 덜컥 비밀을 폭로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영주는 상문의 두부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나름의 신중한 방식으로 복수를 하려 했을 테다.




뜻하지 못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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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좋은 애야
아줌마는 알 수 있어'

-향숙-


인생이 뜻한 대로만 흘러가면 좋으련만, 영주는 뜻하지 않게 ‘상문’과 그의 부인 ‘향숙’에게서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집에 초대해 함께 밥을 먹고, 따뜻한 옷을 사주는, 돈을 훔치려 하던 영주에게 기꺼이 필요한 돈을 내어주는 ‘향숙’과 무뚝뚝한 듯 보이지만 묵묵히 옆자리를 채워주는 ‘상문’. 영주는 저도 모르게 이들을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그들에 대한 애정은 교통사고에 대한 죄책감으로 힘겨워하던 ‘상문’에 대한 용서를 순리인 듯 이끌어냈다. 열아홉 살 소녀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애정과 진심어린 사랑이었을 테다. 이들은 영주에게 그토록 절실하던 '가족'이었다.


상문과 향숙에게는 코마상태에 빠진 친아들이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어쩌면 ‘내 딸’과 같았던 영주 또한 이들의 상실을 채워줬으리라. 만나지 말았어야할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치유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상문과 향숙은 여전히 영주에게서 친부모를 앗아간 이들이다. 이 사실을 밝히더라도 당신은 지금처럼 나를 따뜻하게 대해줄까. 계속해서 가족처럼 지낼 수 있을까. 용서로 점철된 이 사실을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았던, 한 편으로 이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영주는 결국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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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게도 진실 뒤에 남은 것은 죄책감뿐이었다. 물밀듯 세차게 밀려오는 죄책감에 이들은 더 이상 함께 웃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마음을 나눌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서로를 사랑하려 애쓰던 이들에게는 불의의 사고에 대한 후회, 아픈 현실을 뒤로한 채 정을 나눈 것에 대한 후회가 가득하다. 셋은 돌이킬 수 없는 가혹한 현실 앞에 더욱 아파할 뿐이다.

그들은 결국 가족이 될 수 없었다. 영주의 행복한 삶을 바랐지만 어쩌면 이것이 지독하게 현실적인 결말일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치유하기를 반복하는, 결국은 모진 아픔을 또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그것이 영주의 삶이자 우리의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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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관객들이 <영주>를 어떻게 봤으면 하나요?


어른이 돼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주>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죠. 어른으로 성장하려면 우선 자기 안의 유년과 이별하고 현실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애도의 과정이 그러하듯 그건 정말 쉽지 않은, 혹독한 일이란 걸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주저앉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문턱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영주’를 바라보며 자기 자신이 어른이 되었던 그때를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신에게 ‘괜찮아, 잘했어.’ 칭찬해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혹시 ‘영주’처럼 그 문턱 앞에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영주’의 마지막 선택을 함께 목도하면서 어떤 응원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영주> 감독 인터뷰 中



‘엄마 같은 건 필요 없다’고 강인하게 말하던 소녀는 무너져버린 현실을 마주한 뒤 한강 다리 위에서 저도 모르게 ‘엄마’를 소리 내어 되뇌며 울부짖는다. 절실했던 타인의 사랑, 그리고 가족. 행복만을 바라던 그녀의 앞엔 또 다시 끝을 알 수 없는 절망만이 도사리고 있다.

누군가의 애처로운 운명과는 관계 없이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은 지속된다. 새벽 어스름을 건너 해는 또 다시 떠오르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한다. 진실을 털어놓고 집에 돌아오던 길, 절망을 마주한 채 눈물을 흘리던 영주는 삶을 놓아버리려는 듯 한강 다리 위에 올라선다. 제각기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차 소리가 더욱 서글프게 들려오고, 눈치 없이 해는 또 떠오른다. 서럽게 울던 영주는 몸을 내던지는 대신 살아가는 것을 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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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Colde) 앨범 상실(喪失) 소개글
(출처 - 콜드 인스타그램 @wavycolde)


위 글은 최근에 읽었던 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다. 영화 ‘영주’를 보며 위의 글이 떠올랐다. 살아간다는 것은 상실의 연속이지만, 우리는 다시 채우고 사유하며 살아간다. 끝없는 이별을 겪으며 아파하지만 또 다른 행복을 애써 꿈꾸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 않은가. 따뜻한 사랑을 잃은 열아홉 소녀는 훗날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해 살아갈 테다. 저마다의 아픔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결국 그 자체로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 아닐까. 영주가, 우리 모두가 상실의 아픔을 딛고 계속해서 살아나가기를. 채우고 사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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