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도서]

아빠의 청춘은 찬란했을까, 비참했을까
글 입력 2019.01.20 19: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80년대 중후반, 그 혼란과 격변의 시기, 민주화를 향한 움직임이 극에 달했던 그 시기를 녹여낸 작품을 마주할 때는 절로 긴장감이 감돈다. 뼈 아픈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약간의 고민 끝에 결국은 비장한 마음으로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친다. 비록 내가 지금 이걸 읽고 약간의 아픔을 느낄지라도, 당대를 살아온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일념으로.



2000년대의 초입에 선 화자가
혼란의 80년대 말의 상황을 풀어내는
회고록 형식의 소설,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영수1.jpg
 


과거의 나와 재회하다.


지금은 번듯한 출판사의 사장이 된 화자 이윤이 출판을 준비하던 도중에 자신의 과거와 재회하게 된다. 대학을 가고, 군대에 있던 1985년부터 1987년까지의 3년을 회상한다.

그는 과거의 기억을 찾고자 과거의 주인공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누군가는 변화했고, 누군가는 그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내가 만나고 가는 것들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만났다 헤어졌지만 참으로 열심히 그 시대를 살아냈던 수많은 전우들이었고 그때의 흙때 절은 땀과 눈물이었다.



그가 군생활을 했던 3년의 시간은 민주화 운동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의 군생활의 핵심에는 임병철, 하치우, 김영수가 있었다. 의리로 내무반을 이끌고, 잘못된 군문화가 바뀌기를 소망했던 임병철, 언제나 당당하고 자기 표현이 확실해서 강한 존재감을 남겼던 하치우, 그리고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강제 징집돼 군에 들어온 김영수.


나는 그 시절의 영수가 단지 그곳에서 만났던 그 김영수 하나가 아니었을 거라는 의미로 그렇게 제목을 붙이기도 한 것이지만 그런 얘기까지 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수 많은 김영수를 떠올리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김영수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강제로 징집된다. 군대를 빠져나오기 위해 미친척을 하며 관심병사로 낙인찍히지만, 모든 걸 꿰고 있던 군정부에 눈에 밟혀 구타와 협박에 시달린다. 결국 그는 정신적, 신체적 폭력에 못 이기고 자신의 동료의 행적을 보고해 버리고, 그렇게 간첩아닌 간첩으로의 이중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그 사실을 유일하게 믿고 따르던 이윤에게 고백하며 자괴한다.



나는 결국 완전히 드러내지 못할 바에는 오히려 철저히 감추기로 마음먹었고, 20매 속 이야기는 김영수, 한 개인에게로 집중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실명이었다. 그는 한편 그 불의 시대의 배신자였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커다란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피해자라는 것이 어디 그 하나였을까. 아니 그 배신자라는 것이 그 하나였을까?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아낸 우리 모두가 배신자였고 피해자는 아니였을까?



세월이 지나 듣게 된 영수의 소식. 그는 이윤이 제대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군 내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죄책감에 못 이겨서 자살을 한 것인지, 영수를 이용한 정부가 입막음을 위해서 죽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그렇게 우울함을 못 이겨서 자살한 관심병사로 동료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도서관에 들어앉아 공부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시대를 비켜가려는 당사자나, 타인에게 모두 욕돼 보이던 시대에 어느 순간 나는 질려있기도 했다.





아빠의 청춘은 찬란했을까, 비참했을까.


격동의 시대. 그 시대는 우리 엄마 아빠가 청춘을 바친 시대였다.


우리 아빠는 1980년대 말을 광주에서 학생으로 보낸 사람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창문 틈새로 최루가스가 들어오고, 등교를 하고 있으면 군 부대가 막아서서는 가방 속 소지품을 검사하던 그 시대 말이다. 광주 OO대학교 경영학과라고 하면 '너도 운동인지 뭔지 하러 다니냐?'면서 이유없이 눈총을 받던 시대. 그러면서도 학교 안에서는 도서관에 앉아 공부나 하고 있는 자신이 하찮아보이고 쓸모없어 보여서 무력함을 느끼던 시대. 내가 간접적으로 접해온 당대의 역사 속에서 살아온 우리 아빠에게는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그때를 재현한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 하신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30년 전의 젊은이들은 투쟁을 통해 민주를 외쳤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고, 나를 비롯한 지금의 젊은이들은 촛불을 들며 다시 한 번 민주를 외쳤다. 이 또한 30년 후에는 역사가 될 것이고, 이 시대를 겪지 못한 후손들에게는 그저 교과서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재미없는 정치 이야기로 남을지도 모른다.


신문이 소설보다 재미있는 시대.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책은 언제나 당당했던 하치우의 행방을 찾게 되며 마무리된다. 자기 주관이 뚜렷했지만 정작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없었던 하치우. 이윤은 과거를 더듬으며 군에서의 첫 친구였던 그의 소식을 찾기 위해 분주하지만 계속 되는 노력에도 그를 찾지 못 한다. 그러다 한 기자의 도움으로 그를 찾게 되는데, 세월이 지난 그는 개명을 한후 국회의원이 되어있었다. 민주화의 중심에 섰던 특정 지역민들을 '빨갱이'라 부르며 지역선거에 나선, 그런 국회의원이 되어 있었다.


시대를 변화시키고자 자기자신을 희생했던 사람들은 그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존재가 되어버렸고, 시대를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의식을 숨겨온 사람들은 존경받는 사회의 '윗사람'이 되어있었다.



영수2.jpg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강한 여운을 남기는 책,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그 시절을 살아온 우리 아빠를 포함한 모든 영수들에게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유다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