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P 사진전 :: 너를 다시보다

다시 만난 순간들-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
글 입력 2019.01.1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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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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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층에서 진행중인 에이피사진전- 너를 다시 볼수있을까를 다녀왔다. 이전에 AP사진전을 다녀오기 전, 순간을 담는 사진에 대해 간단히 감상 전 프리뷰를 남겼다. 해당 글에서는 사진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있고, 어떻게 순간을 담아내는지 나의 생각을 적었었다. 카메라의 렌즈가 보는 그 프레임 안의 모습은 결코 바뀌지 않고, 그 안의 배치된 사물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것이 바로 사진이다. 그러나 사진을 보는 순간은 또다른 새로운 순간으로 다가옴을, 누군가의 순간을 다시 또다른 순간으로 받아들이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지난 1/11, 드디어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층에서 열린 AP사진전을 다녀왔다.




세개의 메인테마, 6개의 메인테마로 이루어진 사진전

<너의 하루로 흘러가> <내게 남긴 온도> <네가 들려준 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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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들 중 단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일종의 아젠다 세팅을 해 줄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진이 바로 '보도사진'이다. 보도사진을 잘 모르는 이더라도 퓰리쳐상의 사진은 꽤 알 정도로 사진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며, 무언가를 전달해주기에 아주 효과적인 매체이다. 이번 AP사진전 - 빛이남긴 감정(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는 총 6개의 테마로 나누어져있다. 흔히 보도사진이라고 했을때 느껴지는 딱딱하거나 비예술적인 편견을 거절하는 세개의 테마는, 설명에 따르자면 순진무구할 정도로 대상과 풍경 앞에서 순수하게 빛을 펼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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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무언가를 보도하기 위해서 뿐이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들은 사진찍기를 아주 일상적으로 하고있다. 그 이유가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함이든, 혹은 나 혼자만이 간직하고픈 소중함이건, 혹은 무언가를 확인하고 기억하기 위한 행위에서건 사진을 찍는다는 일은 아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간단한 행위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핸드폰에서 간단히 카메라 어플을 켜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찰칵. 아주 찰나에 순간은 정지되어 남는다.

이렇듯 일상적인 '사진찍기'이지만 단순히 나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순간을 남기는 것과, 무언가를 명확히 남기고 싶어 기다리며 아주 특정한 순간만을 포착함은 아주 다른 의미를 지닌다. 전자가 일상적인 삶에서의 사진찍기에 가깝다면 후자는 보도사진에 가깝다. 물론 그 두개중 어느것이 더 낫다거나, 더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는 뜻은 아니다. 삶에서의 부분이 항상 필연적이지만은 않으며 또한 보도사진을 찍는 순간이 항상 기다림을 감내하지는 않는다. 어느 때 갑자기 찾아오는 사고를 포착하며 보도사진을 찍는다면, 기다려 사진을 찍었다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생각한다면 위의 설명에 나와있듯- 사진가는 빛의 감정을, 빛의 기억력을 담으려 무던히 애쓴다. 그 순간을 비추는 빛이 무엇을 감내하는지, 무엇을 나타내고싶은지 집요하게 따라간다. 순간의 지속이라 이를 수 있는 사진을 더할나위 없이 최고의 감정으로, 그대로 남기기 위해 먹잇감을 기다리는 맹수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리고 뛰어난 사진가는 집요한 따라감과 세심한 관찰 끝에 빛과의 대화를 나눈다. 그들이 나눈 대화는 곧 사진으로 남아 사람들에게 순간의 지속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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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세개로 이루어진 큰 파트 <너의 하루로 흘러가> <내게 남긴 온도> <내가 들려준 소리들> 은 각기 다른 목소리로 관객에게 말을 건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단연, <너의 하루로 흘러가> 였다.


하루라는 시간은 단순히 24시간, 몇분 몇초라는 수학적 계산으로도 펼쳐볼 수 있겠지만 또한 각기 다른 사건들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단위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다시 찾아오지만 결코 똑같지는 않은 아침/정오/밤의 수많은 순간들을 보여주는 파트가 바로 <너의 하루로 흘러가> 이다.



안녕 나의 하루가 보여

너의 하루가 흘러가고 있어

난 너의 시간으로 섞이고 있어

누구나 아침엔 물을 마시고

정오엔 햇볕을 마시고

오후엔 하늘을 마시지

그리고 밤엔 달빛을 머금고 집으로 가지

하지만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도 이 세상엔 많을거야


하루하루를 지나가며 일종의 무료함을 느낄 수 있다. 아주 세세한 부분은 모두 다르겠지만 끊임없이 찾아오는 아침에 정오에, 오후에, 그리고 밤에 문득 다른 사람도 이러한 무료함을 느낄까 궁금해한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고, 누구나 삶을 살며 마음에 품어갈 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갈구한다. 다양한 미디어 믹스로 수많은 방법으로 창조된 이야기들이 세상에 가득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이야기를 감상하며 채우기를 원하기 위함이겠고, 그 이유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일종의 우울한 무료함이 조금은 첨가되어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사진이 바라보는 각기다른- 우리와 같지않은 사람들의 하루-는 아주 간단하고 명확하고 무성의한 설명이지만.. 또한 직관적으로 누군가의 하루에 대해 말해준다. 아침을, 정오를, 오후를 그리고 밤을 담아낸 순간을 보며 그 안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해석하며 사람들은 이야기를 흡수한다. 이를 위해 사진가는 빛으로 하루를 조심히 쓰다듬고 또 담아낸다.



새로운 순간으로 남은 사진들

911 세계 무역센터 테러, 프레디 머큐리의 공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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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뉴욕을 배경으로 한 모습과 수많은 빌딩숲을 항공샷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이제는 흔한 도시 클리셰라 이르러도 무방할 정도로 익숙하다. 처음 해외여행으로 방문한 미국에서 노래로만 듣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보기 위해 전망대에 올라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진에서 나타내는 뷰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 때 바라본 미국의 풍경과, 눈앞에 거대하게 펼쳐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아주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사진에서는 911 세계 무역센터 테러를 담고있다는게 나의 기억과 맞지 않는 부분이다. 미국의 상징, 뉴욕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여실히 보이는 뷰에서 911 세계 무역센터 테러를 담고 있다는 건 그 당시의 공포감, 이념의 갈등을 아주 명확히 보여준다. 많은 빌딩 숲 사이에서도 우뚝 솟은 두개의 빌딩, 그 중 하나인 무역센터의 테러는 그 당시의 두려움이나 공포, 미국이라는 나라를 너무나도 확실히 보여주고있다.

사진을 보며 또다르게 떠오른 순간은, 실제 911 세계 무역센터를 들렀을 때의 순간이다. 이제는 모두 복구가 되었지만 단 하나, 복구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 당시 부상자와 희생자들의 삶이다. 뉴욕의 세계 무역센터에 가면 거대한 조형물이 있다. 넒은 직사각형의 조형물 안에는 또다른 네모가 있고, 그 네모들을 따라 물은 한없이 집어삼켜진다. 거대한 싱크홀같기도, 형체없는 블랙홀같기도 한 조형물은 어쩐지 거대한 슬픔을 나타내기도, 그 거대한 슬픔을 집어삼킬듯 존재하기도 한다. 조형물을 보며 느꼈던 발 밑이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과 슬픔을 다시금 체감케 해준 사진이기에 , 해당 작품은 나에게 또다른 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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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의 공연사진



처음 퀸을 접한 건 20살이 되던 첫 달. 무료히 유튜브를 넘겨가던 어느날이었다. 몬트리올의 보헤미안 랩소디 공연이 추천 동영상으로 떴고 자연스레 한번 클릭해서 보았다. 그때 경험한 충격과 폭죽이 터지듯 느껴진 아드레날린을 잊지 못한다. 30년 전의 영상이 현재의 나에게 미쳤던 감정의 크기는 너무나도 거대했고 큰 영향을 미쳤다. 두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의 콘서트는 시간과는 비례되지 않을만큼 많은 에너지를 담고있다. 콘서트를 이끌어나가는 가수들은 물론, 관객들도 하나가 되어 수많은 에너지와 감정을 쏟아낸다.

삶을 살면서 돌이킬 수 없는 일, 자력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무력감을 느낀 적은 아주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일은 나에게 거대한 감정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없음을 깨닫는 일이다. 사랑하는 작품의 작가와 이야기할 수 없을 때, 나를 온통 흔들어놓는 노래를 만들고 내 순간을 이어지게 하는 가수가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감정이 내 마음 안에서만 요동친다는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의 순간 속에서도 새로운 순간을 접할 수 있는 시대이다. 누군가가 사랑을 담아 찍어낸 영상이나 생전의 기록들을 바라볼 때면, 그대로 그 순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AP사진전에서 퀸의 프레디 머큐리 사진을 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에서 공연 중 찍힌 사진을 바라보니 핏대를 올리며 감정을 쏟아내는 프레디 머큐리를 직접 마주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의 순간을 다시금 느끼고, 그가 관객에게 뿜어내는 에너지를 받아들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프레디 머큐리의 순간은 나에게 새로운 순간으로 다가왔다.

*

사진의 묘미는 바로 이런것에 있으리라. 어느 순간을 담아내고, 다른 이에게 새로운 순간으로 돌아갈 그것만을 위해서 사진가와 우리는 끊임없이 순간을 매만지고 관찰해 나간다. 그리고는 끝내 마음이 요동치며 빛과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 셔터를 꾹 누른다. 감정이 순간으로, 순간이 기억으로 남는다. 기억은 다시금 새로운 순간에 접해지고 또다른 감정을 도출해 낸다.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 이유이다.





[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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