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홀로서기, 작은 곰 [도서]

끝없는 홀로서기
글 입력 2019.01.0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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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곰>을 읽으면서도, 다 읽고 나서도 명확하게 떠오르는 한 마디가 없었다. 책을 읽은 듯 만 듯한 그런 애매함 속에서 정리되지 못한 생각을 적는다.

세상은 작은 곰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엄마가 먹이를 갖다 주고, 온갖 세상에 어리광을 부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에게서 어미 곰을 빼앗아갔다.

앗,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단어가 있다. 얼마 전, 외국의 14년간 식물인간이었던 여성 환자가 아이를 출산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기사에서 댓글들이 인상 깊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가'라고 하는 댓글에, '남자들은 종종 자기들이 저지른 사건을 일반화하여 "인간"이 저지른 일이라고 총칭한다'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댓글이 달렸다.

내가 방금 '세상이 그에게서 어미 곰을 빼앗아갔다'고 한 것은, 인간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 약육강식은 그저 세상의 섭리라고 변명하기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작은 곰은 세상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어미 곰을 죽인 밀렵꾼을 원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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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곰은 밀렵꾼에게서 도망가, 죽어버린 것 같은 숲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자기를 비웃는 원숭이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위협하는 개미햝기를 만나면서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세계에 혼자 버러졌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우연히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새를 만나고, 새가 보여주는 광경에 충격받는다. 자손의 번식을 위한 몸부림이 아닌, 쾌락을 위해 뛰어놀다가 모두 짧은 생을 끝으로 죽어버리는 동물들을 보았다.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작은 곰에게 새는 슬프고 길게 사는 것보단, 짧고 강렬하게 사는 게 더 좋지 않으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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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게 좋은 것일까? 예전에는 나이 드는 게 참 싫었다. 늙고 쭈글쭈글해지고, 볼품없어지는 게 보기 싫었다. 그런데 20대 중반이 되어가는 지금은 나이 드는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10년 전의 나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늙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별똥별이 내릴 때면 소원을 빌라고 했다. 그래서 막상 별똥별이 떨어지는 시간은 맞췄지만, 막상 빌 소원이 없더라. 뭔가를 갖고 싶다고 하기엔 소원으로서 너무 보잘것없어보였고, 원하는 성적을 달라고 하기엔 내 노력이 없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싶었다. 그래서 그냥, '나를 찾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들이 건강하게 오래 내 곁에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지금 생각하면 뭘 그렇게 열심히 나를 정의하려 했을까 싶다. 그때의 나는, 가족들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자신'이었는데 말이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노력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신'이었고. 열등감 때문에 노력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세상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였다. 그냥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것이 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스스로 자신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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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곰은 숲 속의 악을 모두 물리치겠다는 결심으로, 악을 행하는 새끼뻐꾸기, 거미, 새끼 쿠거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숲 속에 악이란 게 있어 봤자 얼마나 있겠느냐, 그것은 다 자연의 섭리지'라는 생각에 작은 곰이 어리석다고 느꼈다. 자기에게 옳게 보이지 않는 것을 혼자 악의라고 지칭하고, 자기가 하는 행동이 모두 선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결국 자기가 저지르는 것이 악한 행동과 같단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작은 곰은 결국 자기가 죽인 새끼 쿠거의 어미와 싸움을 하게 되고, 자기가 저지른 행동들을 조금 반성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행동이 선한 행동이 아니라면, 자기는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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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믿어오던 신념이 흔들리면, 과거의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이때까지 '믿어서', 확신을 하고 하던 행동들에 근간이 사라지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그 일을 했던 것이 된다. 과거의 나 자신을 부정하게 되면, 현재의 나까지 흔들린다. 마치 선처럼 이어지던 과거에서부터의 자신의 인생을 앞으로 추진시키던 연료를 잃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무지 때문에 많은 살해를 해버렸다는 사실. 작은 곰은 이게 꿈이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한다. 좌절한 작은 곰은 마지막엔 호랑이의 도움으로 숲을 벗어나 바다로 향한다. 작은 곰은 "그저 살려고 한 것뿐인데, 왜 이렇게 힘든가요?"라고 외치며, 더는 아무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여정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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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이지만, 그 어느 것보다 잔혹한 이야기에는 잔혹동화라는 이름이 붙는다. <작은 곰> 안에 나오는 일러스트들 모두가 어딘가 찢겨지고, 피가 나고 다치고 상처입은 동물들의 모습을 담은만큼 잔인했다. 이야기도 이 정도로 잔인해도 되는가, 이 정도로 작은 곰의 생애가 불운하고 비참해도 되는가 싶을 정도였다. 덮고 싶을만큼 기분나쁜 감각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주변을 떠돌았다.

이 이야기로 알게 된 것을 고르라고 하면, 세상에 대한 잔인함이라고 하면 정답일까. 사람의 삶도 사실은 작은 곰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그가 악이라고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처단한 것이, 법을 어기고 개인적인 복수를 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비꼬아서 말한 것이다, 이런 것을 느끼면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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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나는 조화란 것을 보았다. 숲에서의 악의란 것이 없듯이, 세상에서의 조화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했다.

사랑은 주고받지 않는 관계다. 그저 공유하는 관계다. 고양이가 내가 글 쓰는 화면을 모두 지우고, 날아가게 해버리곤 하지만, 그들을 무조건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이란 것은 그렇다.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내가 한쪽 귀퉁이에 밀려나게 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내 자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좁은 방 하나를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내가 고양이에게 그렇게 무조건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어느 사람에게도 그렇게 베풀 수 있으며 나 자신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가 마냥 예쁘고 귀엽기만 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들이 숨 쉬고, 그들이 울고, 움직이는 모든 행위를 사랑하는 것이기에. 그들이라서 사랑하는 것이라면, 누구에게든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숲 속에서의 죽고 죽임을 당하는 관계도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자연을 공유하기 위해 개체 수를 유지하기 위한 그런 자연스러운 행위를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악을 일방적으로 정의하고, 처단한 작은 곰의 행위도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작은 곰의 행위는 본능적인 식욕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수와 정의 실현의 의미라는 점에서 사랑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사랑은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결국은 인간이 생태계를 망쳐놓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 어미 곰의 아래에서 사랑을 듬뿍 자라던 순수한 작은 곰을 바다까지, 온갖 악행을 선행 핑계 삼아 하게 만든 것은 인간이었다, 고 해석해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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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작은 곰>은 작가가 부제로 '나의 유년 시절에게'라고 붙이기까지 했다. 자신의 유년 시절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언젠가는 바다가 나온다? 짧은 신념을 갖고 행동하더라도 결국은 어른이 된다? 홀로서기의 과정은 그처럼 괴롭다?

전혀 어려운 책은 아니었는데, 나는 이 책에 대해서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어떤 책이든 읽으면 나의 생각을 바꾸거나, 확신을 준다거나 교훈을 준다거나 그런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곰>은 정말 모르겠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 같지는 않은데, 다시 한번 여유를 갖고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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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곰
- 나의 유년 시절에게 -


글/그림 : 이희우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한국문학

규격
130*195(mm)

쪽 수 : 96쪽

발행일
2018년 11월 19일

정가 : 12,000원

ISBN
979-11-965176-1-8 (03810)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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