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몸이라는 세계

'해부학 교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리뷰
글 입력 2018.12.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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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 교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요로 다케시


<해부학 교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연말연시에 읽기에는 썩 좋은 책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부학'이라고 하면 왠지 어둡고 기괴한 느낌을 주며 어딘가 오컬트적인 분위기까지 풍기기 때문이다. 이 책을 향한 나의 흥미도 일차적으로는 그런 분위기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해부'하면 흔히 떠올리는 시신의 사인을 파악하기 위한 해부나 병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해부는 '병리해부', '법의해부'라는 명칭이 따로 있고, 이 책에서 다루는 해부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파악하기 위한 '계통해부'다. 계통해부는 범죄나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먼 데다가 오컬트와는 정반대로 매우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분야다.

책을 펼치면 저자의 첫 해부경험과 함께 해부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해부교육용 시신이 학교에 들어오는 방법 등 평소에 궁금했지만 알기 쉽지 않았던 이야기로 시작해 해부학의 간략한 개념과 역사, 발전과정까지 잡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책은 신체를 '내장/내장이 아닌 것'과 같은 큰 단위부터 아주 작은 세포 단위까지 여러 가지로 분석함으로써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곧 신체와 마음의 관계를 살피고, 죽음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는 데까지 확장된다.

후반부부터 해부학은 책의 중심이라기보다는 책에서 다루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단서를 제공할 뿐이다. 구체적인 해부의 과정이나 인체의 구조를 자세히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면 예상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해부학과 관련된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부학을 바라보는 저자만의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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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에 대한 관심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인간 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책의 저자 역시 자신이 처음 해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인간의 몸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었다고 서술한다. 미지의 대상을 이해하고 이해한 바를 타인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해부는 시작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해부학을 '말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즉, 사람이 살아 있도록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이름도 없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끔 이름을 붙여 구분하는 일이 해부다.

철학적인 접근이지만 해부학의 기원을 생각하면 적절한 정의다. 언어가 인간의 가장 큰 특성이라고 한다면 해부는 참으로 '인간적인' 일인 셈이다. 인간의 몸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해부학은 신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우리 몸을 이루는 것의 기본단위가 세포고 세포 안에 사람을 좌우하는 DNA가 있음을 밝혀내며 이제는 분자 단위로 세포를 분석하는 '분자생물학'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의문을 품고 탐구하는 일은 아주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왔다. 해부학도 마찬가지다. 고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해부와 그에 따라 발달한 해부학은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중세가 시작되어 기독교 신학이 학문의 중심이 되면서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해부학은 동로마제국을 거쳐 아랍으로 전승되며 명맥을 이어갔다. 시간이 흘러 르네상스와 함께 유럽에 근대가 시작되자 다시 유입된 해부학은 다시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원근법의 발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해부한 인체의 모습을 더 현실에 가깝게 기록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데, 이는 다시 후대 학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해부학이 발생하고 발전해가는 과정은 학문이 다른 학문에 영향을 주었고, 상반된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예술과 과학이 사실은 한 뿌리에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룩한 성취는 경이로움과 감동을 안겨준다. 해부학에도 그런 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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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에 건강한 상태에서 우리는 좀처럼 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건강한 이들에게 몸은 당연히 주어진 것이다. 몸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은 몸이 아플 때다. 온몸이 호소하는 낯설고도 괴로운 감각과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사람이 몸에 메인 존재임을 절절하게 느낀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자기자신의 몸을 보지 못한다. 해부학은 내게 속해 있으면서도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동시에 인간 개개인이 결국 유전자를 전달하는 일회용일 뿐이라는 결론이나, 우리 몸 속 복잡하고 정교한 세계도 죽음 앞에서 모두 소멸한다는 사실처럼 해부학이 알려주는 진실은 허무하게 다가오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몸이라는 세계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기에 관심을 가진다면 새롭고 놀라운 것들을 계속 알려준다. 알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 몸은 그저 '몸뚱이'일 뿐이겠지만 알려는 자에게 그것은 소우주로 다가온다. 그 속에서 우리는 저자가 그러했듯 인간 존재를 바라보는 또다른 관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대목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몸을 아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사람을 안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일본에서는 사람을 아는 것을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을 아는 것은 분명 좋은 것이지만, 사람은 마음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마음은 몸이 있어서 비로소 성립한다. 그런 이유로 몸을 안다는 것은 사실 사람을 알기 위한 기초다.

앞으로 여러분이 우리의 몸을 좀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무척 기쁘겠다. 옛날에는 사람을 소우주라고 했다. 대우주는 보통의 우주를 말한다. 그 대우주와 비교할 때 사람이라는 소우주는 절대 작지 않다. 아직 얼마든지 탐구할 것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쓴 이야기는 몸에 대한 이야기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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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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