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을 읽고, 김화영 옮김
글 입력 2018.12.26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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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도록 만들 때, 혹은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의 끝자락을 잡아챘을 때 우리는 종종 크게 감탄하곤 한다. <지중해의 영감>은 그런 의미에서 감탄의 연속이었다. 내가 가보지도 않은 지중해를 상상하게 만들고, 그 안에 담긴 저자의 철학을 더듬도록 만든다. 무엇보다도, 내가 다른 곳을 여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장 그르니에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가 그 생각을 이토록 견고하고 촘촘한 그물의 언어로 표현해냈다는 것이 경탄스러웠다. 대체 무엇을 먹고 자랐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불쑥 호기심이 밀려왔지만, 그에게 달려가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얌전히 책을 펼치고 몇 구절을 다시 읽어보았다.



지중해의영감-입체표지.jpg
 


 

사막에서의 상상 깨기




남쪽 지역은 여행자에게 실망스러울 수 있다. 여행자는 사실 무언가를, 가령 모래사막이나 오아시스를 보려고 여행하는 것이다. (…) 그러나 상상했던 사막과는 딴판이다. 낙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무너지는 모래언덕, 불타는 듯 뜨거운 태양으로 이글거리는 하늘을 기대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자갈들, 단조로운 고원들, 또 언제나 그렇듯이 돌들. - 41p


 

내가 실제로 본 사막도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몽골의 고비사막 역시 저자의 표현과 똑닮아 있었는데, 어쩌면 장 그르니에는 여행이 언제나 상상을 깨부수는 일임을 진즉에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글거리는 태양의 모래언덕 대신, 공허하고 수평적인 대지를 보게 되더라도 침착히 그것과 그 자신에 대해 고심할 수 있었던 건지도.



사막 지역의 광대한 공간을 횡단하자면 당연히 피로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단조로움, 그리고 자기를 버림으로써 얻는 어떤 마음의 평정이 내면 깊이 스며들 시간을 갖게 된다. - 43p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이 언제나 그들의 상상대로 흘러가기를 바라지만, 무계획 여행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 상상이 부서지고 부스러져 사라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장 그르니에의 사막에 대한 묘사는 묘하게 가슴 안쪽을 두드리는 구석이 있었다. 뜻밖에 맞닥뜨린, 내 상상과는 다른 고비사막. 그곳에서의 빗물이 발목을 붙잡고 나와 일행을 조난에 빠뜨렸으면서도, 나는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을 몽골로 꼽는다. 예상치 못했던 사막의 단조로움, 그리고 단조로운 사막이 입체적인 인간에게 주는 최상의 공허. <지중해의 영감>을 읽고 있자면 장 그르니에는 여행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 모든 우연에 통달하고, 감탄하고, 아이처럼 즐거워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나 싶다.



 

묘지에서 발견한, 인간이 예술 자체가 되는 순간



장 그르니에는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를 넘어 그리스에 가 닿는다. 그와 함께 그리스까지 여행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그의 철학적 고민이 대체 어느 경지에까지 이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덧붙여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고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다시금 호기심이 불쑥 치솟는 것이다. 대체 이 인간은 뭘 먹고 이런 글을 쓴단 말인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엉겨 붙은 장 그르니에의 철학은 독자를 뜻밖의 곳으로까지 초대하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인간의 승리에 관한 것이다. 아테네의 고대 묘지 유적을 거닐며 그리스인의 사고(思考)를 추측하던 장 그르니에는 남녀노소가 다양하게 뭉쳐 삶을 즐기는 여러 개의 묘지 조각상을 보며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죽음은 그들이 늘 하던 일상적인 일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을 고정해 두었을 뿐이다. (…) 이 장면들이 암시하는 다양한 감정을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이처럼 풍부한 현실은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 우리 인간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 자신을 극복할 수 있을 뿐이다. 희망 없이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유일하게 가능한 승리는 덧없고 일회적인 시간 속에서 영혼의 소용돌이를 억제함으로써 거둘 수 있으며, 우리가 맞을 최후의 순간은 그런 순간들 중의 하나일 테므로. -158p



신들의 싸움을 말리거나, 거기에 끼어들거나, 혹은 부추기기도 했던 인간의 모습들은 신화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장 그르니에는 인간의 승리가 ‘오직 삶의 너그러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충만한 괴력도, 범상치 않은 두뇌도, 죽었다 살아나는 불사의 능력도 없는 인간이 세계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삶의 절망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영혼의 빛을 찾아내는 길뿐이라는 걸. 문득 든 생각인데, 장 그르니에는 니체와 죽이 잘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내년에 유럽을 간다. 이탈리아에 오래 머무를 예정인데, <지중해의 영감>을 꼭 가져가야겠다. 한국에서 읽는 장 그르니에의 글도 감탄스럽지만, 직접 그곳에 가서 그의 글을 읽는 것도 내게 주는 인상의 질감이 다를 듯싶다. 어둠 속에 살다가 처음 빛을 마주한 사람처럼, ‘행복을 위하여 미리 정해진 장소들’이 장 그르니에에게는 지중해였던 것처럼, 나 역시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찾아 잠시나마 숨쉴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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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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