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演] 연극이 청년을 위로하는 법, 극단 ‘구십구도’ 홍승오 대표 인터뷰

글 입력 2018.12.2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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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 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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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끓는점은 100도씨이다. 98도, 99도도 아닌 오직 100도씨가 되어야 물은 비로소 끓기 시작한다. 고작 1도의 차이일 뿐인데 끓는 상태와 끓지 않는 상태로 나뉜다. 100이라는 숫자가 완벽해보여서일까. 세상은 100도씨의 완전한 상태를 좋아한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99도로도 충분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존재들이 많다. 남겨진 1도는 채워질 수 있으면서 동시에 자연히 비워 둘 수 있는 지점이다.

 

성공을 추구하는 경쟁사회에서 99도는 불완전한 상태로 다가온다. 하지만 99도는 100도가 느낄 수 없는 발전 가능성의 묘미를 안다. 우리네 청춘은 99도의 존재로 더 나은 삶, 더 큰 행복을 나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다. 여기 청춘을 노래하고 청년을 위로하는 집단이 있다. 극단 ‘구십구도’로 홍승오 대표와의 대화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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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극단 구십구도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2016년 9월에 창단한 청년 극단입니다.

모든 단원이 청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의제를 토론하고 공론화 하며, 콘텐츠화 하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술이 지녀야할 참된 기능이자 가치라고 생각하고, 보다 세련되고 보다 대중친화적인 사회 참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100℃가 아닌 99℃의 상태를 지향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99도는 물이 끓기 바로 직전의 온도입니다. 99도는 끓지 못하는 청년들을 의미합니다. 끓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와 성공의 상징입니다. 극단 구십구도는 성과와 성공에 목을 매지 않는 온전한 청춘의 자아를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끓지 않아도 괜찮다', ‘충분히 뜨겁다’라는 가치를 가슴에 새기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주위에서는 '얼른 끓어라'라는 응원의 소리를 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응원이 눈에 보이는 성공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정말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면 끓지 않아도 충분히 자기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같은 청년들의 화법을 이해하고, 정확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면 성과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의 최선을 다해 완성도 높은 작품 제작에 힘을 쏟고 있으며, 예술도 노동으로 인정받고 정당한 수익으로 귀결되는 건강한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100℃를 향한 마지막 1℃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에게 노력이 부족해서 혹은 1℃가 모자라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것을 빌미로 젊은이들이 채찍질 당하는 오늘날의 사회가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극단 구십구도는 기성세대가 정해 놓은 기준에 청년들을 맞추려는 사회에 대한 반발의 메시지가 담긴 극단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를 채우기 위한 움직임은 요즘 청년들에게는 너무 가혹하다 생각합니다. 99℃만 돼도 충분히 뜨겁고 손을 넣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의 온도이기 때문입니다.

   

 

Q. 오늘날 청춘의 삶을 대변하는 젊은 극단, 청춘을 향하는 극단인 ‘구십구도’입니다. 계속해서 청년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고 처음 입단한 극단은 30여년의 역사가 있는 소위 기성극단이었습니다. 물론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지만 아쉬운 점들도 많았습니다. 젊은 단원으로서 극단의 선생님들 나이 때에 맞는, 그리고 그분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리 같은 젊은 배우들이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소모가 되는 듯한 느낌도 많이 들었습니다. 청년으로서 그리고 청춘으로서 지금 당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극단 안에서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마냥 기다린다면 현재의 이야기는 그대로 흘러 평생 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단을 창단하게 되었고,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청년들의 생각과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를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청년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해질 시점에는 그 나이에 맞는 이야기를 찾아 나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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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밥상머리' 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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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밥상머리' 공연 이미지

 

Q. 지금까지 선보인 청춘을 대변하는 연극들 중에서 ‘구십구도’의 모토와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창단공연이었고 재공연까지 됐던 ‘밥상머리’를 들 수 있습니다. 오늘의 극단을 있게 해준 작품이자 앞서 얘기한 극단의 가치를 담은 작품이이고 관객여러분들께서 많이 사랑해주신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0대 때부터 서로를 격려하고 친분을 유지하던 저와 친구들의 이야기이자 동년배 청년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각자 사회에 나와 서로 다른 분야에 있는 친구들과 서른 즈음에 가졌던 술자리의 경험을 떠올려 썼던 작품입니다. 본인의 힘든 지점만을 토로하고 어느 누구의 위로도 통하지 않았던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려 집필했고 출연까지 했습니다. 오늘 날 청년들의 아픔과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작품이고, 동년배 청년 또는 그 시기를 겪었던 분들까지 폭넓게 공감해주신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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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 내 부조리를 고발하는 연극 '라플레시아'



Q. 극단의 최신작 ‘라플레시아’를 논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작품의 해석은 개인의 영역이라지만 공연 명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흔히 알려진 식물로서의 라플레시아를 의미하는 게 맞나요?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기생식물 라플레시아를 의미합니다.


라플레시아는 스스로 광합성을 할 수 없으며 다른 식물의 줄기나 뿌리에 기생해서 자라납니다. 기생해서 빨아들이는 양분을 모두 큰 꽃을 피우는데 사용해버리며, 화분을 옮겨주는 매개인 파리를 유인하기 위해 고약한 냄새를 풍깁니다.


오늘 우리가 속한 사회의 부조리함과 불공정함을 풍자하기 위해 ‘라플레시아’라는 제목 붙였습니다. 사회에 기생하는 부정한 세력 또는 기업윤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본권력을 빗대어 표현하였고, 부정함을 알면서도 강한 구조 안에 속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보편성을 풍자하기 위한 제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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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와 함께 공론의 장을 열어
'라플레시아'를 만들어나갔다

 


Q. 반부패청렴연극을 실천한 ‘라플레시아’입니다. 직장 내 부조리를 시민단체 ‘바꿈’과 함께 논의하고 작품으로 탄생시켰는데 어떻게 해서 작품을 함께 만들게 되었나요? 제작과정이 궁금합니다.

 

‘극단 구십구도’는 우리 사회 공론장을 만드는 시민사회단체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과 함께 꾸준히 청년의 이야기를 발굴해왔습니다. 시민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단순히 표현하는데 그치지는 것이 아닌 토론하고 공론화하는 방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올해는 직장 내 갑질이나, 채용비리 등 청년들에게 박탈감을 안기는 직장 내 부조리를 주제로 잡았고 '공론극장'을 공동기획 하였습니다. ‘공론극장’은 극단에서 준비한 15분여의 발제 연극을 보고 토론자들이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고 토론을 진행한 뒤, 그 내용을 토대로 3분여의 짧은 연극으로 직접 시연해보는 체험형 토론입니다.


반부패, 청렴을 주제로 하는 '공론극장'은 ‘국민권익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지난 7월 7일 시민들과 함께 우리 사회 직장 내 갑질과 청년들이 겪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과 숙의를 진행했습니다.


본공론장에 참가한 50여명의 청년들은 본인들이 겪은 문제를 공유하고 연극으로 풀어내면서 부정부패 문제의 담론을 확산하고 그 해법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인 청년들의 이야기가 극단 구십구도의 지난 연극 ‘신의 직장’에 반영되어 재장착의 준하는 수준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그 작품이 ‘라플레시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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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플레시아'의 원작에 해당하는 작품
'신의 직장' 공연 이미지

 

Q. 아무래도 현실을 다루다보니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로 와 닿습니다.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서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앞서 ‘라플레시아’의 원작인 ‘신의 직장’(홍승오 작)을 말씀드렸습니다. ‘신의 직장’은 2016년 말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를 풍자하기 위해 썼던 작품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있던 사건들과 청와대라는 공간을 회사라는 공간으로 옮겨와 풍자를 하였습니다. ‘라플레시아’ 또한 풍자를 목적으로 쓰여진 작품이기 때문에 각색을 하고 재창작을 거치는 작업 안에서 실제 있던 사건들을 재해석하고 작품에 해학적으로 녹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내용은 실제를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특별상여금으로 일컬어지는 우리사주 배당은 ‘삼성증권 사태’를 담고 있는 것처럼 실제 사건을 작품 안에 기발하게 녹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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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라플레시아' 공연 이미지
 


Q. 특히 극이 전개될수록 진해지는 배우들의 분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짙어지는 화장을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라플레시아’를 쓴 작가이자 제작총괄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연출은 극단의 상임연출인 이상범 연출이 담당하였습니다.


대본에는 부조리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써 향수가 등장합니다. 라플레시아처럼 다음 뿌리로 기생하기 위해 악취를 내뿜어 파리를 유인하 듯 개인이 당면한 부조리가 악취임을 느끼고 있지만 이내 향수의 향으로 덮어 향기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은유적 장치입니다. 그것은 소시민이 쉽게 거부하기 힘든 권력과 자본의 부패함, 그리고 관례라 칭해지는 부도덕을 비판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이상범 연출도 작의를 반영하여 향수를 뿌리는 행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연출은 주제의식을 강조하고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드러내기 위해 분장이라는 장치를 사용하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작품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떡칠되고 일그러지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 연출적인 장치는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이 되었고 주제의식을 전달하는데 주효했다고 자평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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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출님께 있어서 ‘연극’은 무엇이고, ‘연극하다’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극단의 대표이자 작가 그리고 배우입니다. 저는 배우로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연기라는 행위를 통해 개인적인 만족에 집중했고, 나를 드러내는 만족감이 연극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아가 사회의 다양한 함의를 담아내고 토론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후 작가가 되었고, 극단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물론 배우라는 역할은 놓지 않고 있지만, 작가와 대표가 되기로 마음 먹은 이후 연극은 저에게 확실히 다르게 다가옵니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지금 저에게 ‘연극’이란 작가와 대표로서의 책임이 되었고, ‘연극하다’라는 말은 책임을 짊어진다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Q.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일상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일상 안에 예술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술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인생을 위한 예술로써 기능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극단 구십구도‘도 지역사회에 스며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근거리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이 되어야 예술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가치에 일반 대중들이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당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과 호흡하지 않는 예술은 시체에 불과 합니다. 예술과 일상은 같은 보폭 안에 존재해야 합니다.


예술과 일상의 분리는 대중으로 하여금 예술인들을 배짱이로 인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Q. 앞으로의 극단 ‘구십구도’의 걸음이 궁금합니다. 구상하고 계신 미래가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인생을 위한 예술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현실과 현재에 대해 끊임 없이 토론하고 이야기를 발굴하여, 연극이 가진 발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적극적인 영상 콘텐츠 개발을 통해 대중들과의 거리를 비약적으로 당겨오기 위한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단원 각자의 매력이 드러나고 연극이라는 매체를 보다 친숙하게 만들기 위한 구상입니다. 이런 구상들은 침체되는 대학로의 현실을 타개하고 연극이 가지고 있는 다소 패쇄적인 유통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 더 이상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해질 때 즈음 다음 세대 청년들에게 극단 구십구도를 물려주고 다시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하며 세련되게 나이가 들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아트인사이트 독자를 위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정답을 내리지 않고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획일화된 문법으로 경직되고 패쇄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기 보다는 다양한 의제를 던져 함께 고민하며 공론화 할 수 있도록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소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이 시대의 참된 가치에 집중하여 더욱 건강한 극단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극단 구십구도의 가치에 동의 하신다면 극단이 하고 있는 활동과 만들어내는 콘텐츠에 깊이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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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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