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초보가 아니야 [사람]

초보운전을 떼어내다
글 입력 2018.12.2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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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초보운전>이 붙어있던 여름




운전면허와 내 차



운전면허를 딴 건 17년 여름 즈음이었던가, 16년 여름부터 기능이며 뭐며 준비한 운전면허는 정작 도로주행에 한번 떨어진 이후로는 한없이 미룬 상태였다. 1년이 지나면 기능 합격까지의 시험 결과가 초기화된다는 말에 방학이 시작하고 부랴부랴 도로주행시험을 준비했다. 더운 여름 날 서울 한복판, 어쩐지 서울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영 시골같지는 않은 운전면허 학원을 가는 행위는 꽤 고역이었다. 여름의 매미소리가 소름끼치도록 싫기에 걸어 돌아다닌다는 건 정말 짜증나고 불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역으로, 그렇기에 빨리 운전 면허를 따 차를 타고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그나마 더운 여름날, 두번의 도로 주행 시험을 더 마치고 겨우 운전 면허를 딸 수 있었다.

운전면허를 따고 영 불안했던 아빠는 도로연수를 한번 더 마치라고 말했다. 알 수 없는 조각상들이 주욱 늘어서있는 서울의 그 운전면허학원이 아닌, 남양주의 운전 면허학원을 등록했다. 햇빛이 내 각막을 지져버릴 듯 지열이 내 피부를 벗겨버릴 듯 뜨거운 40도의 날씨에서 뭐든 한다는 건 꽤 괴로웠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운전면허만큼 보통의 지능으로 할 수 있으며 적당한 노력대비 적당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일도 없다. 여름방학에 아무 계획도 없이 매 주말을 빵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개강 직전의 여행을 설레하기만 급급했었기에 이 때 운전면허를 따 놓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아직까지도 든다.

운전 연수를 마친 세번째 날이었나, 아빠가 차를 한 대 가져왔다. 이제는 네 차니까 너가 운전해라, 라며 가져온 차는 작은 모닝이었다. 검은색이 아닌 은색의 차체가 조금은 아쉬웠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검은색은 너무 밤길에 띄지도 않고, 황사라도 한번 온다면 먼지가 너무 잘 보였을 테니. 어쨌거나.. 항상 아빠는 큰 SUV를 타고 다녔기에 작은 모닝의 인상은 귀엽다기보단 참 작다는 느낌만이 들었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 내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버튼은 왜이리 많고 운전대는 또 왜그렇게 가까이 있는지. 아직 도로로 나가지도 않았는데 배에 가득 나비들이 날라다니는 기분이었다.

'내 차' 가 생기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다이소에 직접 차를 끌고 가서 초보운전 스티커를 사는 행위였다. "아직 나는 초보입니다, 조금만 이해해주세요" 라는 스티커라고 아빠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초보운전이라는 스티커가 꼬리표 같았다. 무얼 하던지 내 뒤꽁무니에 따라오는 꼬리표. 나는 초보이지만 초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괜히 초보라는 걸 알고 무시하겠지 생각했다. 아직 내가 미숙하다는 사실을 이상한 반발심으로 부정하고 싶었다. 미숙하다는 사실은 항상 나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쩐지 어리숙하고 흠이 있을 것만 같은 <초보>.




<초보운전>을 떼는 일이란



오늘은 <초보운전> 스티커를 뗀 날이다. 사실 떼려면 진작에 떼었어야 하지만 이번 여름부터 겨울까지, 내가 휴학하는 동안 엄마가 차를 사용했기 때문에 미처 그 스티커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8년의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생각을 하자 빨리 <초보>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싶었다. 차량을 2만키로미터 가까이 탔는데, 아직도 초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스스로 생각하기에 의아하기도 했다.

사실 <초보운전> 스티커가 운전의 능숙도를 판가름해주지는 않는다. 운전을 하다 보면 오히려 <초보운전> 차량이 더 능숙하게 차량변경을 하며 길을 뚫어나가는 경우도 볼 수 있고, 운전을 몇십년이나 했을 택시차량들이 더 양심없이 끼어들기와 도로 무정차를 몇번이곤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 <초보>라는 이름은 부정적인 함의가 담겨있는 단어도 아니다. 개개인마다 해당 단어에 대한 각기 다른 느낌을 가질 수는 있지만, 어쨌거나 초보는 말 그대로 처음으로 내딛는 걸음이다. 걸음을 시작하려면 처음으로 내딛는 그 순간이 필요하다. 어느 누구도 첫번째 내딛음 없이 행동을 시작할 수는 없다. 초보는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당연하며 그 누구든 경험하는 필수 불가결한 행동이다.

<초보 운전>을 벗어나고 나니 오히려 초보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사그라 들었다. 이는 내가 더이상 초보가 아니기에 오는 너그러운 마음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항상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오는 첫걸음, 그 도전에 대해 새삼 의미를 깨우쳤다. 삶을 살다보면 모든 것이 새로웠던 어린 시절을 지나 점점 아는 행동, 유사한 일들로 이루어지는 인생을 지속한다. 밥을 먹고, 말을 먹고, 친구를 사귀는 등 새로운 일들로 가득했던 과거에는 자신의 모든 행동이 시작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일에 있어 어느정도의 익숙함과 능숙함을 지니고 행동하게 된다. 그렇기에 새삼 나이가 한살, 두살 먹어갈 수록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함에 있어 두려움과 무서움을 갖고 터부시하게 된다. 모든 순간이 초보-첫 내딛음일 때에는 그 내딛음이 당연하지만, 모든 순간이 익숙하고 능숙해진 후에는 그 미숙한 첫걸음에 이질감마저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생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작하고 끝내는 일을 연속할수밖에 없다. 삶 조차도 초보의 단계에서 끝내는 일까지의 기간이니, 어떻게 인간이 이 행동을 멈출 수 있을까? 우리는 초보에 대해 - 첫 걸음을 내딛음에 대해 더 관대해져야 한다. 나의 시작에 용기와 신념을 지니고, 능숙함과 익숙함과 다른 이질감이 아닌 가능성을 지니고 도전해야한다, 시작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다는 첫 발걸음을 내딛고 이 자리에 존재하기 때문에.

[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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