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일상의 기쁨이 삶의 목표, 타샤의 계절

오늘이 생애 가장 기쁜 날이니, 기쁨을 마음껏 누리길
글 입력 2018.12.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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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Tasha Tudor)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작가이자 삽화가.

나는 책의 제목보다 글쓴이를 좀 더 잘 기억하는 편이다. 심지어 책에 나오는 주인공보다도 글쓴이를 더 쉽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일 년 전 팀플을 하는데, '눈먼 자들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동기 언니가 그 책을 읽었다며, 사람들이 다 눈이 머는 병에 전염되어 간다는 것이 정말 무서웠다고 했었다. 나는 그때, '아, 주제 사라마구가 쓴 거지?'라고 했는데, 언니는 저자의 이름을 몰랐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었기에, 중간에 고향에 한번 내려갔을 때 우리 집 책꽂이에 꽂힌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 언니가 묘사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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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려보면, 우리 집에는 늘 수많은 책이 꽂혀있었다. 엄마는 외식, 여행은 일절 하지 않는 사람이어도 우리의 교육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서 책을 늘 많이 샀다. 우리 집에는 방이 아빠 방, 엄마 방(내방), 동생 방, 언니 방 이렇게 네 군데고, 거실이 하나 있는데 방의 벽마다 벽 전체를 가리는 거대한 책꽂이들이 다 있었고, 책이 가득 꽂혀있었다. 책꽂이를 사는 것에도 돈을 아껴야 했던 어린 시절에는, 마트에서 박스를 구해와서 박스에다가 책을 넣어놓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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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방에는 언니가 주로 사는 일본 만화책과 판타지 소설들, 범죄 소설이 주로 있었고, 엄마 방(내방)에는 자기계발서나 문학 작품, 동생 방에는 동화책, 만화책, 아빠 방에는 옛날 문학 전집들이 있었다.

친구 집에 잘 놀러 가지 않았던 나는, 친구들 집도 당연히 그렇게 고개만 30도 틀어도 책이 수십 권, 수백 권이 있을 줄만 알았다.

노출을 많이 당한 것이다. 그냥 지나가면 책이 있으니까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책 이름과 저자가 머릿속에 지나갈 때마다 자동으로 입력된다. 그러다 궁금해지면 하나 빼 와서 읽는 생활을 해왔다. 내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옆에선 엄마가 책을 읽었다. 화장실을 갈 때 방을 나가면 언니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겐 독서가 특별한 취미활동이나 일이 아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쉬는 시간에, 일과를 끝내고 남는 시간에 그냥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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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을 옛날에 한번, '타샤 튜더'라는 이름도 읽은 적이 있다. 이름만으로도 다정한 그 사람은 자연을 좋아하고 집에 정원을 가꾸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다. 동화작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인 '리자이너 메달'도 수상한 그녀는 <타샤의 정원>, <타샤의 말>, <타샤의 식탁> 등 자기의 삶의 방식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책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저자만 기억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치, 에베레스트의 높이가 8,848m라는 것을 아직도 외우고 있는 것처럼, 노량진역 1호선의 출구 방향으로 나와 건널목을 건너면 'bun story'라는 이름의 빵집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정보만을 기억하는 어떤 선택적인 기억을 하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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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문화초대를 받은 <타샤의 계절>은 탸샤 튜더가 계절을 보내는 방법을 담고 있다. 이 책 역시 타샤가 직접 그리고 쓴 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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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타샤는 염소 썰매를 타거나, 숲 속에서 메이플 시럽을 만들거나 인형을 위한 음식을 만든다. 계절마다 가족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그것을 수채화나 글로 담았다.

한 송이 꽃이 주는 기쁨, 일을 잘 마쳤을 때의 만족감, 변해가는 계절의 아름다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존중과 애정이 오롯이 묻어난다. 그래서 타샤의 책은 동화가 된다. 어른들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어린아이들에게는 환상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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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고향에 살 때는 계절이 확실했다.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손이 터질 듯이 추웠던 우리 고향 집에서는 계절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했다. 일조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단독주택지에 들어서서, 남쪽에 이층집이 있어 햇빛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기대도 하지 못했다.

겨울이면 너무 추워서 전기장판을 켜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도 내복에 일반 니트에, 두꺼운 외투까지 입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그 작은 한줄기 햇빝을 받기 위해 좁은 영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보일러 관이 얼어서 난방하지 못해서 1월 한 달 동안 두 번 씻었던 적도 있다. 가스레인지에서 물을 데워서 일을 하러 가는 아빠와, 공부를 해야 했던 언니만 매일 씻을 수 있었다. 기름지고, 엉겨 붙다 못해 머리가 한 올, 한 올 다 따로 날아다녔다. 한번 머리를 긁으면 손에 기름이 묻어나왔지만, 손을 씻으려면 얼음장 같은 물을 견뎌야 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아무도 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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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심각한 더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깨기 일쑤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나는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도 에어컨을 켜지 못한다는 것이다. 혹독하게 더워서, 기절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올해 여름도 나는 단 한 번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버텼다. 그 집 안에서 운동했고, 선풍기를 틀었다. 아무 데서나 쉽게 잠이 들곤 하는 나였는데 올해 여름은 하루에 5시간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선잠이 들어 새벽에 깼고, 다시 아침까지 깨어있다가 조금 자고 일어나서 출근했다. 남자친구는 내가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에어컨을 켜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겐 여전히 전기세와 보일러 세를 걱정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남아있다.

엄마는 학창 시절에 우유 배급을 받는 게 제일 부끄러웠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이름을 부르며 학생들에게 우유를 나누어줬는데, 그 우유를 들고 집까지 올라오는 길이 싫었다고 했다.

우리는 계절을 버텨야 했다. 그것은 세월이 지나서 조금은 풍족해져서, 한 학기에 450만 원 가까이 되는 학비 동생 것과 내 것, 모두를 순전히 부모님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 때가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우리는 여름이면 찜통 속에서, 겨울이면 손과 발이 찢어지는 그 추위 속에서 살아간다.

핸드크림을 바르면 되지, 라고 할 정도가 아니었다. 집 밖과 집 안의 온도가 거의 똑같은 집 안, 집의 본연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집에서는 상처를 예방할 수도 없었다. 핸드크림이 이미 상처 속으로 들어가 더욱 고통스러워지고, 연고를 바르면 집안일을 하지 못하니 바를 수도 없었다. 온몸의 수분이 다 증발해서 살이 찢어지고, 찢어진 살들이 더욱 딱딱해지고 단단해져 굳은살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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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는 봄이면, 꽃바구니를 만들어 이웃집 현관에 갖다 놓고, 여름이면 카누를 타고 마법의 섬으로 가서 소풍을 즐긴다. 수확의 계절이 되면 직접 키운 사과로 애플 사이다를 만들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숲 속에 구유를 만들어 깊은 밤 가족 순례를 떠난다. 타샤는 계절을 자신만의 것으로 보내고 있다.

타샤 튜더는 일상의 기쁨이 삶의 목표라고 했다. '매일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인생이 빛날 수 있을까요? 라고 하며.

'바로 오늘이 생애 가장 기쁜 날이니, 기쁨을 맘껏 누리라'는 타샤의 철학이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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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처럼 내가 싫었던 날은 없다. 中 -


최근에 읽고 있는 책 <오늘처럼 내가 싫었던 날은 없다.>에서도 타샤 튜더와 비슷하게 말한다. 뭔가를 사고 싶어도 돈이 없을 때 그렇게 우울해진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라고 했다. 내 삶을 조금씩 실천 가능한 것들로 채워보라고.

웃고 싶지 않으면 웃지 말고, 울고 싶으면 온종일 울어도 보고, 책을 읽고 싶다면 책을 읽고, 돈이 필요하면 알바를 해보고,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먹어도 보고.

"제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알았어요. 제 삶에 작은 것조차 제가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이제는 알았어요. 내 인생의 행복은 남들이 말하는 무엇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무엇으로 채워나갈 때 얻을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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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쁨이란 건, 매일 내가 기쁠 수 있도록 나를 찾아가는 것일 거다. 내가 무엇을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진짜 '그 일'을 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는지?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인지, 누군가 사회가 심어놓은 생각인지 구별하고 정말로 나를 찾아가야 한다.

음식을 먹는 것이,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밖에서 사 먹으며 돈을 쓰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마트에서 장을 봐서 집에서 요리하는 게 훨씬 싸고 오래 먹을 수 있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게 낫지. 카페에 너무 많은 돈은 쓰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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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즘은 깨달아간다.

내 속에 있던 많은 생각이 사실은 나의 것이 아니라 엄마의 생각이라는 것을.
나의 트라우마나 죄책감이 아닌, 엄마가 심어둔 콤플렉스라는 것을.
살을 빼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박을 가졌던 것은, 이전에 만났던 전 남자친구들이 했던 말들을 무의식적으로 담아두었다는 것을.

나는 입이 짧아서 한 가지 메뉴를 두 번 연속 못 먹고,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도 그럴 바엔 차라리 굶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집에서 먹었다면 밖에서도 먹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돈이 있다면 충분히 그것에 투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적인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책 읽는 것도 좋지만, 카페에서 맛있는 브런치와 좋은 커피 향을 맡으며 공부를 하는 것도 좋아하고 집에서 뒹구는 것도 좋아하고, 장소를 많이 옮겨야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의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행복에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여행을 위해 매 순간의 쾌락을 꾹꾹 눌러 담기보다는 일상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추구하고, '매일 맛있는 것을 먹는 게 좋지, 굳이 여행 가서 똑같은 걸 먹을 거면 왜 평소에 참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고 전체적인 내용이 아쉬웠더라도 한 줄이라도 내 인생을 조금 흔드는 문장이 있다면 그것에 감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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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는 자신의 일상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채워나가고 있을까? 그녀의 삶이 궁금하다.





타샤의 계절
- A Time to Keep -


원제 : A Time to Keep

지은이
타샤 튜더

옮긴이 : 공경희

펴낸곳 : 도서출판 윌북

분야
외국에세이
그림 에세이

규격
153*200 반양장

쪽 수 : 144쪽

발행일
2018년 12월 20일

정가 : 12,800원

ISBN
979-11-5581-201-3 (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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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즐거운 날이 아주 많았지.

4월에는 아기 염소들이 밖으로 나와 따스한 봄 햇살 아래서 뛰어놀았어.

하지만 최고로 근사한 것은 강물에 둥둥 떠가는 생일 케이크였단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마법 같은 시간이었어. 어둠이 내리면 우리는 별들이 빛나는 밤 속으로 걸어나갔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날 밤은 1년 중 최고로 아름다웠어. 촛불이 반짝이는 예쁜 트리를 보면 이 땅의 평화를 바라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해졌지.

바로 오늘이 생애 가장 기쁜 날이니, 기쁨을 맘껏 누리길. - 타샤 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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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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