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용감무쌍한 꼬마 뱀파이어 [공연예술]

뮤지컬 뱀파이어 아더
글 입력 2018.12.2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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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뱀파이어와 용감한 인간 친구



송곳니도 자라지 않았고, 하늘을 날지도 못하지만 언젠가 드라큘라 백작처럼 훌륭한 어른 뱀파이어가 될 것이라고 믿는 ‘꼬마 뱀파이어’ 아더 코필드. 그리고 아더 도련님을 보석처럼 귀하게 모시는 집사 존.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사는 사람(사람?)이라고는 단 둘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런던에서 직장을 다니다 회사에 돌을 던졌다는 죄로 경찰에 쫓기던 엠마는 우연히 코필드 저택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 폐도 끼치지 않을 테니 제발 일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에 존은 영 미심쩍게 바라본다. 그러나 생전 처음 (존이 아닌) 인간을 보게 된 아더는 엠마를 받아들이게 되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배배배배배배배배뱀파이어라니, 뱀파이어라니! 도망쳐왔더니 뭔 짓이야.
미미미미미미미친놈인가 봐. 창문에서 뛰더니 문 놔두고 벽을 탄다.


  

설정부터가 귀엽다. 송곳니도 없고 날지도 못하는 꼬꼬마 뱀파이어, 그리고 뱀파이어와 친구를 맺어 글을 배우는 엠마까지. 넘버도 귀엽다. 아더와 엠마가 처음 서로를 발견하는 장면의 넘버는 엠마의 당혹감을 그대로 표현해준다. “용감하고 무서운 뱀파이어”라 자신을 소개했던 아더 또한 겁에 질린 채 방 안을 샅샅이 뒤지는 장면에서는 “도대체 쟤가 뱀파이어가 맞긴 한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아더가 나름 무서운 뱀파이어인 척 상대에게 위협 아닌 위협을 가할 때는 마치 고양이의 ‘하악질’이 떠오른다.

이렇게 귀여운 두 인물이 친해지는 과정은 더욱 귀엽다. ‘귀여움 + 귀여움 = 엄청난 귀여움’이라는 공식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세상을 글로 배운 아더와 세상을 피부로 배운 엠마가 만나 아더는 런던의 실상을, 엠마는 글을 서로에게 배우기로 약속한다. 그렇게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간다. 한 번도 책 밖의 세상을 궁금해 할 수도, 존 아닌 타인과 관계 맺을 수도 없었던 아더에게 엠마는 말 그대로 신세계다. 엠마 또한 아더에게 글을 배워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쓴다. 서로의 세상이 조금씩 넓어지며 둘은 더욱 가까워진다.






정말 행복했는데, 갑자기...



여기까지 보면 이 작품의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 아니면 귀여운 일상 뱀파이어물 정도다. 그런데, 정말 행복했는데, 정말 갑자기 장르가 180도 바뀐다. 앞부분 줄거리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집사 존이 활약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작품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알고 보니 둘의 관계는, 알고 보니 아더는, 알고 보니 존은, 알고 보니 아더의 엄마는... 결말을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는 ‘알고 보니’뿐이다. 겉으로 봤을 때는 달달한 초코칩 쿠키였지만, 알고 보니 초코칩이 아니라 강철 칩이었다, 정도로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결말이 아쉽다. 기-승-전-결의 구성에 따라 조금씩 파국으로 치닫는 작품은 정말 많지만, 이렇게 기-승-전까지 행복하다가 갑작스럽게 추락하는 작품은 흔치 않다. 반전은 앞부분 줄거리에 개연성이 충분할 때 극적인 것이지, 개연성이 부족할 때는 오히려 그 힘을 잃기 마련이다. 존의 서사가 조금만 더 충분했더라면, 그리고 결말이 조금 더 세련됐더라면 이 작품의 비극성은 오히려 높아지고 개연성도 충분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왜 비극인가?



커튼콜까지 마친 후에 내게 남은 의문은 단 하나였다. “왜?” 아름다운 영상 효과, 소극장에서 흔치 않은 회전 무대, 콤팩트한 무대 구성, 세련되고 화려한 의상, 귀에 쏙쏙 박히는 넘버와 훌륭한 조명까지, 이 작품의 장점은 수도 없이 많다. 내가 올해 본 모든 공연 중 이렇게 영상과 조명을 아름답게 연출한 작품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이 잊힐 정도로 당혹감이 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창작진은 이토록 ‘비극’에 집착한 것일까.

희극보다 비극을 관람했을 때 관객들의 고조감이 커지고, 감정적 동요가 심해져 여운도 짙게 남는 경향이 있다는 건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서도 볼 수 있는 기본적 사실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밝혔듯 여운의 필요조건은 개연성이다. 개연성은 기-승-전-결 구조가 탄탄할수록, 그리고 캐릭터의 서사가 잘 짜여 있을수록 높아진다. 이 작품의 아쉬운 점은 캐릭터의 서사, 특히 존의 서사가 부족하다는 것과 작품 구조가 지나치게 ‘결’ 위주라는 것이다. 반전을 노린 구조였겠으나 조금은 식상한 반전이었고, 그마저도 납득하기 힘든 반전이기 때문에 극을 관람한 후에 한참 동안 물음표를 띄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 작품의 장점도 상당하다. 극을 관람한 후 하루가 지나면 넘버가 머리에 떠돌고, 이틀이 지나면 영상과 조명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말 그대로 중독성 있는 극이다. 재관람을 하더라도 내용을 납득하기는 조금 힘들 듯 하지만 말이다.

연말, 무언가 공연을 한 번쯤 보고 싶기는 한데 뭘 볼지 고민이라면, 귀여운 꼬마 뱀파이어와 귀여운 친구, 그리고 조금 덜 귀여운 집사 세 인물이 주는 잠깐의 귀여움을 만끽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물론 잠깐의 귀여움에 대한 대가는 조금 크지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사진.jpg
 

[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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