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찬란함으로 가득 찬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

지중해의 영감 Review
글 입력 2018.12.1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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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지중해의 풍경과 그것을 깊은 시적 감수성으로 통찰해 낸 장 그르니에의 대표 산문집, ‘지중해의 영감’을 읽어 보았다. 지중해의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글일 것이라는 초반의 예상과는 달리, 풍경이 일으킨 철학적 사유와 영감이 주를 이루는, 조금은 무겁고 깊은 글이었다. 의미와 상징으로 꽉꽉 채워진 텍스트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에 오래도록 머물렀고, 신비롭고 형이상학적인 표현들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글을 읽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의미들이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 때문에 답답한 순간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생각으로 꽉 찬 독서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신비로움과 암시, 은유로 가득 찬 저자의 언어 중에서도, 내게 나름의 의미로 와 닿았던 몇 가지 구절에 관해 적어 보려고 한다.




지중해




사람들 저마다에게는 행복을 위하여

미리부터 정해진 장소들이,

활짝 피어날 수 있고

단순한 삶의 즐거움을 넘어 황홀에 가까운

어떤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풍경들이 존재한다.


- 지중해의 영감, 20p -



회색빛 구름이 하늘을 덮고 거센 바람이 부는 프랑스 북부 브르타뉴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르니에가 만난 지중해는 ‘빛의 세계’였다. 그는 지중해의 찬란한 풍경 속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며 시적인 영감과 영혼의 충만함을 얻는다. 그가 말했듯이, ‘젊은 시절 낯익은 이미지들로는 자신의 고독에 자양분을 공급할 수 없다.’ 이미 겪어 온 낯익은 세계 이외에 미리부터 나를 황홀경에 이르게 할 행복의 풍경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과, 그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도피만이 젊음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저자가 만난 지중해는 그에게 삶을 지탱하는 생명력인 ‘도피’의 끝자락에 있는 장소이자, 그의 행복을 위해 미리 정해진 예지의 장소이다. 익숙함을 부정하고 끊임없이 ‘다른 신’들과 관계를 맺으며, 현실적 삶과 도피처 사이 어딘가를 오가며 생명력을 얻었던 그는 결국 지중해라는, 행복을 위한 예지의 장소에 도착한다. 그가 묘사하는 찬란한 지중해의 풍경이, 마음 깊은 곳에 목적 없는 도피적 충동을 품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젊음에게 희망적이고 인간적인 메시지로 가닿을 수 있는 이유이다.


또한 그는 지중해를 관조하며 얻은 인간과 진리에 관한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중해를 ‘절대’와 ‘행동’의 중간 지점이라고 표현한다. 저자에게 지중해는, 그가 직접 관계 맺고 있는 현실의 세계와 절대적 진리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한 것이다.




시인과 예술




시인이 된다는 것은

열망의 높이를 좀 낮추는 일이다.

곧 우리의 영원함만큼이나

우리의 연약함을 의식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아니 차라리 우리 욕망의 끝없음과

우리 삶의 연약함 사이에서 자신이

찢어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그 덧없는 결합을

사랑에서 우러난 결혼으로 만드는 일이라고나 할까......


- 지중해의 영감, 183p -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다양하다. 하지만 인간은 그의 절대적 진리와 아름다움, 영원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 제한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그가 현실적인 삶에 속하면서도 어딘가에 존재할 도피처를 꿈꾸며 삶의 원동력을 얻었던 것처럼, 시인들은 인간 존재의 한계와 영원함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고뇌와 절망, 기쁨을 노래하며 인간 삶의 대립하는 두 특성을 끊임없이 연결 지으려 한다.



우리는 고통을 겪지만 동시에

그 고통이 남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 지중해의 영감, 75p -



시인, 그리고 모든 예술가는 진리의 절대성과 인간 존재의 연약함 사이에서 그들이 느낀 모든 것들을 표현해내는 사람들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상을 쥐어짜며 느낀 고통과 황홀함을 ‘증언’하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술가들은 인간 존재에 허무함을 느껴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편이 낫겠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그들만의 언어로 이러한 허무함을 증언해낸다.


사람들은 항상 그들만의 관객을 필요로 한다. 이는 인간 존재의 특성이자,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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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찬란한 모습은 시기심에 찢긴 이 세계 밖으로, 플라톤이 말하는 저 신의 자리까지 우리를 들어 올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시기심과 불화로 가득한 낯익은 세계 속에서, 저자가 묘사하는 지중해는 우리에게 찬란하고 감동적인 삶의 희망을 전한다. 목적 없는 삶과 낯익은 풍경에 지쳐 ‘새로움’과 ‘낯섦’의 자양분이 절실해졌다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수많은 영감과 희망을 선물할 ‘지중해의 영감’을 접해보는 것은 어떨까.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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