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어른이를 위한 작은 곰 이야기를 해줄게 [도서]

글 입력 2018.12.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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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어른이 빨리 되겠다며 줄창 자기계발서와 경제 서적만 읽어대던 때가 있었다. 정확히 이해할 순 없어도 꾸역꾸역 읽다보면 어른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동화는 커녕 그림만 들어가도 유치하다고 콧웃음을 쳤다.

그렇게 어떤 어른이 된 나는 학교에서, 여행을 떠난 길 위에서, 일자리에서 자주 어려움에 빠졌다. 내가 읽은 책 속에서 그래프로 딱 맞아 떨어지던 사회 현상들은 거의 매번 내 경우에서만 틀어졌고, 나는 그 때마다 절망했다. 이제와서 다시 책 속에서 찾아보려니, 이전처럼 굳은 믿음이 생기지 않았고 친구들이나 부모님은 나를 이해하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어차피 이겨내야 할 내 몫의 외로움인 것 같았다.

나를 찾기 위해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틀을 깨고 나오니 공기가 상쾌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고는 생각했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이라는 말과 같이 식상하고 틀에 박힌 열심인 날들이었다. 배낭도 매 보고, 길도 달려보고, 막다른 벽 앞에 서서 울어도 봤다. 이 고통 끝엔 다시 특별한 나와 날들이 있을 것 같아 힘들지만 뿌듯했다. 하지만 부딪히고 배우는 일에는 끝이 없었고, 내 예상을 뒤집고 상상 그 밖에 있는 일이 새로 등장할 뿐이었다. 알록달록 색깔을 입게 될 줄 알았던 나는 온갖 색이 뒤덮혀 우중충한 회색이 되었다. 차라리 곧 검정색이 되어 아무 눈에도 띄지 않고 사라지게 될 날을 기다렸다.

회색의 나는 작은 곰을 읽고 계속 꿈을 꾸게 될까, 또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위로를 받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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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목: 작은 곰
분류: 문학 / 한국문학
글·그림 : 이희우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8년 11월 19일
판형: 130*195(mm)
페이지: 96쪽
정가: 12,000원
ISBN: 979-11-965176-1-8 03810
CIP제어번호: CIP2018035052


책소개

홀로 외롭고 고단한 길을 걷는 이들에게 건네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 우화

《작은 곰》은 ‘어른들을 위한 잔혹 우화’라는 문구처럼 숲속 동물들을 만나며 인간 군상과 삶을 알아 가는 작은 곰의 잔혹한 여정을 다루고 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 《길 위의 토요일》이 자전적 이야기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했다면, 《작은 곰》은 홀로 외롭고 고단한 길을 걷는 이들을 위로하며, 아무리 혹독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함께 하는 작가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같은 날 낳은 새끼 한 마리를 먼저 떠나보내서였을까, 작은 곰을 향한 어미 곰의 사랑은 각별했다. 그날도 싱싱한 송어를 맛보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어미 곰은 작은 곰을 데리고 강가로 향한다. 송어 사냥에 정신이 팔린 사이 밀렵꾼이 나타나, 작은 곰은 그만 어깨에 큰 상처를 입고 어미 곰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다. 눈앞에서 어미를 잃은 작은 곰은 밀렵꾼에게서 겨우 도망쳐 캄캄한 고목 속에서 며칠을 보낸다. 그리고 덩굴 가지가 얼기설기 엉켜 휘휘 하고 휘파람 소리를 내는 구멍 안으로 홀린 듯 발을 들이는데…….


작가 소개

이희우는 필명이다. 2017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길 위의 토요일》에서 따온 이름이다. 소설을 쓰기 전에는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지금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책 속으로

막 상처가 아문 터였다. 작은 곰은 몇 주 동안 꼼짝도 않고 캄캄한 고목 안에서 보냈다. 밖으로 나오자 청명을 찌를 듯 높게 솟구친 가문비나무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비췄다. 사방을 덮은 초록색 이끼와 무성한 고사리로 고요한 가운데 숲은 깊게 잠든 듯했다. 잎에 맺힌 물방울이 조그마한 웅덩이로 떨어지는 청아한 소리와 멀리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만 들려왔다. 평온해 보이는 숲속 오후의 풍경이다. 하지만 작은 곰에게는 적막으로 느껴졌다. 그날의 어미 곰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9p

어느 곳이든 끝은 있기 마련이다. 진창에 빠지더라도 허우적거림을 멈추지 않는다면 하늘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설령 그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맞아 다시 진창 속으로 고꾸라지더라도 끈기만 있다면 절대로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겁을 먹고 진창 속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겁쟁이나 하는 짓이다. 물론 다시 밀렵꾼을 만날까 봐 두려워 돌아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겁쟁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굳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미지를 향한 호기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된다.
---19p

“바다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마침내 독수리가 입을 열었다.
들어 봤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왜일까. 작은 곰의 심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작은 곰은 그곳에 가면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휘파람 소리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31p

한때는 어서 자라 어미 곰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미 곰은 힘이 무척 셌다. 호숫가 일대에서는 가히 덤빌 자가 없을 정도였다. (중략) 어미 곰이 싸움에서 진 것은 밀렵꾼과 마주친, 바로 그날 딱 한 번뿐이었다.
41~42p

“금방 돌아올 거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다음에는요?”
“네?”
“다시 떠날 거죠?”
이 이상한 감정은 대체 무얼까. 작은 곰의 가슴 한쪽이 천둥새의 번개를 맞은 듯 심하게 아렸다.
---47p

“이해 못 할 거예요. 태어난 그 순간부터 평생을 약자로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이란 이렇듯 무섭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불안에 떨면서 숨어 지내는 삶이 너무 아깝잖아요. 잘 마른 나팔꽃 씨앗을 찾아서 던져 주면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으니, 설령 저 짓눌린 토끼들처럼 죽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름대로 고군분투한 거죠.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어차피 나도…….”
---51p

천공을 반으로 가르는 전나무들 사이로 어느 전설에나 등장할 만한 거대한 동물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려 꽂아 놓은 듯 세월의 무게를 모두 벗어던지고 장렬히 고사한 전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다. 그 높이와 두께로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족히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 전에 뿌리를 내린 듯하다. 지금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 고사목이 처음 싹을 틔우기도 훨씬 전,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된다.
--61p

하나의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더욱이 그 땅이 햇빛과 영양분 모두 충분한 울창한 숲이라면 씨앗은 금세 싹을 틔우고 튼튼한 줄기로 자라난다. 줄기는 수일 내에 땅속 깊숙이 촘촘한 뿌리를 내려 무성한 가지와 잎을 만들어 낸다. 악도 그 성질과 비슷하여 한번 뿌리를 내리면 빠르게 자라난다.
---70p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이 잎맥을 따라 한데 모였다가 또르르 떨어지면서 퐁 하는 소리를 냈다. 먼저 떨어져 땅에 고여 있는 빗물을 밀어내는 소리다. 현재가 과거를 매몰차게 내리치는 소리다. 그래도 자꾸만 옛 생각이 나는 것은 어째서일까.
---73p

작은 곰도 어미를 잃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깝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잃은 슬픔을 안다. 그러나 그 슬픔이 아무리 클지라도 새끼를 잃은 어미의 심정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무너진 하늘의 파편에 가슴을 찔리는 것보다 더 아프다.
---80p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슬픔과 목적을 지닌 두 마리 맹수가 한자리에서 상대방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목적이란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자 사명을 행하는 힘이다. 이는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이끌려 움직이는데, 이것이 바로 운명이다.
---81p

작은 곰은 울부짖으며 족히 수 킬로미터를 달렸다. 어쩌면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달렸을지도 모른다. 거리야 어찌되었든 상관없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숲을 빠져나와 캄캄한 밤, 다시 혼자가 된 후였다. 
‘지금껏 나는 무엇을 한 걸까…….’
멀리 새끼 잃은 어미 새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소리 없이 울렸다.
---85p


[조서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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