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작은 곰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도서]

그들은, 우리들은 왜 살고 있는가.
글 입력 2018.12.1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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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화제가 된 영상, 곰 한 마리가 눈 쌓인 절벽을 힘겹게 오르는 것이었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해 보는 사람들을 조마조마하게 했으나 그 어린 곰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절벽을 오르는 것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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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결코 포기를 모르는 또 한 마리의 작은 곰이 있다. 어미 곰의 사랑으로 따뜻한 한 때를 보내던 중, 밀렵꾼이 쏜 총에 눈앞에서 어미를 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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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인 작은 곰의 이야기. <작은 곰>

"막 상처가 아문 터였다. 작은 곰은 몇 주 동안 꼼작도 않고 캄캄한 고목 안에서 보냈다. 밖으로 나오자 청명을 찌를 듯 높게 솟구친 가문비나무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비췄다. 사방을 덮은 초록색이 끼와 무성한 고사리로 고요한 가운데 숲은 깊게 잠든 듯했다. 잎에 맺힌 물방울이 조그마한 웅덩이로 떨어지는 청아한 소리와 멀리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만 들려왔다. 평온해 보이는 숲 속 오후의 풍경이다. 하지만 작은 곰에게는 적막으로 느껴졌다. 그날의 어미 곰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p.9)

"어느 곳이든 끝은 있기 마련이다. 진창에 빠지더라도 허우적거림을 멈추지 않는다면 하늘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설령 그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맞아 다시 진창 속으로 고꾸라지더라도 끈기만 있다면 절대로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겁을 먹고 진창 속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겁쟁이나 하는 짓이다. 물론 다시 밀렵꾼을 만날까 봐 두려워 돌아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겁쟁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굳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미지를 향한 호기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된다." (p.19)

상처를 입고 혼자가 된 그 작은 곰은 왜 그렇게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까. 왜 우리 동물들은 그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에 의문을 느낀 인간은 살아가는 행위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자연적인 동물들은 그저 살아간다. 왜 동물은 살고 있을까. 마치 그것이 숙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살기 위한 목적인 것처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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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그랬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조금 힘든 일이 생기면 투정부리곤 했다. "우리는 왜 수능을 봐야 하냐!", "우리는 왜 일상생활에, 앞으로 쓸모도 없을 수학 공식을 배우고 외우고 적용하고 응용해야 하는가!", "평생 사용하지도 않을 영어 공부는 왜 억지로 해야 하는 건가?!", "우리가 평생 살면서 고전 글씨를 볼 일이 얼마나 되겠어!" 하면서 쏟아내던 불평들을 언제부턴가 하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 4일 뒤면 마감이야. :마감 못 하면 어쩌지. 우리 반은 왜 늦게 시작해놓고 다른 반이랑 다 같이 마감이야, 괜히 비교당하게."하는 마음도 물론 있기는 했지만, 그 감정들이 나를 반항하게까지 이끌지는 않았다.

시간을 디데이로 환산하여 쪼개고 쪼개서 마감 준비를 했다. 잠을 한순간도 자지 못하고 마감 준비를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할까?

예전 같으면 조금 잤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잠을 자려고 잠시 몸을 눕혔다가도 '지금 자서 무슨 소용이 있지? 어차피 며칠 뒤면 잘 수 있는데. 좀 더 최선의 퀄리티를 내고 완성을 하고 자는 게 더 나아'라며. 잠을 자고 싶어도 잠을 잘 수가 없다. 버스 안에서도 쉽게 잠이 들고, 치과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그 찰나적 순간에 잠이 들곤 하는 나지만 마감 기간에는 조금도 잘 수가 없었다. 피곤해서 잠시 누우면 온갖 불안감이 몰려왔다. 나 혼자 마감을 하지 못하는 그 상황이 그려졌다.

친구들은 다들 "힘들겠다."고 위로해주는데 나는 힘들지 않았다. 오로지 '마감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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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또 그랬다.

내가 조금이라도 억울하면 최선을 다해서 상황을 변명했다. 그때는 무슨 일이 있어서 그랬고, 갑자기 술을 마셔서 그랬고, 내가 조금 긴장해서 그랬고. 그렇게 나를 변호하고 상대방이 나의 억울함을 알아주어 나를 다시 사랑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나의 잘못을 이해해줄 사람이라면 변명을 하든 변명을 하지 않든 이해해줄 것이다, 라며 조금은 무책임해졌다. 나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은 하되 왜 그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 어린 시절의 수많은 "그래서, 그래서. 또 그것 때문에, 걔 때문에"와 같은 변명이 "미안해" 한 마디로 일축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안함을 더 잘 알아주는 듯하다. 아니,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졌다, 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식중독이 걸려서 수업에 참여하기 힘들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면 누구도 나에게 그 음식을 왜 먹었느냐고 죄를 묻지 않는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다들 전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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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곰>에서는 작은 곰의 여정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며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했다. 발톱도 쓸 줄 모르던 작은 곰이 날카로운 발톱을 지켜 세우고 자신을 지키게 된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그것이 크게 싸움으로 번졌다. 자기의 프린트물 하나에 흘린 폴라포 아이스크림의 보라색 국물 때문에 소리를 지르던 반 친구 한 명이 떠오른다. 사실은 그때 내가 흘린 거였다고 조금 용기를 내었다면 억울한 내 친구가 의심받지 않았을 텐데.

대학교에 오니 사람들은 싫은 사람이 생기면, 그냥 서서히 멀어지더라. 나만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뒤에서는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을 싫어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뒤에선 얼마나 많은 욕을 먹고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그것 역시 이미 잘 알고 있고, 그렇다고 해도 딱히 상관이 없다.

내가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해주기에도 시간이 없는데 굳이 그들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없다. 우리들의 만남은 그런 일회성의 만남이 되어 과거와 현재가 얼마나 변했는지 한 번 더 의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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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기 속에 있는 발톱을 숨기는데 동물은 참 순수한 존재구나. 물리적으로 그 발톱을 보인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순수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를 그렇게도 사랑하는구나. 고양이는 화가 나면 나를 할퀸다. 겨울이 되면 털이 두 배가 되어 통통해진다. 자기 자신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몸에서 방어해준다.


한때는 어서 자라 어미 곰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미 곰은 힘이 무척 셌다. 호숫가 일대에서는 가히 덤빌 자가 없을 정도였다. (중략) 어미 곰이 싸움에서 진 것은 밀렵꾼과 마주친, 바로 그날 딱 한 번뿐이었다. (41~42p)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늙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부터 앞섰다. 주름이 생기고, 나의 검은 머리가 점점 흰색으로 변하고, 살에 탄력을 잃어버리고 나잇살이 찌겠지.

하지만 23살이 된 지금의 모습은 그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10대의 내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고, 20살 때의 모습보다 훨씬 탄탄한 내면을 갖게 되었다. 여전히 크고 작은 문제를 갖고 있긴 하지만 과거의 내 모습보다 분명히 성장하고 괜찮아졌다. 어쩌면 나이 드는 것은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발톱을 가진다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겠다고 생각도 들었다.

고양이가 어른이 되면 귀여움이 없어질 거라고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 고양이들을 보면서, 어린아이의 철없는 귀여움보다는 나와의 추억을 가진 어른이 된 그 아이들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밥을 달라고 다가와 몸을 비비는 그 포근함이 더 귀여운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가끔은 가슴이 벅차 눈물을 흘리면서 자라는 것이란 단지 몸이 커가거나 변하는 것만이 아닌 마음의 성장이 더 크다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도 알고 싶었다. 나는 왜 살고 있으며,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때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 삶이며, 그저 살아가는 것이 살아있는 이유라는 것을 몰랐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는 것 역시도 몰랐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결국 그 말은,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라는 삶이 있다면 그것은 내 선택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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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곰
- 나의 유년 시절에게 -


글/그림 : 이희우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한국문학

규격
130*195(mm)

쪽 수 : 96쪽

발행일
2018년 11월 19일

정가 : 12,000원

ISBN
979-11-965176-1-8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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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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