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작은 곰의 걷기, 살기 [도서]

글 입력 2018.12.15 11: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작은곰_1쇄_표1_앞표지_미리보기_도서출판잔.jpg
 


“하루가 무섭게 잔혹해지는 세상에서

어른이 되어 가며 살아남는 방법은

날카로운 발톱을 치켜세우고 자신을 지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픔을 드러내면 약자가 되어 낙오되는 냉정한 세상이기에.”

 


세상은 아픔을 드러내는 자에게 냉정하다. 조금만 더 순수했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아이러니, 이상한 세상의 법칙. 알게 모르게 사람이, 세상이 그렇다는 걸 조금씩 깨달으며 그래서 이건 더 이상 어쩌면 아이러니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기가 겪은 일을 낱낱이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너 그러다 큰일 날 텐데’ 걱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다니.


그래도 나는 너를 약자로 대하는 사람은 되지 않을게, 다짐하면서 그런데 그렇게 한다는 건 어떤 거지, 자문했던 적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매 순간 아주 민감한 태도를 유지하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까지 깨달았다. 그 '비극'은 나의 의도를 떠나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친 본성 탓을 해야 하나. 그러니 더 순수한 자여, 이 사실을 그대는 깨닫지 말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만이 최선이다. 어쨌건 확실히 나는, ‘이 법칙’에 의한 어른은 되었네.

 

언젠가 아픔을 겪고 무언가를 깨닫는 서사에서 말하는 ‘성장’은 꼭 낭만적인 것인지 글을 쓴 적 있다. 결국 그 과정은 낭만적이지 않다는 나만의 결론을 바탕으로 쓰인 글이었다. 고난과 상처, 상처가 남기는 흉터, 흉터가 커진 트라우마, 트라우마를 이기려는 처절한 몸부림, 그 몸부림을 포장하도록 조장하는 세상의 잔인함, 잔인한 세상에 맞서는 사람들의 위선. 진짜 성장은 이런 건가, 이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주어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그걸 어떤 사람들은 무엇으로 이겨내며 살아가는 거지, 궁금하다. 나는 가끔, 아니 어쩌면 거의 매번, 맹목적인 감사가 희한한 힘을 주긴 하던데. 예를 들면 장미꽃에 있는 가시까지 감사하는 이상한 감사의 법칙을 따르는 것. 물론 정답은 모르겠다. 죽을 때까지 모르고 싶다. 그런 건 없다고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

 


“혼란스러운 마음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고

그 의미를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끝에 낭떠러지가 있을지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난을 겪었지만

작은 곰은 절대로 걷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자들에게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전달되기를 바란다.”

 


아직 책을 읽기 전이라 이 문장이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끝에 낭떠러지가 있을지라도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말이야, 자살이랑 다를 게 뭐야. 그게 ‘용기’야?

 

아니야, 꼬인 마음을 풀고 다시 문장을 읽어 본다. 결은 다르지만 어쩌면 나는 줄곧 이런 삶을 살아 온 것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천천히 들었다. 의미를 잊어버리고, 다시 의미를 찾기를 수십 번 반복해왔으니까. 그 의미를 잃어버리면 낭떠러지를 만나고, 의미를 찾으면 다시 낭떠러지를 가까스로 오르길 무한 반복 중. 단, 곰이 ‘절대로 걷는 걸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면, 나는 단지 걷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걸어왔다는 게 차이점인 것 같다. 나의 걸음에 영웅적인 이유는 없다.


 

어느 곳이든 끝은 있기 마련이다. 진창에 빠지더라도 허우적거림을 멈추지 않는다면 하늘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설령 그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맞아 다시 진창 속으로 고꾸라지더라도 끈기만 있다면 절대로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겁을 먹고 진창 속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겁쟁이나 하는 짓이다. 물론 다시 밀렵꾼을 만날까 봐 두려워 돌아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겁쟁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굳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미지를 향한 호기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된다.


- 19p

 


짐작하건대 이 ‘작은 곰’도 어쩌면 그렇게 살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 수없이 떠오르는 내면의 질문을 해결하면서 걸었던 것 같다. 이 길에서 만나는 동물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마음이 생겨 어떻게 생각이 발전되었을까. 그 연결 고리들이 작은 곰의 삶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작은 곰의 걷기, 살기에서 나의 걷기, 살기와 비슷한 모양을 만나길, 그래서 위로 받기를.






작은곰_양장판_팩샷_02_181102_final_ljh.jpg
 

도서 정보

제목: 작은 곰
분류: 문학 / 한국문학
글·그림 : 이희우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8년 11월 19일
판형: 130*195(mm)
페이지: 96쪽
정가: 12,000원
ISBN: 979-11-965176-1-8 03810
CIP제어번호: CIP2018035052


책소개

홀로 외롭고 고단한 길을 걷는 이들에게 건네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 우화

《작은 곰》은 ‘어른들을 위한 잔혹 우화’라는 문구처럼 숲속 동물들을 만나며 인간 군상과 삶을 알아 가는 작은 곰의 잔혹한 여정을 다루고 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 《길 위의 토요일》이 자전적 이야기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했다면, 《작은 곰》은 홀로 외롭고 고단한 길을 걷는 이들을 위로하며, 아무리 혹독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함께 하는 작가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같은 날 낳은 새끼 한 마리를 먼저 떠나보내서였을까, 작은 곰을 향한 어미 곰의 사랑은 각별했다. 그날도 싱싱한 송어를 맛보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어미 곰은 작은 곰을 데리고 강가로 향한다. 송어 사냥에 정신이 팔린 사이 밀렵꾼이 나타나, 작은 곰은 그만 어깨에 큰 상처를 입고 어미 곰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다. 눈앞에서 어미를 잃은 작은 곰은 밀렵꾼에게서 겨우 도망쳐 캄캄한 고목 속에서 며칠을 보낸다. 그리고 덩굴 가지가 얼기설기 엉켜 휘휘 하고 휘파람 소리를 내는 구멍 안으로 홀린 듯 발을 들이는데…….


작가 소개

이희우는 필명이다. 2017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길 위의 토요일》에서 따온 이름이다. 소설을 쓰기 전에는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지금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책 속으로

막 상처가 아문 터였다. 작은 곰은 몇 주 동안 꼼짝도 않고 캄캄한 고목 안에서 보냈다. 밖으로 나오자 청명을 찌를 듯 높게 솟구친 가문비나무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비췄다. 사방을 덮은 초록색 이끼와 무성한 고사리로 고요한 가운데 숲은 깊게 잠든 듯했다. 잎에 맺힌 물방울이 조그마한 웅덩이로 떨어지는 청아한 소리와 멀리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만 들려왔다. 평온해 보이는 숲속 오후의 풍경이다. 하지만 작은 곰에게는 적막으로 느껴졌다. 그날의 어미 곰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9p

어느 곳이든 끝은 있기 마련이다. 진창에 빠지더라도 허우적거림을 멈추지 않는다면 하늘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설령 그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맞아 다시 진창 속으로 고꾸라지더라도 끈기만 있다면 절대로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겁을 먹고 진창 속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겁쟁이나 하는 짓이다. 물론 다시 밀렵꾼을 만날까 봐 두려워 돌아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겁쟁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굳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미지를 향한 호기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된다.
---19p

“바다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마침내 독수리가 입을 열었다.
들어 봤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왜일까. 작은 곰의 심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작은 곰은 그곳에 가면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휘파람 소리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31p

한때는 어서 자라 어미 곰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미 곰은 힘이 무척 셌다. 호숫가 일대에서는 가히 덤빌 자가 없을 정도였다. (중략) 어미 곰이 싸움에서 진 것은 밀렵꾼과 마주친, 바로 그날 딱 한 번뿐이었다.
41~42p

“금방 돌아올 거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다음에는요?”
“네?”
“다시 떠날 거죠?”
이 이상한 감정은 대체 무얼까. 작은 곰의 가슴 한쪽이 천둥새의 번개를 맞은 듯 심하게 아렸다.
---47p

“이해 못 할 거예요. 태어난 그 순간부터 평생을 약자로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이란 이렇듯 무섭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불안에 떨면서 숨어 지내는 삶이 너무 아깝잖아요. 잘 마른 나팔꽃 씨앗을 찾아서 던져 주면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으니, 설령 저 짓눌린 토끼들처럼 죽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름대로 고군분투한 거죠.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어차피 나도…….”
---51p

천공을 반으로 가르는 전나무들 사이로 어느 전설에나 등장할 만한 거대한 동물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려 꽂아 놓은 듯 세월의 무게를 모두 벗어던지고 장렬히 고사한 전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다. 그 높이와 두께로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족히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 전에 뿌리를 내린 듯하다. 지금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 고사목이 처음 싹을 틔우기도 훨씬 전,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된다.
--61p

하나의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더욱이 그 땅이 햇빛과 영양분 모두 충분한 울창한 숲이라면 씨앗은 금세 싹을 틔우고 튼튼한 줄기로 자라난다. 줄기는 수일 내에 땅속 깊숙이 촘촘한 뿌리를 내려 무성한 가지와 잎을 만들어 낸다. 악도 그 성질과 비슷하여 한번 뿌리를 내리면 빠르게 자라난다.
---70p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이 잎맥을 따라 한데 모였다가 또르르 떨어지면서 퐁 하는 소리를 냈다. 먼저 떨어져 땅에 고여 있는 빗물을 밀어내는 소리다. 현재가 과거를 매몰차게 내리치는 소리다. 그래도 자꾸만 옛 생각이 나는 것은 어째서일까.
---73p

작은 곰도 어미를 잃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깝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잃은 슬픔을 안다. 그러나 그 슬픔이 아무리 클지라도 새끼를 잃은 어미의 심정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무너진 하늘의 파편에 가슴을 찔리는 것보다 더 아프다.
---80p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슬픔과 목적을 지닌 두 마리 맹수가 한자리에서 상대방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목적이란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자 사명을 행하는 힘이다. 이는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이끌려 움직이는데, 이것이 바로 운명이다.
---81p

작은 곰은 울부짖으며 족히 수 킬로미터를 달렸다. 어쩌면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달렸을지도 모른다. 거리야 어찌되었든 상관없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숲을 빠져나와 캄캄한 밤, 다시 혼자가 된 후였다. 
‘지금껏 나는 무엇을 한 걸까…….’
멀리 새끼 잃은 어미 새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소리 없이 울렸다.
---85p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