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청춘이 머무를 수 있다면 [공연]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며,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글 입력 2018.11.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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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울려퍼진 故 김광석의 노래들. 어쿠스틱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감상하고 왔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된 이후로 처음 누리는 문화 초대인 만큼 기대감이 남달랐다. 게다가 언제를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뮤지컬이라니, 대학로에 들어설 때부터 들떠있었다. 같이 간 친구를 데리고 줄이 길게 늘어선 매표소에서 “초대권이요.”하고 외칠 때의 짜릿함이란. 우습지만 어쩐지 대단한 인물이 된 것 같아서 어깨가 올라갔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故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부르며 시작한  밴드 ‘바람’의 콘서트. 이들은 잊혀 간 꿈을 다시 만나고 싶어 모인 5명의 친구들로, 1994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밴드이기도 하다. 그 시절 김광석과 음악을 사랑했던 그들 중 대부분은 음악을 접고 회사원, 가정주부, 방송국 피디로 살아간다. 유일하게 음악을 계속 한 '풍세'는 가수가 되었으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방황하기만 한다.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지만, 음악만으로 좋았던 대학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모두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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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세 역의 박형규 배우 (왼쪽)


'풍세' 역을 맡은 배우 박형규 씨는 음색부터 창법까지 90년대 가수 같아서 김광석의 노래와 싱크로율이 잘 맞았다. 원곡이 있는 노래를 다른 사람이 부를 때 원곡자의 감성을 살리기란 쉽지 않은데 박형규 씨의 노래는 훌륭했다. 분명 Cover 버전이지만, 극의 상황과 자신의 감정을 잘 녹여내어 노래를 ‘평가’하는 게 아닌 ‘공감’하도록 만들었다. 기타를 치며 눈 앞머리를 가리는 머리칼을 쓸어 올릴 때마다 같이 간 친구와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생각건대 작품을 시작하기 전과 끝날 때쯤에 배우가 달리 보이면 그 배우의 흡입력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와 친구는 확실히 극과 배우에 빠져들었다.


소극장인 만큼 관객석과 무대와의 거리가 좁아서 배우의 표정 하나까지 잘 보였다. 특히 ‘고은’역의 황려진 배우와 중간중간 계속 눈이 마주쳤는데 옆자리인 친구와 서로에게 지어준 웃음이라며 극성팬처럼 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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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신후 배우 (맨 오른쪽)


배우들 모두 최고의 무대를 보여 주었지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연 최고의 명품 조연은 박신후 배우였다. 그는 극 중에서 사회자, 경비아저씨, 선배, 엔터테인먼트 사장 등 각기 다른 역할을 소화하며 극을 이끌어 갔다. 극이 지루해질 때쯤이면 등장해 웃음을 주었고 종국에는 그가 나타나기만 해도 관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그만큼 대단한 재치와 말솜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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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보기 전부터 김광석의 노래로 재생목록을 채운 보람이 있는지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 중 대부분은 속으로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사랑했지만’을 속으로 따라 부르던 중에 귓가에 들려오는 허밍 소리에 순간 내가 입으로 소리를 내었나 움찔했다. 알고 보니 앞자리 남성 관객 한 분이 조그만 소리로 따라 부르던 것이었다. 그 허밍 소리는 가까이 앉은 내게만 들릴 듯 작았는데 감흥에 젖어 속으로 따라 부르던 중 참을 수 없어서 입 밖으로 새어 나온 것이 느껴져 거슬렸다기보단 귀엽고 짠했다.

관객 대부분이 부모님 연배의 4~50대인 것은 故 김광석이 활동했던 시기가 부모님의 청년 시절이었을 테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고개를 젖혀 캄캄한 천정을 바라보던 맞은편 아저씨 한 분을 보며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모시고 왔으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분과 같이 온 것으로 보이는 양옆의 중년들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사소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듯, 흘러간 시간을 되짚으며 각자의 기억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자꾸만 눈물이 흐르는지 고개를 젖히기도 하고 안경을 올려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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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7’이 처음 방영됐을 때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그 드라마를 즐겨보던 내게는 재미있는 방송일 뿐이었으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드라마에 자신의 학창시절을 대입하고 추억하던 걸 보며 그들에게도 나와 같은 어리고 젊은 날이 있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기분을 느꼈었다. 그리고 이날,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관람하면서 다시 감상에 젖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볼 때와 다른 점은 그래도 나이를 좀 먹었다고 덩달아 아련해졌다. 가끔 교복을 입고 급식을 먹으러 달려갈 때로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도 언젠가는 그리움으로 남겠지', 하며 흘러가는 시간이 무섭기도 했다. 앞자리에 앉아서 천정만 쳐다보던 그 아저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안경을 들치어 눈물을 찍어내던 그분은 무슨 기억을 떠올렸을까. 언젠가 그들의 나이가 되면 저절로 알 수 있겠지. 아마 알고 싶지 않더라도 느끼게 될 것이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니까.

뮤지컬이 끝나고 극장을 벗어나는 길, 좌석에서 숙면을 하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그 친구는 김광석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엄마, 아빠를 따라왔을 테니 옛날 노래가 졸리기도 했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연을 보았지만, 각자가 가진 사연과 나이, 기억에 따라 느끼는 것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그 아이도 곧 나이를 먹어 추억을 만들겠지. 그러다 저 아이가 40대가 되어 그리움이란 감정을 느낀다고 상상하니 별안간 아득해졌다. 그리고 저 아이보다 먼저 도달할 40대의 그리움이 벌써 두렵다. 그저 청춘이 머물러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연을 보며 누군가는 故 김광석을 추억하고, 청춘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앞으로 다가올 추억을 예상해 보았다. 청춘을 붙잡을 수 있다면 이런 공연을 봐도 별생각이 안 들지 않을까. 시간은 흘러가고 돌이킬 수 없기에 청춘이 아쉬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보낸 노래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으니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훔치던 관객의 심정을 이해할 날이 언젠가 오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노래를 들으러 간 곳에서 청춘의 무게를 깨닫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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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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