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삐딱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면, groundhog day [영화]

글 입력 2018.11.3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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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삐딱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면,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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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코트, 추위에 발그레해진 사람들의 볼, 그리고 벽난로가 있는 따뜻한 실내 풍경이 반복된다. ‘90년대 미국의 겨울 감성은 역시 좋네.’는 감상평의 전부였다. 출근을 위한 아침이 지긋지긋하던 날, 영화의 장면은 머릿속에 불쑥 다시 떠올랐다.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으나 나는 무기력한 필의 표정으로 이불 속을 밍기적댔다. (주인공 필의 연기를 한 배우는 귀찮은 표정을 세계에서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침을 대하는 우리의 얼굴들을 돌아보게 되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
  

2월 2일이었다. 후배가 인스타그램에 인생 영화라며 오래된 입자의 한 장면을 업로드 한 건. 촌스러운 제목을 한 이 영화는 TV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의 "마치 사랑의 블랙홀처럼"이라는 말로, 공포 영화 <해피 데스 데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영화 봤어?" 라는 대사로 다시 등장한다. 25년 전 개봉된, 타임루프의 대명사와도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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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 주의 작은 도시, 펑추토니에는 2월 2일 성촉일을 맞아 '펑추토니 필'이라는 이름의 매멋(큰 두더지 같이 생긴 동물)이 봄을 알리는 이벤트가 열린다. 취재를 오게 된 기상캐스터 필은 별 볼 일 없는 행사의 리포터를 맡게 되어 심술을 부린다. 취재진에게 퉁명스럽게 대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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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더지 대신 제가 알려줄게요.
봄은 오지 않을 거고 대신 계속 추울 거에요.
칙칙할 거고, 여러분의 인생 내내 그럴 거에요.”


I Got You, Babe - Groundhog Day



엉망진창으로 촬영을 마친 필은 뒷정리하는 취재진을 돕기는 커녕 빨리 돌아가자고 재촉한다. 그러나 몰아친 눈보라로 모든 도로가 차단된다. "긴급상황이나 셀럽을 위해 뚫어 놓은 다른 길은 없소? 나는 긴급상황에 놓인 셀럽이란 말이오!" 라며 소리를 지르는 씬은 필이 얼마나 거만하고 이기적지 보여준다. 펑추토니 마을에서 하루를 더 머무르게 된 그는 다음 날 아침이 아닌 2월 2일에 다시 눈을 뜬다. 자신이 끔찍하게 여기던 그 시간 속에 감금 되었음을 알게 되자 그는 당황하고 화를 내고 상황을 저주한다.


음식을 몽땅 주문하여 폭식을 하고, 동네 여자를 꼬시고, 생방송 중 매멋을 훔쳐 달아나며 하루들을 보낸다. 말썽 부리는 일도 싫증이 나자 이내 그는 절망의 상태가 된다. 감전, 추락, 교통사고 등 갖은 방법으로  매일 죽기를 시도하지만 그는 매일 아침 여섯시, 알람과 함께 침대에서 다시 깨어난다. 덕분에 그 날의 라디오 기상곡인 'I've got you babe'는 영화에 반 백 번쯤 걸쳐 울린다. (영화에 등장하는 라디오 겸용 탁상 시계는 영화의 인기와 더불어 완판되었다고 한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은 곧 살아도 사는 게 아님을 필의 표정으로 알 수 있다.


타임루프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조차 포기한 필은 어느 날 추위에 떠는 길 위의 노인에게 수프를 사 주며 말동무를 한다. 노인은 그날 밤 숨을 거둔다.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하루가 누군가에겐 미쳐 다 살지 못한 마지막 하루였음을 알게 된 필은 독서를 시작한다. 피아노를 배우고 얼음 조각을 한다. 동네 사람들과 살갑게 대화도 나누고 때로 도움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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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역시 영화 속 필이 반복해 살아내는 하루다. 해가 뜨면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하다 해가 지는 하루를 매일 다시 살고 있다. 의미있는 것들은 어떤 하루에도 담을 수 있다. 단지 내일이 온다는 확신으로 건성건성 살아온 것이다.  ‘나는 이런 단순한 일이 하고 싶은 게 아니아. 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일이 하고 싶다고!’ 라던 건방진 내 생각은 펑추토니 마을의 행사를 시덥잖게 여기던 필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 나는 매일 하나씩 쓰기로 한 글을 일주일치나 미뤄놓고 있다. 성촉절의 펑츄토니 마을에선 1866년부터 지금까지 펑츄토니 필이 봄을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시작되는 하루에 심술궂은 얼굴을 해서는 안된다. 시간의 마법이 알려주는 교훈에 갇히게 될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오늘의 해가 새로 밝았음을 온 마음을 다해 기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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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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