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순수예술의 발명』 시리즈: ③ 예술의 지위 상승 [시각예술]

샤이너의 책 '더' 쉽게 읽기
글 입력 2018.11.28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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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자, 현대적 순수예술체계로 넘어가는 느린 변화의 과정이 조금씩 진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하루 만에 천지개벽이 이뤄진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변화는 싹을 트기 시작했을 뿐, 소수의 엘리트층에서 새로운 관점이 나타났다고 해서 대부분의 관행이 순식간의 고대의 그림자를 지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순수예술이라는 범주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를 향해 진전하는 요소들은 있었다. 시와의 자매설은 회화를 리버럴아츠로 편입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고, 디자인 아카데미의 설립을 통해 화가와 조각가가 길드에서 벗어나게 된 것 등이 그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디자인 개념에는 "그 어떤 미학적 진술도 수반하지 않았고", "부유한 후원자도 피렌체나 베네치아의 일반인도, 최고의 도공이나 가구 제작자의 작품과 화가 및 조각가의 작품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고 보지는 않았"(샤이너, 『순수예술의 발명』, p.90)기 때문에 회화와 조각이 여전히 오늘날의 지위와 가치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물론 화가와 조각가의 지위가 크게 상승한 것은 맞다. 그렇다고 그들이 오늘날의 자율적인 독창성과 적극적 자기표현을 나타내는 예술가와 같다는 것일까? 아쉽게도 아직은 아니었다. 샤이너는 낭만주의적 단순화로 인해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지적했는데, 그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에는 현대적 예술가 개념이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를 뒷받침할 증거로는 ‘예술가의 전기’라는 장르의 출현, 자화상의 발전과 ‘궁정 예술가’의 흥성 등을 꼽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계속해서 강조하듯, 이러한 요소들의 출현은 여전히 ‘특정 계약을 이행한다는’ 르네상스 시대적 예술 제작의 규범에 범속된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예술가가 ‘자율적’이거나 ‘독립적’이었을 거라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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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예술가의 대표로 기억되는 미켈란젤로는 ‘창안’과 실행의 과정에서 부딪히는 난해함을 우아하게 극복해낸 장인/예술가로 인정받아 유명세를 떨친 인물이고, ‘그가 원했던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교황 율리우스 2세의 허락을 받았지만, 이러한 미켈란젤로조차 “그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그릴 수 있었다기보다 ... 그가 선택하는 어떤 방식으로든 주제를 다룰 수 있었”을 뿐이다.

시인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가 기억하는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과연 순수하게 문학을 추구한다는 목적하에 작품을 만들어낸 것일까? 문학사학자들이 ‘전업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당대의 몇몇 사람들은 사실 생계를 위한 후원금을 얻어내기 위해 비굴한 헌정의 글을 쓰거나, 극단에서 사용할 희극을 고정적으로 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셰익스피어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후원을 받아내기 위해 딱 한 번 사우샘프턴 백작에게 헌정하는 아첨의 글을 쓰다가, 극단에서 오로지 상영만을 목적으로 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또한,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희곡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상한 ‘예술작품’ 같은 것이 아니라, 먹거리를 들고 구경할 수 있는 떠들썩한 야외행사였고, 그 대본 역시 불변하게 위대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입맛에 따라 계속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샤이너의 말처럼, 우리는 아마도 “셰익스피어를 현대적 저자/예술가의 선구자로 생각하기보다는, 청중을 만족시킬 줄 알았으며, ‘안정된 은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일했던 수공업자/사업가라고 생각하는 편이 정당할 것이다.”(샤이너, p.112)



시리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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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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