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지중해의 영감

예지의 언어로 빚어낸 장 그르니에의 아름다운 산문
글 입력 2018.11.2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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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다 보면 유독 애착이 가는 장소가 있다. 내게는 일본의 유노히라 마을이 그런 곳이다.


유노히라는 작년 5월, 일과 사람에 치여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쯤 방문했던 숲 속의 작은 온천 마을이다. 무성하게 우거진 풀숲과 나무들 사이를 지나던 지하철, 안개가 자욱하게 낀 조용한 역사, 은은한 빛을 내뿜는 거리의 홍등과 산속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 노천 온천까지 아직도 그곳의 풍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동안 신경 쓸 곳이 많아 들여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내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쌓인 혼란과 걱정을 잠재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이후부터 여행의 기적을 믿기 시작했다. 나는 여행을 통해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아픔과 흔적이 없는 곳, 그래서 마음속의 그늘을 거두고 온전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과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여행의 풍경은 삶의 그 어떤 외부적 요소의 개입도 없이 사람의 온전한 내면과 마주하면서 누군가에게는 기쁨을, 누군가에게는 해방감이나 평온함을 선물한다. 여행에서 만나는 많은 풍경들은, 그렇게 개인의 삶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여행과 풍경이 주는 평안과 황홀감을 경험해보았던 나에게 ‘지중해의 영감’ 은 정말 매력적인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 장 그르니에는, 서문에서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위해 미리 정해진 어떤 장소들이, 단순한 삶의 즐거움을 넘어 황홀함에 가까운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어떤 풍경들이 존재한다” 고 말한다. 그에게 그런 장소와 풍경이란 바로 ‘눈 부신 빛이 헐벗은 바위들 위에서 노니는’ 지중해이다. 바람과 안개가 일상적인, 늘 흐릿한 풍경의 프랑스 북부 브르타뉴 바닷가에서 자란 그는 선명한 빛이 내리쬐는 드넓은 지중해를 ‘최초의 해방’이자,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척도에 맞게 만들어진 세계’라고 묘사한다.



“시프레 나무들이 땅과 이루는 저 직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보듬어주는 팔처럼 구부린 그 어느 만의 정경은 쓰라린 맛을 경험한 자의 마음에는 얼마나 커다란 휴식인가!”

“눈부신 빛이 헐벗은 바위들 위에서 노닐며 온통 영적인 한 편의 시를 이끌어내니….”



지중해를 향한 그의 묘사는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하다. 그의 눈에 비쳤던 빛의 세계, 지중해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그 세계에서 마주한 그의 순수한 내면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까.


장 그르니에의 대표 산문집, ‘지중해의 영감’ 은 찬란한 지중해의 풍경과 그것을 깊은 시적 감수성으로 통찰해 낸 그의 순수한 내면의 영감을 담았다. 그르니에는 이 책에서 젊은 시절 여행했던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스페인 등 지중해를 담고 있는 여러 지역의 풍경들이 그에게 주었던 수많은 영감을 풀어내며 ‘두 눈을 감고 그 풍경을 자기 안에 내장하여 자양을 얻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르니에가 말하는 영감이란 인간에게 계시와 충고를 주는 초자연적 존재의 숨결이다. 그는 ‘지중해의 찬란한 모습은 시기심에 찢긴 이 세계 밖으로, 플라톤이 말하는 저 신의 자리까지 우리를 들어 올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고 이야기하며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찬란하고 감동적인 삶의 희망을 전하고 있다.



“나는 이 고장에 올 때면 무언가 내 안에 맺혀 있던 것이 풀리고 마음속의 불안이 걷힌다는 생각을 했다.”



그르니에가 말했듯, 여행에서 만나는 풍경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던 때 여행의 기적을 믿게 되었던 것처럼, 책 속에 담긴 찬란한 지중해의 풍경과 그 풍경이 선물할 순수한 영감은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해 줄지도 모른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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