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샤를 리샤르-아믈랭 피아노 리사이틀; 클래식알못의 첫 클래식 감상記 [공연]

어서와, 피아노 리사이틀은 처음이지?
글 입력 2018.11.2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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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업을 마친 후 부리나케 터미널로 달려가 고향에서 올라온 엄마와 만나 함께 향한 곳, 예술의전당이었다. 스무 살 새내기 시절 연극 단체 관람을 위해 온 적 이후 처음인지라 버스에서 내린 후 길을 헤매는 것도 잠시, 샤를 리샤르-아믈랭의 피아노 리사이틀은 콘서트홀에서 열렸기에 예술의전당 정문이 아닌 곧바로 콘서트홀로 입장했다.

 

콘서트홀 건물 바로 앞에 위치한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티켓 수령, 하지만 입장은 녹록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예술의전당은 난생 두 번째이기에 다른 홀로 입장할 뻔도 하고 자리는 2층인데 1층으로 들어갈 뻔도 하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신 직원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자리는 2층 C열 7번과 8번. 시야가 훤히 트여 있고 가림막이 없어 연주자의 모습과 손을 잘 볼 수 있어 좋았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무대 위에는 연주자 없이 피아노 한 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곧 있으면 제 역할을 다할 고귀한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었지만, 아무도 없이 조명만 그것을 비추고 있으니 왠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물론 가격과 규모 등에서 비할 바는 못 되지만 10년 가까이 조율도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우리 집의 외로운 피아노가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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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들린다


 

8시 정각, 사진으로만 보던 연주자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별다른 인사말 없이 곧바로 녹턴 제20번부터 4개의 즉흥곡, 영웅 폴로네이즈까지 이어지는 리사이틀 연주가 시작되었다(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원래 독주회에서의 연주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도 하고 며칠간 과제에 시달린 탓에 초반부에는 연주에 집중하지 못한 채 멍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 같은 클래식알못의 귀도 훌륭한 연주는 인지하는지, 혹은 연주자의 열정에 피로도 항복한 건지 점점 집중력이 올라갔고, 다른 의미로 멍해지기 시작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아는 만큼 들릴” 것 같아 연주회에 가기 전 쇼팽의 곡에 대한 설명을 한 번 쭉 훑었었다. 4개의 즉흥곡 중 제1번은 영화 <피아니스트>에 삽입되며 대중적으로 알려졌다는 말이 유독 기억에 남았는데, 신기하게도 내 귀에 가장 낯익은 곡은 ‘영웅 폴로네이즈’였다. ‘영웅’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 때문인지, ‘영웅’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때문인지 곡 자체가 지니는 힘 있는 울림과 당당한 외침이 온 관객들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난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인 건지 연주를 감상하며 ‘영웅’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헤라클레스 등의 신화적 인물이나 홍길동 등의 고전적 인물이 아닌 아이언맨, 토르 등의 인기 히어로물 영화의 인물들이 떠오른 것은 참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쇼팽과 아이언맨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이상한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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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는 ‘연주자’


 

10분 인터미션 시간을 가진 후 4개의 발라드 연주가 연이어 이어졌다. ‘영웅’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발라드’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고정관념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발라드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연주와 함께 완벽하게 부서졌다. 오히려 앞선 즉흥곡이나 영웅 폴로네이즈보다 더 격정적이고 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연주를 들을수록 점점 귀가 트인 덕도 있겠지만 연주자 샤를 리샤르-아믈랭 또한 연주에 흠뻑 빠져 있다는 느낌이 그 어떤 곡보다 와닿았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그때가 되어서야 연주자가 연주하는 곡, 연주자의 손가락만이 아닌 ‘연주자’ 본인에게로 눈길을 돌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피아노 리사이틀이었던 만큼 건반 위에서 화려하게 움직이는 연주자의 손가락에 가장 먼저 집중했던 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자 곡을 연주하는 건 연주자의 손가락이 아닌, 연주자 자체였다. 그의 손짓, 발짓, 제스처, 몸짓 모두가 하나의 곡을 완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석하게도 시력이 썩 좋지 못해 연주자의 표정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이 또한 곡의 구성요소였을 거라 확신한다. (콘서트처럼 생중계 영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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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콜과 앵앵콜


 

4개의 발라드 연주가 끝난 후 한동안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다. 혹시 앵콜이 있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있었다. 앵콜이 끝난 후에는 더 놀랍게도 앵앵콜까지 있었다(애초에 계획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큰 호응에 대한 감사의 의미였을까?). 앵콜과 앵앵콜 연주는 가요에 비유하자면 높은 고음이 없는 잔잔한 발라드 같은 느낌이었는데, 마찬가지로 긴 공연 후 편안한 노래 위주로 진행했던 최근 다녀온 가수 아이유 콘서트의 앵앵콜이 다시금 생각나기도 했다.

 

커튼콜이 쳐진 후, 엄마는 “피아노 음이 미끄러지지 않고 한 음 한 음 다 들린다.”며 감탄하셨다. 연주가 빨라지면 무심결에 손가락이 미끄러져 음이 겹칠 수도 있을 법한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과 노력을 거쳤을지 감히 추측하기도 힘들다.

 

*

 

마지막까지 관객들에게 허리 숙여 깊은 감사를 표하고 무대 뒤편으로 물러난 샤를 리샤르-아믈랭. 그에 관한 많은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그의 실물을 보고 실제 연주를 라이브로 들으니 미처 알지 못한 새로운 궁금증이 솟아나는 걸 느낀다. 그는 언제부터 피아노와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되었는지, 많고 많은 작곡가 중 왜 하필 쇼팽을 택했는지 등...... 낯선 것을 접하고 마주할수록 견문이 넓혀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지금껏 지루할 것 같다는 편견으로 피하기만 했던 클래식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으니, 이제 조금 더 깊이 들어갈 차례인 것 같다. 또 다른 문화의 세계에도 거부감 없이 입성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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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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