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완벽한 대학생 증후군 [기타]

글 입력 2018.11.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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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상당히 적응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 같은 반 생활을 하는 중 고등학교 학창시절과 다르게 과 활동 중심의 대학생활은 학창시절 특유의 소속감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묘하게 서로를 재는 느낌 그리고 노력해도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 피상적인 관계들과 거리감. 많은 학생들이 두근거림과 설레는 마음으로 1학년을 보내고, 2학년 전후로 인간관계와 대학생활 자체에 대한 많은 슬럼프와 회의감을 겪는다. 나 또한 그랬다. 분명 재미있게 놀고 집에 돌아가는데 공허한 느낌 지치는 느낌이 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얘기하면 설명이 되려나? 잠깐 보면 보이지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였다. 내가 적응하기 힘들어했던 지점은 바로 그 느낌을 유발하는 형용할 수 없는 위화감이었다.


이제 돌아보면 성인이라는 범주에 발을 들인지 얼마 안 된 우리는 사실 멀리서 보면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이었을 청춘들 사이에서 더 어른스럽고 더 완벽해 보이려고 참 아등바등 노력했던 것 같다. 비록 신입생 시절 나의 학점은 안 좋았었지만, 어떤 학점을 받든 가와 상관없이 대학생 모두가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완벽한 대학생’에 대한 룰이 있었다. 취업 준비를 위해 신입생 때부터 인턴활동과 각종 공모전을 나가며 모든 시간을 의미 있고 활동적으로 보내는 사람, 학과생활도 열심히 하며 발표 또한 잘하고 언변이 유창하고 뛰어난 사람, 항상 건설적이고 의미 있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 많은 대학생들이 이런 ‘완벽한 대학생’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일명 ‘완벽한 대학생 증후군’은 신입생 때는 상대적으로 적게 발현되다 고학년이 될수록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되어 많은 학생들에게 앞다투어 발현된다.


사실 미래를 위해 지금을 살며 열심히 준비하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완벽한 대학생’의 기준에 대한 가치판단을 제쳐두고 정말 중요하고 아쉬운 것은 현실적이기 위해서 나를 잃을 필요는 없음에도 대부분의 ‘현실적인(?) 완벽한 대학생 증후군’에는 ‘내’가 없다. 많은 대학생들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완벽한 대학생’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허세로 가득 차 그러는 것도 아니다. “있어 보이고 싶어”는 “밉보이기 싫어”의 다른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하는 행동 속에서 우리 자신을 쉽게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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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이민희


나 또한 그러했다. ‘완벽한 대학생’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학생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해야지”라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다듬었다. 발표를 할 때면 최대한 있어 보이게끔 현학적인 말투로 발표를 했고, 교양시간에 새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평가될까 굳이 나의 개인적인 얘기를 하지 않았고, 쉽게 보일까 자주 웃거나 모든 것을 받아주지 않았다. 항상 밉보이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있어 보이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매 순간을 건설적이게 살고 있는지를 증명할만한 나름대로의 ‘이유’를 항상 준비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나를 더 돋보이게 해줄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자기 PR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실제로 꽤나 효과적이어서 ‘완벽한 대학생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더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대하게끔 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을 통해 나의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다른 학교 대학원생이었는데 우리 과 전공수업을 청강하러 온 사람이었다. 사실 그 사람하고는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지만 그분의 발표를 단 한 번 들은 것이 나에게 아주 큰 인상을 남겼다. 그분이 준비한 발표는 휘황찬란한 PPT 자료도 없었고 그분이 유창하고 현란한 말 주변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말투는 조용하고 차분하고 담담했다.) 하지만 그 발표는 정말 ‘진실’되었다. 있어 보이기 위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지적받지 않기 위해 준비한 발표가 아닌 진짜 자신의 생각과 진심이 담긴 발표는 사실 대학생활 통틀어 처음 봤었다. 자신이 겪은 바와 그것으로 인한 자신의 생각과 결론을 그저 솔직하고 차분하게 얘기했을 뿐이었고,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시간에도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진짜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답변을 해주었다. 그 꾸밈 하나 없는 태도와 사고방식이 인간으로서 정말 멋있으며 매력 있었고 진실된 태도가 얼마나 큰 장점이자 매력인지 그때 처음 제대로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서야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돋보이기 위해 내가 스스로에게 한 포장은 포장이 아니라 나의 방패들이었고, 그 방패들은 사실 내 생각만큼 나를 돋보이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나 스스로를 갉아먹기도 한다는 것을.

 

내가 대학생활을 하며 글 시작 부분에서 말했던 위화감, 그리고 고학년이 되면서도 유지되었던 그 위화감은 아무래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완벽한 대학생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주위의 대학생들과 나 자신에게서 오는 위화감. 사실 이 ‘완벽한 대학생 증후군’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완벽한 회사원 증후군’, ‘완벽한 성공 증후군’, ‘완벽한 자존감 증후군’, '완벽한 어른 증후군', ‘완벽한 삶 증후군’등 여러 모습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완벽함 증후군’은 사실 우리들의 방패다. 그런데 그 방패는 갑옷이 되어 우리조차 우리 스스로를 보지 못하게 가려버릴뿐더러 그 갑옷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쓴다. 언젠가 온라인 댓글에서 “나이가 들면서 밉보이지 않기 위해 차가운 표정으로 다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라는 댓글을 본 적이 있다. 그 댓글이 꽤나 오랫동안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었다. 아마 그 댓글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완벽한 타인’이란 영화의 리뷰에서 이런 글을 적은 적이 있다.

 

“비밀의 공개에 대한 선택권은 대부분 우리에게 있지만

우리가 우리의 비밀을 비밀로 남기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지 않을까”

 

보통의 사람들에게 비밀은 거창한 것이 아닐 때가 많다. 사실 우리가 순간순간 가장 많이 숨기는 비밀들은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못나다고 판단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더 나은 나의 모습을 갑옷처럼 둘러 남들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내가 위에서 말한 댓글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이유도 대학생활 동안 위화감을 느꼈던 이유도 그리고 저 댓글 속에 씁쓸함이 느껴지는 이유도 우리가 이미 나를 감추고 포장하는 행동들에 많이 지쳐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지금의 나의 인생 가치관 중 하나는 ‘진실된 사람이 되자’이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이게 성공한 인생에 대한 완전무결한 답은 아니지만 보다 더 나은 나의 인생의 옳은 지표가 되어줄 수 있음을 확신한다. 아직도 습관적으로 나 자신을 포장하고 방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나 자신을 잃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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