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터널 선샤인- 기억(MEMORY) [영화]

글 입력 2018.11.1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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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조엘(짐 캐리)의 회사 땡땡이와 어느새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영화의 시작 부분은 이게 무슨 전개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작스럽게 친해진 둘은 야밤에 얼음 위에 누워 별자리 이야기를 하며 데이트를 한다. 클레멘타인 집 앞에 도착한 조엘은 그녀를 기다리다 자신을 아는 듯한 남자와 마주친다. 그리곤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둘은 바닷가에서 처음 만나 연인이 됐는데 모든 이별이 그렇듯 서로에게 좋지 않은 기억만을 남긴 채 헤어진다.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장치가 이 영화를 전부 이끌어나간다. 바로 특정 인물과 관련된 물건을 들고 오면 기억을 지워주는 병원이 등장한다.

샘플을 채취하듯 물건을 하나씩 올려 기억을 채취한다. 모은 기억을 바탕으로 지도를 만들어 최근 기억부터 시작해 거꾸로 지워나간다. 기억의 끝 길까지 가면 성공. 기억이 깨끗이 삭제된다. 자신의 연인 클레멘타인이 병원을 통해 기억을 지운 사실을 안 조엘은 자신도 기억을 지우기로 한다. 그러나 조엘은 기억을 지우는 길을 잘 가다가 문득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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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다.

그는 만들어놓은 길에서 벗어나 필사적으로 도망간다. 그러나 기억은 무섭게 따라와 그를 지도 위에 다시 데려다 놓기를 반복한다. 여기서 굴하지 않고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데리고 엉뚱한 생각으로 길을 만들어 피해 다닌다.

둘은 기억의 끝에서 약속한다.

몬톡에서 만나

다음날 둘은 무의식적으로 몬톡으로 향한다. 기억을 지우고 만난 둘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한 채 다시 사랑에 빠진다. 처음부터 다시 사랑이 시작된다.



기억


기억이란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적이다. 기억을 지운다는 건 ‘나’라는 사람도 같이 지우는 행동이다. 기억을 지우길 원했지만 실제로 지운 기억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격을 받는다. 진실을 모른다는 불안함. 그래서 우리는 진실 된 기억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 그것이 자신을 힘들게 하더라도. 진실을 알아야만 새로운 기억을 쌓고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경험을 토대로 다음에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방법을 설계하니까. 안 좋은 기억도 삭히는 방법을 찾으면서 살아간다. 아프다고 다 지우면 진정한 내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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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시작과 끝이 없어 갑자기 떠오르다가도 사라진다. 그래서 기억은 공간의 한계가 없다. 2년 전으로 갔다가 몇 초 전으로도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한다.

이처럼 기억의 지도는 무섭도록 빠르게 조엘의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그에 반항하는 조엘은 열심히 뛰고 생각하며 벗어나려 한다. 무의식적으로 쌓이는 기억을 지도로 만든다는 건 어렵다. 허점이 많아 그게 유일한 해결책일 수도 있다.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구. 비록 조엘의 기억은 지워졌지만, 지도 속에서 클레멘타인을 지울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의 기억법


사람들은 일상적인 일보다 비일상적인 사건을 잘 기억한다. 그래서 어제 저녁으로 밥을 뭘 먹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쉽게 사라진다. 그러나 매일 똑같던 하루에 사랑이 나타나거나 여행을 가게 되면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다. 사랑은 일상적인 하루를 비일상으로 만든다. 시간이 흘러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드문드문 상황을 떠올리면 어느새 그 사건을 또렷이 기억하게 된다. 기억의 지도를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로 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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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서 기억이 갖는 역할은 애정의 척도를 파악할 수 있다. 사랑은 기억을 차곡차곡 쌓는 일. 누가 더 많이 기억하느냐가 사랑의 척도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우는 관심은 당연하기에 상대방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다. 연인과의 기억을 지운다는 건 사랑했던 모든 날을 지우는 것이다.

사랑은 기억해주는 것이다. 사소한 습관을 기억해서 배려하고, 생일을 기억하고,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주는 것.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의 우물이 깊을수록 다양한 감정이 쌓여있어 한 번에 지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을 기계의 도움을 받아 한 번에 지울 수 있다고 한들 정말 그게 소용이 있을까?

도미노 게임을 생각해보자. 하나하나 쌓는 건 오래 걸리고 힘들지만 한순간의 잘못으로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쌓아온 기억과 반비례로 지우는 게 한순간이면 그 사랑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랑의 기억은 나 스스로 정리해서 남겨두는 것이다. 사랑을 통해 떠나보내는 기억과 모아두는 기억이 존재한다. 각자의 방법으로 사랑의 기억을 자르고 잘라 상자에 보관한다.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한 쪽에 남겨둔다.

둘의 사랑이 영원히 행복하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기억의 중요성을 알고 소중히 쌓을 것이다.


[백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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