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실격, 졸렬하기 [도서]

'졸렬함'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을 때
글 입력 2018.11.1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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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웬 중2병인가 싶었다.

'-습니다.' 체와 진지한 내용,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아슬아슬한 심리 묘사는 잘 만들어졌지만 화자가 어린아이라는 점이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인간실격이라는 제목이 왜 붙은 지 알 것 같아. 주변 사람들에게 예쁨 받기 위한 어릿광대짓이 아니라 인간을 흉내 내는 추한 몸짓이다.


대충 비슷한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주변에 동화되어 집단에 소속하기를 위한 행동. 어릿광대짓보단 좀 더 본질적인 행동이다. 예쁨을 위해서라기보단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함이다.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어릿광대짓이 필요하지만 이런 행동이 좀 더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낙오되길 두려워한다. 본능이기 때문에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체득한다. 긍정적 증거, 부정적 증거를 통해서.

그렇지만 어린아이가 이미 그걸 습득한 후라면 조금 기괴하다. 어린아이는 한창 사회화되는 동물이건만, 이미 그걸 체감하며 인간이 되길 위해 안달 난 모습은, 인두겁을 뒤집어쓴 원숭이와도 같았다. 어떻게야 바나나를 얻는지 아는 길들여진 원숭이. 원숭이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문화 자체에 의문을 가지며 쾌활하고 재치 발랄한 어린아이를 연기한다. 사람이라면, 생물이라면 응당 있을, 공복을 느끼지 않고 식사시간을 두려워한다. 배고파서,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정상인처럼 보이기 위해 식사한다.

어린아이는 곧잘 인간을 흉내 내며 자라다가 자살시도하기까지 이른다. 인간 흉내를 그만두겠다는 거창한 이유 때문은 아니라, 그저 인생을 되는대로 살아왔던 것인지 그 후에도 인간을 흉내 내며 지낸다. 갖고 있는 건 그나마 잘생긴 얼굴로, 여자에 빌붙어서 연명한다. 찌질하고 찌질해서 의존하는 여자를 믿지도 않고, 남이 뭐라 해도 화내기보단 자책하는 것이 더 앞선다.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일까? 자존감이 땅을 뚫고 들어간다.

감정은 느끼고 있는데, 그 감정마저 온전하지 않다. 감정의 마무리는 자책이다. 온갖 것에 눈치를 보면서 자기 탓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는 감정을 가질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건가? 인간 실격이라는 말도 너무 공감이 갔다. 마치 인간이 아닌 게 인간 흉내 내려고, 내내 평생 흉내 내는데 급급하다가, 그걸 깨닫고 점차 흉내를 부시다가 자살하는 것 같다. 자기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아서 언제 들킬지 몰라 한평생 떨면서, 남이 던진 한마디에 지레 겁먹고 또 한마디 못하고 회피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혹시나 들킬지 몰라서.

그런데 이 또한 인간인 것 같아. 인간은 불완전의 존재기 때문에, 누구나 결핍, 결함, 부족 따위를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 이 사람은 사회성에 결함을 가졌다. 근데 그것도 자기가 생각한 결함이다. 몇몇과는 잘 지내다가 지 찌질함에 지레 놀라버려서, 사회랑 못 어울리는 것이다. 별 이상한 시답잖은 논리를 갖다 붙이고서, 꽤나 유식한 이유를 그럴듯한 당위를 들고나서.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회랑 꼭 어울려야 할 필요는 없다. 최소한의, 적당한 관계만 유지하는 게 정신, 육체 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한다. 주인공도 방랑하면서 꼭 어느 곳에 속해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겁먹고 개복치마냥 그러면서도 사람들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인간실격이라는 건, 곧 인간이라는 자격에 미달한다는 것.


으레 범죄자한테, 저런 사람도 아니라며 욕하지만 그런 도덕성 결여와는 궤를 달리한다. 좀 웃기다. 누가 인간이고 싶어서 인간인 것도 아닌데, 마음대로 인간에 자격을 부여하고 실격이라니. 결국 고상하고 지적인 척 씨부렸지만 자기가 만들어낸 서커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졸렬함에 끌리는 이유는, 온갖 찌질을 총망라해놓은 소설에서 무언가 하나쯤은 뼈아프게 공감돼서 아닐까? 필자도 그렇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써놓았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은 몹시 고됐다. 내 밑천이 까발리진 않을까? 나를 안 좋게 보지 않을까? 내 단점이 드러나면 어떻게 하지? 이런 불안은 상대방의 말을 일단은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게 됐다. 그냥 리액션이 몸에 밴 것이다. 작정하고 미친 말을 내뱉는 게 아니라면 일단 듣고 리액션하고 나서야 그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됐달까?

호구가 되기 탁월한 습관이다. 나를 꼬집거나 아프게 하거나 등등 제때제때 못하고 넘어갈 때가 일쑤였으며, 후에 생각나는 분하고 억울한 일들에 대해 떠오를 때는 당사자가 자리에 없을 때였다. 혼자 삭히거나 다른 사람에게 풀어야 했다. 또 그렇게 대화하다 보면 뒷담 까는 것처럼 돼버려서 그야말로 멋진 쓰레기가 돼버렸다. 사실 멋지다고 한 것도 포장이다.

그래서 난 사람을 만나고 난 뒤면 재충전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없으며,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건 여전히 광대에 경련이 일 만큼 스트레스다. 천천히 조금씩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환경에 나름 조금씩 적응하려고 하는 게 내가 나를 위해 실천하는 것들이다. 가끔씩 콱 잠적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요조가 자살하려고 했을 때가 생각난다. 적당히 졸렬해서 진짜 죽으려고 하면 아파서, 무서워서 못한다. 내가 잠적하지 못하며 과감해지지 못하는 이유같이.

이런 내가 나아진 이유는, '졸렬함'이라는 단어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난 졸렬한 거고 찌질할 수도 있고 잘 못할 수도 있다. 난 적당히 졸렬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라는, 자존감을 생각하라는 맥락과 비슷하다. 단어가 좋아서 계속 쓰다 보니 적당한 졸렬함이 뭔가 좋아졌고, 내만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비굴할 수도 있고 집에서 푹 숨어버릴 수도 있고, 그게 내 방식이다. 솔직히 다른 사람은 나한테 그렇게 관심 갖지 않으니까. 이대로 살 것이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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