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의 너] 카페와 시간과 그림과 실패와 진심

글 입력 2018.11.1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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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어때요?”

 

점주님이 걱정이 담긴 눈으로 물었다.

 

“좋아요.

오픈타임이고, 주휴수당 받을 수 있고.

두 가지가 목표였어요.”

 



   

#036. 너무 많은 걸 바랐나.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예상보다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딱 열한 번째 카페였다, 마지막 면접을 본 곳은. 아르바이트를 구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30여 군데에 이력서를 넣은 결과였다. 신기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총 세 군데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했었지만, 처음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부터 두 번 이상 면접을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공고가 떠서 지원한 곳에서 면접을 보면 그날 결정이 났다. 예삿일이었다.

 

그래도 조금의 변명을 덧붙이자면, 나만의 몇 가지 이유로 도중에 합격 연락을 받았던 두 곳을,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원하는 조건의 카페에선 날 원하지 않았고, 날 원하는 카페의 조건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037. 무엇이 이슈였나.


 

1. 시간: 무조건 오픈 타임

 

직장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었다. 내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그러다 들락거리게 된 아르바이트 관련 사이트에서, 오픈 타임은 오전 7시나 8시에 시작해 점심때 끝나는 자리가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 이 시간만 일하고 뒤에 ‘내 일’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오픈 타임 경쟁률이 세단다.

 

바로 일하자는 어느 카페를 끝내 고사했던 이유는, 근무 시간이 아홉 시부터 네시까지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왜 지원했느냐 물으면 카페 공고가 꼭 원하는 시간대만 나오지는 않기 때문이었다고 답할 수밖에. 그러니 스스로 확신 없이 지원하고, 돼도 고사하는 우스운 상황이 두 번 정도 있었다.

 

2. 거리: 내가 괜찮아도

 

다행히 카페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이력서를 내면 연락은 곧잘 왔다. 그런데 채용까진 이어지진 않았다. 카페 점주들의 걱정은 한결같았다. 오픈 타임인데 집이 멀다는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집 근처는 오피스상권이 아니라 그렇게 아침 일찍 오픈하는 카페는 드물었다. 저 아침잠이 없어서요. 예전에도 계속 서울에서 아르바이트했었는데요. 말해도 나보다 집이 가까운 지원자가 있으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럼, 아침 7시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교통 문제나, 늦잠을 자거나 하면 큰일이니까. 내가 점주여도 그럴 것 같았다.

 

한 번은 집에서 40분 떨어진 카페에서, 사장님이 놀라고 그런 사장님 반응에 나도 놀라는(?) 일이 있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보통 카페에서 10분 거리에 사는 사람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40분은 너무 오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한 시간 반 넘게 걸리는 학교를 사 년 내내, 대학원 시절까지 합치면 육 년 내내 다녔기에 40분은 문제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가까운 편에 속했다. 동상이몽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있던 그 테이블이 생각난다.

 

3. 주휴수당: 카페가 어려워서요.

 

프랜차이즈는 근무복을 입어야 해서 싫었다. 하지만, 기업에 속한 프랜차이즈는 정책 상 일괄적으로 주휴수당을 지급하는 반면, 개인 카페는 그렇지 않았다.

 

개인 카페의 경우, 면접을 볼 때 주휴수당에 관해 물으면 카페 사정이 그렇게 좋지 않다거나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자리를 잡은 후에 주겠다고 말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뒤돌아 나오며 변명이지, 그렇게 생각했다. 설령 그 ‘사정’이란 게 진짜여도 아르바이트 입장에서 용납하면 안 되는 사정이라 생각했다. 한 번은 주휴수당을 주지 ‘못한다는’ 카페에서 연락이 왔지만, 끝내 고사하고 말았다. 돈도 돈이지만 정당한 처우를 받지 못하는 곳에 마음을 열지 않기로 한 스스로와의 약속이 더욱 굳어져서였다.


*

 

결국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곳은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곳이지만 한 번에 가는 곳, 오전 8시부터 2시까지, 주휴수당을 받는 곳이 되었다. 그러니까, 아쉽지만 프랜차이즈로. 그래서 근무복을 입는 곳으로, 다행히 모자는 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038. 생각해보면, 모두 좋은 카페와 좋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20대 초반, 카리스마 있고 마음 넓은 매니저 언니를 만나 카페 일을 처음 배웠다. 매니저 언니는 크게 화내거나 다그치는 법이 없었다. 언제는 샌드위치에 치즈를 포장한 비닐까지 넣은 적이 있었다. 손이 둔했는지, 미처 다 제거하지 못한 것이었다. 매니저 언니는 내게, 손님께 죄송하다고 잘 사과하고 오란 말만 했다. 처음엔 다 그래, 그런 반응이었다. 제주도 도민이었던 그 언니는, 제주도가 싫어 서울까지 왔다고, 그렇게 말했다. 종종 남자친구 얘기도 하고, 남동생이 찾아와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고 가기도 했었다. 그때는 마감이었다. 바쁘지 않은 넓은 매장에 서로 멍하니 어둑해지는 창밖을 보기도 했었다. 따뜻하고 의지할 수 있는 강한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년에 나는 그때의 언니 나이가 된다.

 

핸드드립을 배우고 싶어 갔던 카페에서는, 직접 수입한 원두를 로스팅하는 고소한 짠 내가 실내에 가득했었다. 이것저것 손이 가는 일이 많았다. 레몬청을 직접 담그고, 로스팅하기 전 원두를 고르고, 더치커피 관리를 했다. 핸드드립 주전자가 무거워 손을 떠는 내게 사장님은 가벼운 새 주전자를 사주셨다. 원두가 새로 오면, 직원들과 함께 원두 향과 맛을 테스트했다. 이때 조금이나마 각 산지별 원두의 특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딸기향, 살구향, 블루베리향, 초콜릿향, 흙 향 등 커피에서 그렇게 다양한 맛이 한꺼번에 나온다는 기이한 사실이 놀라웠다. 꼭 마시지 않아도 늘 커피 향에 취해 있었다.


마지막 카페에서는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수진이, 윤정이, 효주. 귀여운 아이들, 그러나 일을 나보다 훨씬 잘해서 정말 정말로 배울 게 많았던 야무진 아이들.


그리고 지금은, 각자의 꿈을 좇아가는 90년대생들 네 명이 고군분투 하고 있다.

   



#039. 스펙이 뭘까.




마지막 면접을 본 카페에서 사장님이 물었다.

 

“요새 취업 어려워요?

이력서 보고 궁금했어요.

이 정도 스펙에 왜 아르바이트를 구하실까.”


“스펙이요?”



잠시 멍해졌다. 아, 그런 걸 말하나 보다. ‘인서울’권 대학이지만 대학원 졸업도 하지 못한 수료 기록. 아니면 오래 다니지도 못했고 다니는 내내 괴로웠던 두 번의 직장 이력.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안다. 어지러운 이력에 드러나지 않은 나의 낱낱하고 구질구질한 모습들을. 그 말을 재빨리 넘기며,

 


“그림을 그리기로 했거든요. 시간이 필요해서요.”

 


그런데 이 말을 내뱉자마자 진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최소로 일하고 그냥 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040. 하루가 그렇게 흘러간다.



오전에는 아르바이트를하고, 오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밤에는 드라마를 본다. 하나도 제대로 하는 건 없는 것 같다. 남들이 이해 못 할 나의 가슴 벅찬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그런 무용한 시간에 무용한 문장을 휘갈길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


가끔, 다 적어 내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문장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그 문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내 손은 더 빨라지고, 마침표를 찍을 수 없고, 문장은 논리를 잃어버리고, 뜻을 잃는다. 그러나 이런 시간이 절실했다는 걸 나는 안다. 이런 나를 누군가에게 끝내 설득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 절대 이 시간을 앞으로 '쉽게' 포기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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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계속 할 것. 진심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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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워크샵이 끝난 후,

 

“I don’t know how to develop my works.”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Just continue, Sincer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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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 tried, Ever failed.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Samuel Beckett

할 때마다 실패한다.
그래도 또 한다.
실패를 또 한다.
그러나 좀 더 좋은 실패를 한다.


워크샵 마지막 날, 작가님은 사무엘 베케트의 명언을 전했다. 내가 전에 물었던 질문에 답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했다. 계속해서 좀 더 좋은 실패를 하라. 그 실패가 가리키는 곳이 어딘지는, 실패를 해야 알게 될 테니. 계속, 매일 실패 중이다. 명치가 아릴 정도로 행복하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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