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통의 장애물은 변명이다 [공연]

글 입력 2018.11.0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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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공간 서로에 단막극 ‘말없이’를 관람하러 방문했다. 입장을 하고나서 별도로 시작 안내나 암전 없이 한 여성이 등장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열심히 테이블을 닦았다. 이같은 시작은 내가 연극을 보고있는 게 아니라 실제 상황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올만큼 자연스러웠다. 60분의 짧은 시간동안 생략이나 편집 없이 한 공간에서 대화가 이루어진다. 단막극이다 보니 따로 장 구분이 없어서겠지만, 실제 대화의 시작과 끝 자체가 하나의 공연이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두드러졌다.

주인공 아이의 입학이 다른 학생의 부정입학으로 없던 일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사과와 해명을 하기 위해 등장한 교감의 미소는 불편한 호의를 잔뜩 품고있다. 자신의 직책을 희생하고 싶지 않은 그녀는 타인이 희생하기를 '부탁하는 척' 하며 강요한다. 미리 준비해 온 서류와 돈이 든 비타민 음료는 이미 정해져 있었던 목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교감은 '지시'나 '조작' 등의 자극적이고 자신에게 불리한 단어를 교묘히 바꿔가면서 끝까지 자기 자신을 비겁하게 변호한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필요하다'는 교감의 말과 교감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희생당해야 하는 한 명의 아이는 매우 모순된 그녀의 태도를 나타낸다. 점수를 조작해 부정입학을 한 학생에 밀려 학교를 가지 못하게 된 아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목소리가 묵인되고 자발적 입학 포기 각서에 사인을 하는 주체도 아이가 아닌 어머니이다.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존재를 더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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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소통이란 것은 언어적인 것을 동반해야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60분동안 대화는 계속되지만 도무지 소통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말없이도 아이와 소통해 온 주인공에게 모순되고 교묘한 말만 쏟아내는 교감은 오히려 더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주인공의 동생으로 나오는 인물은 소통의 답답함이 고조되었을 때 등장하여 교감에게 조아리거나 자신을 낮춤 없이 예의주시하며 직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동생은 극의 후반부에서 짧게 등장하지만 동생의 태도와 질문은 극의 흐름에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동생이 던지는 질문에 교감이 당황하거나 쩔쩔매는 것을 보며 소통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모순을 가진 사람에게 이렇게 날카로운 질문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얼마나 잘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극을 보면서, 프리뷰에서도 썼던 '어른이 되면'이라는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 혜정,혜영은 혜정의 활동보조서비스 심사를 받기 위해 공단 직원과 면담을 하는데 공단 직원이 정작 서비스를 받게 될 당사자의 필요와 욕구를 고려하지 않은 사적이고 매뉴얼적인 질문들만 하는 모습이다. 혜정은 과연 이 심사를 통해 필요에 부합하는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을까? 결국은 이 시스템에 돌아서서 다른 선택을 해야할 지도 모른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후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는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서'가 직접 나서서 활동보조 자격을 얻어서 공식적인 혜정 씨의 활동보조인이 되었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마땅히 필요한 제도나 환경을 제대로 조성해주지 않는 부당한 시스템의 벽 앞에 결국엔 체념하듯 시스템을 포기하게 되는 현상을 '말없이'라는 극에서도 목격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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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의 특성상 막이 하나이고 하나의 에피소드와 상황, 두 세명 정도의 인물에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단막극을 보면서 생각보다 짧은 극도 충분히 많은 메세지를 담고 강렬하다는 것을 느꼈다. 좀 더 짧은 길이로 직접 극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말없이'는 애초에 알고 있었던 시놉시스와는 방향이 조금 달라진 모양이다. 현장에서 받은 배포지에는 처음 의도했던 이야기에서 현재의 시놉으로 바뀌게 된 계기와 이를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설명한 연출가의 글이 있었다.


"극장에 들어와서 마지막 리허설을 하다가 비로소 내가 '변명'을 일종의 소통에서 '장애'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애'가 사람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듯, 사태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이해를 구하지 않는 '변명'과 합리화는 사람 사이의 소통을 차단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극 중 교감처럼 변명과 자기 합리화를 하는 사람이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조직(문화)'란 그 자체로 '장애'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최은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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