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꿈꾸던 왕이 있었다! 뮤지컬 1446 [공연예술]

글 입력 2018.11.03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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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시 프필.jpg
 


세종 28년, 스물 여덟자에 조선을 걸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세종 대왕이 뮤지컬로 돌아왔다. 역사 속 남겨진 대왕이 아니라, 왕좌에 오른 한 사람의 인간을 그리는 뮤지컬 <1446>을 만나보았다.


  


연출



뮤지컬 <1446>은 연출이 특히 눈에 띈다. 첫 장면에서부터 쏟아지는 강렬한 조명, 장막과 2층으로 이루어진 무대 구성은 좁고 깊은 극장 용의 무대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개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장지문을 활용한 연출이 드러나는 부분인데, 이 장지문 뒤에서 인물들이 잽싸게 움직이며 안무를 보여주기도 하고, 등장과 퇴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빠르게 섞였다가 흩어지고 겹쳐지는 장지문들 사이로 오고 가는 배우들의 춤, 그 사이로 번쩍이는 조명은 극의 시작부터 눈길을 빼앗는다. 이밖에도 아름다운 의상과 편전을 통째로 들여온 무대 세트, 무대 위 거대하고 화려한 소품 등은 눈을 즐겁게 한다.
 

공연예술 분야는 제작사마다도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뮤지컬 <1446>을 올린 제작사 HJ 컬쳐는 앙상블이 뛰어나기로 유명한데, 이번 공연에서도 역시나 기대한 그 이상이었다. 앙상블 배우들의 칼 같은 군무와, 춤을 추느라 바쁜 중에도 배역에 충실한 연기는 주연 배우들을 뛰어넘을 정도로 훌륭했다. 장면에 따라 성별을 가리지 않고 남녀배우들이 섞여 있다는 점 역시 소소하게 마음에 들었다.


보통 앙상블 배우는 무대에 직접 나서지 않고 군무나 합창을 통해 주연 배우들과 어우러지는 데 반해 간혹 작은 단역을 맡기도 하는데, 뮤지컬 <1446>에서는 앙상블 배우 한 명이 단독으로 매우 중요한 장면에 출연한다. 바로 세종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한글을 창제하는 장면이다. 한글 창제의 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은 집현전 학자들부터 세종의 직계 가족들까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실록을 따르자면 훈민정음은 세종이 단독으로 창제했으며 집현전의 선구적인 학자들이 배포를 도왔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한다. 뮤지컬 <1446>도 이러한 관점을 따르기 때문에 집현전 학자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말년의 세종이 혼자 앉아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한글을 창제한다. 그리고 그 곁에서 흰옷을 입은 여자 앙상블 배우가 세종의 움직임을 따라 날 듯이 춤을 춘다. 어떤 인물로서의 배역이 아니기에 해석은 감상에 따라 다르다. 백성을 향한 군주로서의 내리사랑 같기도 하고, 한 사람의 천재성이 인격화된 것 같기도 하며, 또는 세종을 통해 내려와 조선을 굽어살피는 여신이나, 조선의 산과 들의 요정 같기도 하다. 어떤 관점에 따라 보더라도,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서 바닥에 놓인 밝은 등 사이를 자유롭게 노니며 세종을 따라 춤추는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된다.


 


인물 : 소헌왕후


  

킴소헌 플필.jpg
 


극 중에서는 세종의 아버지 태종이나 새로이 추가된 가상의 인물 전해운 등, 세종과 관련되어 오피니언에서 다룰만한 관계성을 가진 인물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부끄럽지만, 뮤지컬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인물이 있다. 세종의 비 소헌왕후다. 역사 속에서 ‘착한 여성’들의 삶은 잘 남겨져 있지 않기도 하거니와 스스로도 관심이 없어 몰랐지만, 소헌왕후는 조선의 500년 역사상 내명부를 가장 잘 이끌었다는 평을 받으며, 태종 왈 ‘덕이 나뭇가지처럼 늘어져 아래로 향하는’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그는 세워진 지 50년밖에 되지 않는 나라의 왕비로 올라 재위 초 멸문지화를 입고, 폐비의 위기를 맞음에도 불구하고 내명부를 훌륭하게 이끌어 왕실의 안정을 다짐으로써 역사가들 사이에서 대왕으로서의 세종이 있게 한 인물로 회자된다. 


뮤지컬 <1446> 속 소헌왕후는 세종의 대군, 세자 시절부터 보위에 오른 그의 말년까지, 초반에만 나오거나 갑자기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함께 무대 위에 존재하며 세종과 함께 성장한다. 대군 부인에서 세자빈으로, 중전에 오른 극 초반의 소헌왕후는 아직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세종과의 풋풋한 로맨스를 보여준다. 그러나 외척을 견제하려는 태종의 계획에 의해 아버지 심온이 사사되고 일가족이 관노로 전락하는 비극이 몰아치면서 그는 구중궁궐 속 왕실의 일원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 역사 속 소헌왕후는 자손을 많이 생산하고 성품이 훌륭해 왕실을 안정시킨 공을 인정받아 자신의 능력으로 폐비를 면하는 데 비해, 무대 위 소헌왕후는 세종이 태종을 제압하고 왕으로서 서기 위한 카드, 역린으로만 언급된 점, 이후에도 그의 등장은 세종과의 관계 위주로 이루어진다는 점 등은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심씨 가문이 몰락한 이후 소헌왕후와 세종의 관계 역시 후회와 원망으로 비틀거리지만, 소헌왕후는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뜻을 따르며 이따금 세종이 흔들릴 때마다 그를 붙잡고 이끌어준다. 아무래도 세종의 비 그 이상으로는 그려지지 못했으니, 차라리 이렇게 다룰 것이라면 아예 소헌왕후를 다루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지만, 글쎄, 개인적으로는 뮤지컬 속 소헌왕후가 단순히 세종의 옆에 기대는 역할을 넘어서, 스스로의 비극을 극복하고 한 걸음 나아가 왕을 이끌어줄 수도 있는 인물로 거듭난다는 점이 좋았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의 이러한 덕성이 원래부터 타고난, ‘도움이 되는’ 여성 캐릭터의 조연으로서의 성질이 아니라, 스스로 아픔을 씹어 삼키며 이뤄낸 성장의 결과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소헌왕후가 그저 비극에 좌절하거나 혹은 처음부터 끝까지 세종을 도와주는 인물로만 남았다면 캐릭터에 대한 인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소헌왕후의 분량이 많거나 중요한 역할로 활용된 것도 아니거니와 그의 영향력이 일부는 역사보다도 축소된 면이 없잖아 있기는 하지만, 대왕 세종과 인간 이도의 기나긴 일대기 속에서 다뤄야 할 업적과 인물, 갈등이 많은 중에도 소헌왕후의 성장까지 다룬 점은 주목할 만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역사물이다 보니 배역으로서의 여성의 한계를 감안하고 극장에 들어선 나는 사실 조금 놀라기도 했다.


 


인물 : 이도


 

얼마 되지 않는 소헌왕후의 분량이 적지만은 않게 남았던 것은 소헌왕후 외의 인물들 역시 비슷한 분량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재위 기간 32년, 다른 왕들과 비교했을 때 결코 짧지 않은 세종대왕의 일대기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많은 인물이 있다. 배필 소헌왕후를 비롯해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아버지 태종, 양녕대군, 집현전 학자들과 장영실, 김종서 장군, 그리고 뮤지컬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가상의 인물 전해운 등. 그러나 뮤지컬 속에서는 그들 하나 하나를 특별히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이들은 세종을 스쳐 지나가며 그를 성장시킨다. 실록에 남은 업적에 치중하다 보면 무대가 풀어낼 이야기는 많지만, 지루하고 진부하며 자칫 본질을 흐릴 수도 있다. 뮤지컬 <1446>은 적절한 가지치기를 통해 오로지 세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인간 이도가 어떻게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정치를 펼치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대왕이 아닌 인간을 다루겠다는 제작 의도에 충실해 각 인물의 비중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당하게 배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같은 의도는 극의 후반부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젊은 시절의 세종이 패기롭게 그의 신념을 펼쳤다면 노년의 세종은 눈이 멀고 종기가 난 약한 몸에, 자신을 반대했던 인물들의 환상에 시달리며 자신의 길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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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정치는 아버지 태종의 정치와는 상반된다. 태종이 건국 초기의 불안정한 왕권을 강건하게 하기 위해 숙청을 서슴지 않았다면 세종은 죽이는 왕이 아니라 살리는 왕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세종이 마냥 성스러운 인물이라 그랬을까. 극 중 충녕대군은 양녕과의 대화에서 아버지를 규탄하는 양녕에게 그는 왕의 길을 위해서는 눈 감아야 할 일이 있다고 했고, 아버지 태종에게는 피할 수 없는 칼이라면 피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자신을 흔드는 이들을 벨 수 있는 왕의 칼이 있다는 것을 세종은 언제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신념이 굳건해도, 계속해서 흔들리면서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을까. 말년에 자신의 정치를 되돌아보면서, 태종의 환상에게 실은 그들 모두 싹 다 죽여버리고 싶었다며 나 역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어쩔 수 없지 않냐 울부짖는 세종의 모습은 오히려 그들마저도 살리기 위해 성자가 아닌 인간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지를 와닿게 했다.

 

뮤지컬 <1446> 속 세종은 마지막까지도 참으로 인간적이다. 노년의 소헌왕후와 함께 세종은 맹자의 글 중 한 구절을 외며 천천히 죽음이라는 잠에 빠져든다.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생전, 사후 모두,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칭송받는 군주였음에도 그의 끝은 오직 반려 소헌왕후만이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였던 그의 마지막이 이토록 잔잔하고 소박하다니.‘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왕은 가장 가볍다.’  그 어떤 대단히 화려한 마지막보다도, 세종이 한평생 외며 가슴에 새기던 맹자의 말로 갈무리되는 죽음은 무대 위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펼쳐졌던 세종의 일생을 가장 감명 깊게 전달해준다.

 



끝맺으며, 그대의 길을 따르리


 

사실 이런 류의, 역사적 위인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작품은 어딘가 교과서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그리고 (이제는 별로 가슴 뛰는 단어가 아닌) 애국을 억지로 강요하는 듯한 감성, 소위 ‘국뽕’이 넘친다는 생각에 별로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이번 공연 역시 사실 관람할 의지는 없었는데, 이런 생각은 1446의 플래시몹 영상을 본 뒤로 뒤집히고 말았다. 영상 속 노래는 극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넘버 ‘그대의 길을 따르리’이다. 전체적인 가사도 아름답지만, 이 넘버의 절정은 우리 모두 익히 기억하고 있는, '나랏말싸미...' 로 시작하는 훈민정음의 서문이 등장하는 후반 부분이다.



"나랏말ᄊᆞ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를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홇빼이셔도 마참내 제뜻을 능히 펴지 못할 노미 하니다. 내 이를 어엿비 녀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맹가노니, 사람마다 수비 니겨 날로 쓰매 편안케 하고저 할 따람이니라."


학창시절, 한 번쯤은 시험에 나왔을 훈민정음 서문. 어릴 적 별 의미 없이 외우기만 하느라 고생했던 이 문장이, 극 내내 쌓아온 감동을 가장 마지막에 터뜨리는 한 방이 되어준다. 이건 뮤지컬 <스모크>의 넘버 ‘날개’를 처음 들었을 때 받았던 감동과도 비슷하다. ‘날개’는 시인 이상이 좌절과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다시 한번 날기를 희망하는 내용의 넘버로, 이상의 단편 소설 <날개>의 마지막 구절을 가사로 인용했다. 날자, 날자, 날아보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때로는, 기억 속에 딱히 큰 비중 없이 자리하던 어딘가 익숙한 문장을 새롭게 재발견했을 때 몰려오는 감정이 완전히 새로운 문장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애국심’에 관해서는 오래 전부터 회의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정규 교육 과정에서, 또 일상에서 은연 중에 언제나 강조되어 오던 개념이라 그런 걸까. 이런 종류의 공격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인으로서의 새삼스러운, 가슴 한 켠이 찡하고 벅차오르는 감동을 받게 된다. 뮤지컬 <스모크>에 관해서 쓴 첫 번째 오피니언에서도 쓴 말이지만, 마지막 하이라이트 넘버가 주는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관람을 권한다. 어쩌면 만 원짜리 지폐를 전보다 조심스럽게 다루게 될지도.



[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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