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끝없이 표류하는 우리들

의사와는 관계없이 어딘가로 흘러가는 우리, 그안에서 만난 것들
글 입력 2018.10.3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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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을 입학하고 한창 적응하느라 바쁜 시기, 캠퍼스는 너무 넓어 강의실은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시험은 또 어떻게 치러지는지, 또 난생처음 들어온 기숙사는 왜 이리 낯설기만 한지, 아무튼 모든 것에 적응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던 새내기 시절이었다. 수많은 교양수업 중 나는 이유 모를 끌림으로 글쓰기 수업을 선택하였다. 그 수업은 글쓰기가 주된 활동이었다. 글감은 매주 바뀌었고 한 번은 ‘기쁨’이라는 소재로 글을 써야 했다. 기쁨이라는 단어를 듣고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 무엇을 할 때 기쁨을 느끼는가?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것에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가장 근본적(?) 기본적(?) 으로 생각을 해보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였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을 적으라 하면 할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들이 먼저 생각난다. 한 끼도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자고 먹는 것에 돈을 아끼고 싶지 않지만 가난한 대학생인지라 항상 기숙사 밥을 먹고 살았다. 기숙사 밥이 부실한 건 아니었으나 나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도 계속해서 먹으면 적응이 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래서 밤에 야식을 자주 시켜 먹기도 했고 편의점 컵라면과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친구들도 그렇다. 나는 눈치를 보면서 살았다. 누구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 지나치게 조심하고 조심했다. 기숙사 의자에 앉아서는 수많은 생각들로 날을 새우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야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마냥 어둡지만은 않았지만 겉으로나 심적으로나 뭔가 텅 비어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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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친구를 만나고 난 뒤에는 할머니 댁에 가서 하루를 보낼 예정이었다. 친구와 신나게 밤늦게까지 놀고 할머니 댁을 찾았다. 할머니는 ‘이제까지 밥도 안 먹고 뭐했냐고’ 하며 나에게 얼른 손을 씻으라고 하고 늦은 저녁밥을 차려주셨다. 작은 식탁에 빼곡히 놓인 반찬들, 그 가운덴 된장찌개와 고기가 있었다. 나는 배가 고파 허겁지겁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 순간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따뜻한 찌개와 간장 양념을 한 고기구이. 한국인의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는 된장찌개를 한입 먹자마자 몸이 사르르 녹았다. 폭신한 두부와 아삭한 호박, 싱싱한 채소들, 짭조름한 양념에 구운 돼지고기. 흰쌀밥에 올려 먹으면 한 그릇 뚝딱이었다. 뭔가 몸이 상쾌해지는 기분이 마구 들었다. 할머니께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몸이 절로 들썩였다. 뭔가 제대로 된 밥을 먹는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인스턴트식품들로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할머니의 음식이 채우는 것 같았다. 행복했던 식사를 마치고 그제서야 배가 부른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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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 너무 감사했다. 물론 따듯한 집 밥도 그렇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손녀딸이 오기를 기다렸을 할머니의 모습과 평소엔 잘 먹지도 않는 고기를 나를 위해 사와서 양념했을 생각을 하니 또 뭉클했다. 식사를 하고 있으면 행여나 국이 식지는 않았을까 계속해서 냄비를 만져보는 할머니셨다. 밥 먹다가 목이 막힐까 나에게 항상 물을 떠다주는 할머니셨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은 맛도 그렇지만 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밥 한 끼로 몸과 마음이 모두 충전되는 듯하는 기분을 느꼈다. 이 글을 빌려 다시 한 번 할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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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았다. 나는 기분이 우울하거나 나쁠 때 영화를 주로 찾아본다. 그날도 역시 기분이 최고로 다운되어있을 때었다. 도망치듯이 영화를 다운받고 스크린 앞에 앉았다. 2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이전의 감정들을 다 잊고 영화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영화가 끝나면 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무인도에 무슨 영화 한 편을 가져갈까 고민하는 동시에 바로 이 작품이 떠올랐다. 영화의 줄거리를 잠깐 이야기하자면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이 이민을 떠나고자 동물들과 함께 배에 오른다. 배로 이동을 하던 중에 바다에서 큰 폭풍을 마주하고 배는 침몰하게 된다.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오른 파이는 먼 바다 한가운데에서 배가 침몰하는 것을 지켜본다. 큰 폭풍이 지나간 구명보트에는 파이와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가 있다. 오랫동안 굶주린 하이에나는 동물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결국엔 파이와 호랑이, 리차드 파커 만 남게 된다. 그들은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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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무인도에 혼자 떨어졌을 때 상황과 비슷하다. 물론 파이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처음엔 그 작은 구명보트 안에서 호랑이와 함께 구조를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차라리 그냥 바다에 빠져 죽는 편이 났다는 생각까지 했다. 식량은 언제가 떨어질 것이고 곧 파이는 호랑이의 먹잇감이 될 거라는 짐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반에 하이에나가 생존을 위해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공격했듯이 그 보트 안에서도 먹이 사슬은 분명했다. 결국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파이의 죽음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을 것 같다.


호랑이와의 공생은 마냥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바다에 표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파이와 파커는 서로 의지하는 존재로 변하게 된다. 파이는 리차드 파커가 있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외롭지 않게 된 것이다. 가족을 모두 잃고 아무도 없는 바다에 기약 없이 갇혀있던 파이의 절망적이었던 상황은 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서도 희망의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배는 흐르고 흘러 육지에 닿게 된다.


'리차드 파커가 없었으면 난 지금쯤 죽었을 것이다.

나는 녀석을 보며 긴장했고 녀석을 돌보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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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는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섬이다. 사람이 없기에 가공된 식품도 없고 음식을 살 수 있는 작은 슈퍼도 없다. 아무리 소리쳐도 내 목소리만 울리는 그곳에서 나는 깊은 좌절감을 느낄 것 같다. 그러던 나에게 이 영화가 함께 한다면 나는 작은 희망이라도 품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영화를 무인도로 가져가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영화의 결말이 파이의 죽음이 아닌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파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찾아온 폭풍우가 배를 망가뜨려도 높은 파도가 식량을 다 떠내려가게 해도 그는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는다. 죽을 힘을 다해 살려고 하는 파이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는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즐거움을 찾아 살아갔다. 그런 그의 작은 마음가짐은 무인도에 어느 날 툭 떨어진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여러모로 유익한 영화이다. 바다와 무인도에서 살아본 파이의 경험이 담긴 이 영화에서는 생존법도 알아갈 수 있다. 빗물을 받아 마시거나 물고기를 잡아먹는다던가 동물과 소통하는 방법,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기록하는 방법 등이 그렇다. 무인도에서 살아갈 나에게 아주 도움이 되는 영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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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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