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인정하자, 모든 게 나였다

글 입력 2018.10.2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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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사람과 하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하나를 가르쳐줘도
꼭 부딪혀봐야 아는 사람이다.


나는 지는 것을 싫어하고 잘하고자 하는 욕심도 많다. 자신이 시작한 일에 책임을 느끼고 끝맺고 싶어 한다. 내가 꾸미는 것은 귀찮지만 남들이 꾸민 것을 보는 것은 좋다. 아닌 척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신경도 엄청 쓰고 지인들을 챙기는 것을 좋아한다.

질투도 하고 계산적인 면도 있고 냉정하면서도 무심하다. 감정의 고삐를 놓치거나 자신을 방어하는 데만 급급할 때도 있다. 특출한 재능도 없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른다.

이 모든 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나는 완벽해지고 싶었고 특별한 삶을 살고 싶었으니까. 저 평범한 나는 내가 아니었다. 뜯어고치고 부정할 대상이자 극복해야 하는 단점들이었다. 경직된 사고는 삶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행동의 시작은 끝과 이어져야 하고 과정은 완벽해야 했다. 그렇지 못한 현실의 일들, 예를 들어 회사일이나 학교 팀플 등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위대함을 꿈꾸는 나였기에 행복하지 못한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 같았다. 타인의 잘못도,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방구석에 박혀있는 것도 모두 내 잘못처럼 여겨졌다. 모든 화살이 나에게 꽂히니 당연히 쉽게 피로해지고 우울해졌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정말로, 나의 가장 큰 적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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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우울


나는 살아가는 힘을 잃었다. 싸우고 쟁취하고 화해하고 도전하고 쉬는 일련의 흐름과 과정을 주도할 힘이 없었다. 대학 커리큘럼이라는 외부 자극에 의지하여 학기 마다 반짝 힘을 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힘을 낸 만큼 정확히 무너졌다. 방학만 되면 쉬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항상 힘들었다. “괜찮다”라는 말은 속임수였다.

나는 삶을 사랑하고 싶었는데 사랑하지 못해서 슬펐다.

깨달았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병들어 있었다. 자꾸만 삶의 의미를 묻게 되고 한 발자국 나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럼에도 힘들어하면서도 살아온 자신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결정

10월 8일, 최초로 모두가 뜯어말릴만하며 계획에도 없었던 일을 결정했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중요하다고 하는 4학년 막학기에 중간고사를 한 주 남기고 휴학을 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좋아졌다. 지난 몇 달의 괴로움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힘을 회복하고 있다.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정도로 괜찮아지고 되돌아보면 그동안 내가 가장 괴로웠던 지점은 ‘내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면 세상을 원망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못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었었다. 나는 변할 준비가 되어 있고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인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화가 나고 억울했다. 나는 나로서 살고 싶었다.

오랫동안 나의 세상이 말하는 “이 정도는 괜찮아”에 메여 살았다. 기준을 안이 아니라 밖에 두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어리석다고 말해도, 실패할 거라 말해도 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나에게 솔직해지는 연습을 하다보면 혹여 나중에  남들 사는 대로 살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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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 저는 반대로 갈 건데요.


내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질투도 원망도 없다. 나는 나에게 묻고 어떻게 나를 책임질까 즐겁게 궁리한다. 이것이 왜 재밌는지 의아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평생에 걸쳐 눌려왔던 만큼 딱 그만큼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3주 정도 된 지금 스스로 중간점검을 해본 결과, 흔적이 필요하다는 것을 슬슬 느끼고 있다. 지금이 과거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줄 흔적 말이다. 말로만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10월부터 행복한 연습을 하고 있으니 앞으론 이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부를, 일을, 운동을 하며 넓은 세상을 만나려 한다.

나의 삶을 살아보며, 행복을 과정 속에서 누린다는 말의 참의미를 이제는 안다.



자기인정

거짓은 달콤하고 기만은 다정하다. 나는 여기에 용기를 받아 ‘나’를 그림자로 가려버렸다. 표면 위에 나타나는 것은 남의 삶과 남의 말이었다. 내 중심이 연약하니 타인의 것에 기를 펴지 못했다. 말하고 나서 아차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쉽게 말하는 것을 그렇게 경계했으면서 감정과 피로를 이기지 못했다. 타인의 생각을 빌린 가벼운 말들을 내뱉었다.

내가 아닌 나를 보여주며 작은 실수에도 진짜 내가 보일까봐 두려워하고 경계했다. 사실 인간인 이상 흠이 없을 수 있는데 윤리적 결벽주의가 뇌리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말, 참으로 옳은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어려운 말이다. 그러니까 잘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자꾸 실수하고 친구가 실수하고 타인이 실수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결정 이후 조금씩 ‘나’를 되찾아가며 싫어했던 모습들조차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내가 아니라고 말했을 때 그것들은 숨어 있다가 가장 약했던 나를 덮쳤다. 내가 맞다고 말했을 때 그것들은 잠잠히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한다면 같이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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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
내 안에 있는 녀석들, 몇 명 더 있다. 분명 당신에게도.


나에게 저런 모습들이 있다고 해서 내가 그런 행동을 할 것도 아니다. 나도, 누구도 세상 속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 한 가지 면만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말 속에 담긴 폭력을 안다. 절대적인 것은 우리 현실 속에 없다. 그러기를 바라는 소망만 있을 뿐이다.

아예 다 내려놓고 보니까, 내가 나라서 좋다. 모든 시간을 보내왔고 앞으로도 보내게 될 내가  더 잘나거나 더 못난 그 누구도 아닌 나라서 참 좋다.



아트인사이트

변화는 순식간이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신실한 친구들, 성실히 쌓아왔던 지식과 경험들, 그리고 글쓰기. 나에게 글쓰기는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힘든 일이 있을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 휴대폰 메모장에 글을 많이 썼다. 말로는 하기 어려웠던 솔직한 감정들을 두서없이 적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쁜 일보다 힘든 일만 더 생겨났고, 나는 줄글 노트를 하나 사서 우울한 마음을 쏟아내었다. 글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생각정리도 되고 감정도 조금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할 일 목록을 휴대폰, 노트, 다이어리 등 여기저기에 메모하고 내 관심사와 관련된  학술적 글을 많이 썼다.

여기에 더해 지난 7월, 아트인사이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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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글쓰기는 나의 글쓰기 생에서 새로운 여정이었다. 일기도 아니고, 우울해서 쓰는 것도 아니고, 나만 보려고 쓰는 것도 아니다. 매 번 주제를 정해야 하고 그것에 맞추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는 글을 써야 했다.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몇 시간동안 자료조사를 하고 편집하고 읽어보고 수정했다. 업로드를 마치기까지의 전 과정이 매번 새롭게 도전이었다.

“나와 세상의 만남을 글로 풀어내다”

글감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면서 역으로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머릿속에 조각들로 남아있던 생각들이 모자이크로 모여 하나의 글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사물과 현상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쓰면서도 여러 번 생각이 달라졌지만 그것이 현재의 나라는 것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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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감들, 이외에도 많다.


에디터 지원으로 처음 썼던 오피니언은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주제였다. 에디팅이 익숙하지 않아서 지금 읽어보면 많이 딱딱하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만화방부터 자라나며 만났던 여러 책방들을 소재로 단 4시간 만에 풀어낸 글이다. 최근에는 나의 책 취향을 공유하며 서재를 열어 보이기도 했다.

도서 ‘관계의 물리학’에서는 지난 학기에 힘들었던 마음을 위로 받았던 것과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중요한 원인을 풀어내었다. 결국 나를 괴롭게 한 것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내가 좋아하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여러 서적을 읽고 생각한 것들을 기반으로 글도 썼다. ‘포스트 모던 한국 관찰기’라는 거창한 제목이었지만 내용은 우리 주위에서, 뉴스에서 계속해서 보여지는 것일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이소라와 심규선을 통해 내가 얻었던 위로를 사람들과 함께 나눴다. 이소라는 정말 우울할 때 나보다 더 우울하게 함께 하고, 심규선은 고통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희망을 보여준다. 신세는 이소라에게 많이 졌지만 초보 에디터로서 짧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정말 좋아했던 판타지 로맨스 ‘번지점프를 하다’에 대해 다 커버린 내가 신랄하게 비판해보기도 했고 여러 오피니언을 통해 웹툰과 웹소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웹.만.사’로 웹툰 생태계도 분석해보고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시카프에 방문해서 좋아하는 작가 사인도 받았다. 작정하고 웹소설의 두 기둥인 로판과 현판을 분석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서울에 갈만한 곳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 문화공간 안내서도 작성해보았고 ‘웃는 남자’는 도서와 뮤지컬 리뷰를 올렸다. 뮤지컬 리뷰는 타이밍이 좋아 네이버 메인에 올라가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영화 ‘웃는 남자’ 리뷰를 올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쉽다.

사람에 대한 두 가지 오피니언을 적어보았다. 하나는 나를 위해, 하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 서간체 형식은 정말 새로운 시도여서 업로드한 뒤에도 오래 고민했다.

이외에도 여러 문화초대를 받으며 프리뷰와 리뷰를 쓰면서 해당 콘텐츠에 대한 감상과 분석, 감상 팁 나눔을 할 수 있었다. 아트인사이트 외에도 홍보 차 문화 카페들에 글을 올리며 댓글로 독자들과 소통했다. 익명의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반응해준다는 것은 -심지어 긍정적이었을 때- 신비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자기표현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번에는 정말 일어나기 힘들 것 같다는 절망도 있었다. 전환점을 찍고 올라오고 있지만 이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안다. 내가 나를 증명하지 않으면, 나는 세상과 부딪히며 다시 꺾일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마련한 이 시간동안 그동안 머뭇거렸던 것들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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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글을 쓰는 것,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하며 주제에 맞추어 생각을 좁히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쌓은 것들을 가지고 여러 글감을 통해 ‘나’를 드러내려 한다. 간단한 글이 될 수도 있고 논문이 될 수도 있고 보고서나 뉴스가 될 수도 있겠지. 과거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실수가 있을 수 있고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두렵진 않다.

동시에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한다. 글을 쓰면서도 나 자신을 부양할 수 있는 다른 카드가 필요하다. 꼭 지금 일에서 자아 실현할 필요도 없다. 누구 말마따나 일은 일대로, 취미는 취미대로 살 수도 있고, 혹은 계속 직업을 바꿔나가며 꼭 맞는 일을 찾을 수도 있다. 둘 다 맞지만 둘 다 틀리다. 왜냐면 남의 말이니까, 그건 그 사람의 삶에서 우러나온 말이지 나의 것은 아니니까. 무엇이 옳은지는 내가 해볼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특별취급하기도 하지만 그 형태만이 전부는 아니다. 사회가 사람을 기계처럼 다룬다고 해도 우리는 기계가 아니므로 끊임없이 ‘나’를 표현한다. 일터에서, 일상에서, 가정에서 남과 다른 나의 개성을 말이다.

이것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 혐오하지도 않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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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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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라마
    • 모든 게 나였어. 그걸 깨닫는 데 정말 많은 삶을 흘려보내야 했어.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어. 하지만 이 밤 온전치 못한 자신을 인정하고 있어. 앞만 보며 달렸다고 생각한 시간들. 그 사이 가장 가까운 옆의 사람들을 힘들게 한 시간들. 이제 버리려해. 내 안의 조그맣고 약한 아이부터 보듬어주기로 했어. 고마워. 너의 진솔한 글에 한 발자국 무섭고 두려운 길을 걸어갈 용기를 얻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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