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요부가 아닌 예술가로, 궁: 장녹수전 [공연예술]

글 입력 2018.10.22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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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은 각이 없는 도형처럼 보이지만, 사실 눈에 띄지 않는 수없이 많은 직선들이 미세한 각을 이루며 모인 형태라고 한다.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 속에 적혀 있던 말이다. 어릴 때는 유리컵의 둥근 끝을 쓰다듬으면서 이 속에 숨어있을 수많은 직선들을 그려보고는 했다. 얼핏 보면 그냥 둥근 하나의 곡선 속에 얼마나 많은 선들이 존재할까?


사람을 바라보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 내 눈에는 그냥 둥그런 하나의 선만이 보이는데, 그 속에는 내가 볼 수 없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수많은 직선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직선들을 꺼내어 놓는 작품들은 직선이 어디로 향하든 언제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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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의 직선보다는 오래 전의 죽은 사람의 직선이 특히 더 꺼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어려운 만큼 더 눈길을 끌기도 한다. 오랜 세월 쌓여온 역사를 어떻게 뒤집어 볼까? 이번에 초대받은 무용극 <궁: 장녹수전> 역시, 연산군의 곁에서 세상을 호령한 요부였던 장녹수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마음이 끌렸다. 요부와 폭군이 아닌 예술가,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꺼내놓는 장녹수와 연산군의 직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프리뷰에도 썼다시피, 공연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면은 곤룡포를 입고 춤을 추는 녹수의 모습이었다. 곤룡포는 그냥 비단옷이 아니다. 그 속에는 조선의 팔도강산과 남자와 여자, 아이와 노인들이 모두 들어있다. 그 무겁고 날카로운 옷을 몸에 걸치는 일은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장녹수에게 감히 곤룡포를 입혀준 만큼, 그저 단순한 요부가 아닌 사람 장녹수로서 그려진 무대에서는 천민으로서 박해받던 이의 한, 온 세상을 손에 쥐었다는 얼떨떨한 설렘과 그를 휘감는 야망 같은 것들이 떠오르기를 바랐지만, 실제 공연을 접했을 때 안타깝게도 내 기대는 조금 과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언어로 서술된 역사 이면의 새로운 인물을 보이겠다는 연출가의 포부가 무색하게도, 그리고 공연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와는 별개로 <궁: 장녹수전>이 보여준 인물들은 기존의 역사 속 인물들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였다. 인물의 행보와 그 끝이 정해져 있으니 당연히 완전히 다른 인물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예술가로서의 장녹수를 보여주기에는 부족한 연출이 아니었나 싶다. 공연을 관람한 다른 사람들이 지적했듯 장녹수가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암시가 부족하기도 했을뿐더러, 장녹수의 재능을 알아보는 연산군의 예술적 안목 역시 좀 더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극의 포커스가 장녹수와 연산군이니만큼 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아가기는 하지만, 그들 사이에 오가는 기류는 그저 흔하디 흔한 사랑이나 결핍된 모성애의 충족 정도에만 그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충신들이 절대 악처럼 묘사된 부분이 없잖아 있기도 하다. 거기다, 예술가 장녹수의 후원자로서 제안 대군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했지만 그 역시 장녹수에게 연심을 품고, 키다리 아저씨 같은 흔한 인물상으로만 머물게 됐다. 어째서 여성 예술가에게 사랑은 끊이지 않는 걸까. 모차르트나 빈센트 반 고흐같은 남성 예술가들의 삶에서 누가 이 사람들을 사랑해주었는지는 그 누구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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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다루는 연출이 기대에 못 미치긴 했지만, 장면을 드러내는 연출은 그야말로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다. 곤룡포를 입고 신하들에 대적하는 장녹수의 춤이나 신하들의 상소문에 둘러싸여 목이 졸리는 연산군을 표현하는 연출은 미리 공개된 사진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숨죽이며 눈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감탄했던 연출은 바로 폐비 윤 씨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풀어내는 장면이었다. 사실 극 중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패이긴 하지만, 무언극인 대신 무대 양 옆 스크린으로 장면에 대한 설명이 제공되기 때문에 제안 대군이 귀띔을 해 주는 동작 정도로 암시하고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복잡한 궁중 암투를 오직 춤만으로 표현하기엔 벅찰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과 달리, 조그마한 인형으로 어린 세자를 표현한 것이나, 윤 씨가 쓰러진 뒤로 또다른 문이 열리며 대왕대비가 돌아보는 장면, 폐비 윤 씨가 사약을 들이키고 토해내는 붉은 천이 그의 피 묻은 소복이 되는 등의 상징적인 연출을 통해, 복잡한 스토리를 독창적이고 간단히 풀어낸 것이 가장 충격으로 남았다. 이 밖에도 장면 장면을 드러내는 데 있어 그 어떤 부분도 허술하지 않게 고심한 흔적이 보여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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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대했던 부분이 인물과 장면을 다루는 방식에 있었다면,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역시 언어가 없이 오직 몸짓으로만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언어 이전에 춤이 전하는 생동감이 있기 때문에 연극 보다도 뮤지컬을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오직 춤으로만 진행되는 공연, 그것도 생소한 전통 무용을 보면서 내가 과연 무언가를 깊이 느끼고 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없잖아 있었다. 이 점에서 공연을 보고 난 후의 감상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다. ‘괜한 걱정을 했다!’ 무용수들의 모든 춤사위가 아름다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두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공교롭게도 녹수가 첫 춤과 마지막 춤을 추는 장면들인데, 기녀로서 성장하는 녹수가 다른 기녀들과 장고춤을 추는 장면은 관객의 숨을 전부 빼앗아가는 기분이었다. 점점 빨라지는 장단 속에서 머리를 휘젓고 춤을 추면서도 박자를 잃지 않는 무용수들이 일사불란하게 모이고 펼치는 광경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녹수가 연산군과 한 배에 올라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직감하고 그에게 춤을 올리는 장면은 그의 첫 춤과는 다르다. 갓 예술가로 피어난 장녹수의 첫 춤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며 추던 장고춤이었다면, 인생의 끝자락에서 그는 모든 기력을 다한 듯 느릿하게 움직인다. 대사도 음악도 없기에 자칫하면 지루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이상하게 그 어떤 장면보다도, 손 대면 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손끝 하나하나의 조용한 움직임에서부터 무대의 전체적인 공기가 만들어지는듯한 긴장감에, 그가 무대 아래로 사라지며 죽음을 맞을 때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직 이 두 장면을 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공연을 관람할 의사가 충분할 만큼, 정말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마치며,



공연이 끝나고 바깥으로 나오니 출연자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길래, 다가가 사진을 찍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가까이서 본 연산군 역의 배우는 그가 무대 위에서 뿜어내던 광기로는 전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순한(!) 인상이셔서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무대 위 연산군과 장녹수 모두 남겨진 실록의 글자들 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라 ‘아, 이 장면은 나라면 이렇게 그렸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자꾸 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본질이 무용극인 만큼 아름다운 춤사위만으로도 이미 꽉 채워진 무대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연출은 모든 장면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언젠가 또다시 녹수의 무대를 찾지 않을까 싶다.



[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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