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두개의 넘버로 보는 뮤지컬'레드북' [공연예술]

문제 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글 입력 2018.10.2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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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슬퍼질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해"



2018년 가장 화제가 된 창작뮤지컬을 꼽으라면 '레드북'이 빠지지 않는다. 2017년 한국뮤지컬어워드에서 9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올해 2월 세종문화회관에서 3번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말이다. 라이센스 뮤지컬이 주를 이루는 국내 뮤지컬계에서 국내 창작뮤지컬'이 이토록 사랑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레드북'이 성공 할 수 있던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혹자는 '레드북'의 성공이 좋은 배우와 좋은 넘버(뮤지컬에 사용된 음악)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즘과 연관지어 레드북의 성공을 평가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레드북은 확실히 좋은 배우와 좋은 넘버를 가지고 있다. 또 레드북의 주인공인 '안나'의 이야기는 페미니즘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레드북을 보면서 느낀 감정들은 앞선 이유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조금은 부족하다. 내가 느낀 레드북은 그보다는 나를 포함한 모든 관객에게 평범하지만 한편으론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주인공 '안나'의 답을 알려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No.01 난 뭐지?



'난 뭐지?'는 극의 가장 첫번째 넘버이며 주연배우들과 앙상블의 안무와 함께 발랄한 느낌을 주는 넘버이다. 하지만 레드북은 첫번째 넘버부터 발랄한 곡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관객에게 극 전체를 꿰뚫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 넘버는 나를 '나는 무슨 사람인가?'라는 간단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야"라고 대답하기엔 조금은 어색하다. 내가 영원히 대학생인 것은 아닐 뿐더러 뭐가 평범한지 대답하기는 더욱 곤란한 일이다. 차라리 '그 애는 어떤 사람이야?'라는 질문이라면 오히려 대답하기 편할 것 같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누군가에 대해 얘기하고 때론 평가를 내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정의하는데는 익숙한 반면에 나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레드북'은 이렇게 대답하기 곤란하고 익숙치 않은 질문을 첫번째 넘버부터 뜬금없이 던진 후 극을 이끌어 나간다 이 질문에 대한 레드북의 대답은 뮤지컬의 마지막 넘버에 남겨둔 채로 말이다.





"우리는 나머지 

여긴 오직 세 종류의 사람들 뿐 

신사숙녀 그리고 여러분 

우린 여러분 다른 말로 

나머지 한꺼번에 싸잡아서 

가난하고 볼품없는 하루종일 일만 하는 나머지 

혹시 안나라는 여인을 아십니까? 

아이 그럼요 아주 상냥한 아가씨였어요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지금 어디 살고있는지 아십니까? 

글쎄 내가 그것까지는 모르겠네미안합니다. 아임쏘리! 

혹시 안나라는 여인을 아십니까? 

안나? 안나... 아 그 천하의 못 돼 처먹은 년?

지금 어디 살고있는지 아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벼락이나 맞고 확 뒤져버려라!

우린 여러분 다시 말해 나머지 

한꺼번에 싸잡아서 구질구질 그저 그런 나머지 

산다는 게 왜 이렇게 매일같이 힘든지 

고민해도 알 수 없는 모르는 게 마음 편한 나머지 나머지 나머지 나머지 

난 뭐지 난 뭐지 난 뭐지 

뭐긴 뭐야 나는 나야 나는 안나 

나는 구직자 이틀 전에 해고당한 구직자 

겨우 겨우 취직해도 몇 달 못 가쫓겨나는 구직자 

나는 외톨이 사람들은 내게 그래 또라이 

나같은 애 처음봤대 내가 너무 이상하대 외로워 

난 뭐지 난 뭐지 나도 아직 모르겠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나를 알고싶어

난 뭐지"




No.02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안나는 외설적인 소설 내용으로 인해 감옥에 수용되게 되고 재판을 기다리게 된다. 연인인 브라운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재판에서 정신이상을 주장하자며 안나를 설득하지만 그녀는 거절하고 만다. 안나에게 나라에서 추방당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떨어지면서까지 지켜야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은 극에 마지막 넘버로써 첫번째 넘버에 대한 안나의 대답을 보여주고 있다. 안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며 행복을 느낀다 '난 뭐지?'라는 질문에 '나는 야한 소설을 쓰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야!'


라고 그녀는 대답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보다는 당당하게 드러냄으로써 나의 진짜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넘버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이유는 안나가 나에게 직접 '나는 이런 사람인데 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니?'라고 묻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나를 포장하는데 익숙한 세상이다. 가끔 무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보면 마치 '오늘은 누가 가장 행복한가'를 두고 경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진짜 내모습과 내생각을 적기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지고 싶은 모습, 남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도 그 치열한 경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승자를 가릴 수 없는 경쟁에서 남는건 허무함이다.


물론 우리는 나를 예쁘게 포장해야 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기도 하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원하는 인재에 맞춰 자신을 이야기해야 하고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 보다는 교수님이 원하는 생각이 우선되어야 한다. 노래 가사처럼 세상은 나를 둘러싼 문제 투성이이다. 정답을 정해두고 그들은 나에게 '너는 너가 뭐라 생각하니?'라고 묻고 있다. 하지만 자신마저 세상이 원하는 답이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만약 그런 문제에 대한 정답이 있다면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나의 모습만이 정답 일 것이기 때문이다.





"난 늘 궁금했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난 늘 기다렸어

날 이해해줄 알아봐줄 한 사람 

사실 다 알고 있는데 

답은 내 안에 있는데자꾸 되물어 봤어 

나를 믿을 수 없어애써 모른 척 했어 

자신이 없어계속 외면해 왔어 

나를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살아온 남들과사랑한 이들이 너무나 소중한사람 

지금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중요한 사람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내가 나라는 이유로 죄가되고 

내가 나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문제 투성이 세상에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없이 맑은 시대에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를 지키는 사람미안해요 

브라운 나는 당신의 제안을 거절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당신과 같은 심장으로 숨을 쉬고 

당신과 같은 마음으로 꿈을 꾸고 

하지만 결국 당신과 다른당신이 아닌 사람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오현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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