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 그리고 음악, 가사 곱씹기 [음악]

시어와 노랫말 음미하기
글 입력 2018.10.1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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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성 중 하나는 외출을 준비할 때 지갑은 잊어도 이어폰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댄스, 발라드 등 장르뿐만 아닌 옛 90년대 음악부터 현재 아이돌 음악까지 폭넓게 듣는 음악 애호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굳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꼽으라면 ‘가사가 예쁜’ 노래를 말한다. 실제로 어떠한 노래는 가사가 정말 시적이다, 라고 생각하여 마음에 드는 구절은 메모를 하기도 하는데, 문득 노래와 시를 함께 음미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노래 중 하나씩 선정하여 가사를 살펴보고, 이와 어울리는 시를 한데 어울러 읽어보았다.




1. 부활의 <소나기>와 유하의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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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단편 소설 속에 넌 떠오르지

표정 없이 미소 짓던 모습들이

그것은 눈부신 색으로 쓰여지다

어느샌가 아쉬움으로 스쳐 지났지

한참 피어나던 장면에서 넌 떠나가려 하네

벌써부터 정해져있던 얘기인 듯

온통 푸른빛으로 그려지다

급히도 회색빛으로 지워지었지

어느새 너는 그렇게 멈추었나

작은 시간에 세상을 많이도 적셨네

시작하는 듯 끝이 나버린

소설 속에 너무도 많은 걸 적었네


-부활 <소나기> 中 일부-


1986년 데뷔한 록밴드 그룹 부활. 부활의 보컬이 바뀔 때마다 빠지지 않고 리메이크되는 노래가 바로 1993년 3집에 처음 수록된 이 <소나기>이다. 부활의 노래 중 가장 좋은 곡으로 늘 선정되는 곡이기도 하다. 90년대 생은 나는 부활의 역대 멤버도, 노래도 잘 모르지만 이 노래만큼은 여러 번 들어봤을 정도로 가사가 여운에 깊게 남았다. 비를 소재로 이별을 표현한 노래는 수없이 많지만 노래가 아닌 텍스트로 처음 접했다면 가사가 아닌 시라고 생각될 정도로-실제로 수많은 사람들뿐만 아닌 다른 가수들 또한 입을 모아 칭찬하는 가사라고 한다-가사가 참 시적이라고 여긴다. 이 노래와 함께 떠올렸던 시는 유하 시인의 <비가>이다.


비가 내립니다

그대가 비 오듯 그립습니다

한 방울의 비가 아프게 그대 얼굴입니다

한 방울의 비가 황홀하게 그대 노래입니다

유리창에 방울 방울 비가 흩어집니다

그대 유리창에 천갈래 만갈래로 흩어집니다

흩어진 그대 번개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흩어진 그대 천둥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내 눈과 귀, 작달비가 등 떠밀고 간 저 먼 산처럼

멀고 또 멉니다

그리하여 빗속을 젖은 바람으로 휘몰아쳐가도

그대 너무 멀게 있습니다

그대 너무 멀어서 이 세상

물밀듯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립니다

그대가 빗발치게 그립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유하 <비가> 전문-


소나기처럼 짧게 스쳐지나갔지만 <소나기>의 화자에게 끝없이 떠오르는 것처럼 <비가>의 화자 또한 ‘그대’를 ‘비 오듯’ 그리워한다. 하지만 ‘떠나가려’하고 ‘멈추’는 것처럼 그대는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지고, 숨어버리기에 ‘멀게’만 있을 뿐이다. 다만 소나기는 스쳐지나가는 비이지만 시 속의 비는 끊임없이 내리는 이미지를 환기한다. 이 비는 언제 그칠지 알 수조차 없다. 그렇기에 그대가 비 오듯 그립고, 빗발치게 그립지 않은 적이 없다는 구절이 더욱 시적으로 느껴진다. 그대는 너무 멀어서 비가 내린다. 비약이지만 비 내리는 풍경을 떠올리며 ‘그대’를 그리워하는 화자의 마음을 음미해보면 그대가 멀리 느껴지는 만큼 세차게 비가 내리는 것만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세상을 흠뻑 적셔버린 소나기처럼 <소나기>의 화자가 자신을 적셔버린 어느 대상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그대를 떠올리는 <비가>의 화자는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신승훈의 <애이불비>와 김소월의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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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를 떠나려는 이유를 굳이 알려하지 않으렵니다
그저 나 그대 가시는 그 길에 그대의 행복이 있길 바랄 뿐
눈물로도 그댈 잡아봤지만 그대를 많이 미워도 했지만
더 이상 내가 아니라 하기에 이제는 편히 보내주려 합니다

신이 내게 주신 행복이 여기가 끝이라 한다면

이제 눈물만 남았다 해도 그만큼 행복했으면 된 거죠

내가 사랑하는 님이여 더 이상 견딜 수 없음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내 이 사랑 끝내렵니다

그저 그대 가시는 길이 어둡고 힘든 길이라면

나를 태워 밝혀주리니 나를 따라 떠나가소서


-신승훈 <애이불비> 中 일부-


2002년 발매된 신승훈 8집에 수록된 이 곡은 제목부터 대놓고 ‘애이불비(哀而不悲)’로, 제목과 신승훈의 인터뷰, 각종 음악 평론가들의 의견에서 쉽게 알 수 있듯 시인 김소월의 ‘애이불비’ 사상을 모티브로 삼은 곡이다. 신승훈의 곡은 이 곡 외에도 1991년 데뷔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부터 김소월로 대표되는 애이불비의 현대판 변형을 이뤄왔다고 한다. ‘시는 노래의 오래된 미래’라는 말처럼 신승훈의 노래는 소월 시를 새롭게 부활시킨다고 할 수 있다. ‘애이불비’는 슬퍼도 그것을 겉으로 티내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가수 마야의 노래로도 잘 알려진 ‘진달래꽃’이 대표적인 애이불비의 시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전문-


다시 말하지만 평범한 교육과정을 밟은 한국인들 중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으리라 생각한다. 여성 화자를 내세워 이별의 슬픔을 반어적으로 표현한다는 해설은 학창시절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다. 화자는 자신을 떠나는 님이 원망스럽고 밉지만 겉으로 티내지 않는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 말하고, 심지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놓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가사에서도 이러한 정서가 잘 드러난다. ‘가시는 그 길에 행복이 있길’ 바라고, 그 길이 어둡다면 ‘나를 태워 밝혀’가면서까지 님을 생각하는 희생정신이 엿보인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 역겹다는 강한 어휘가 상당한 인상을 남기기에 이 시를 두고두고 기억하게 만드는 것처럼 님의 그 어떤 태도에도 님을 위해 희생하며 슬퍼도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화자의 ‘애이불비’는 그 자체로 시적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닮고 싶지도 않지만, 시가 쓰여진 시대와 이러한 고유한 정서를 현대적으로 변형하여 다시 그 의미를 되새긴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3. 아이유의 <밤편지>와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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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게요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나 우리의 첫 입맞춤을 떠올려

그럼 언제든 눈을 감고

가장 먼 곳으로 가요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버릴 것 같아

늘 그리워 그리워

여기 내 마음속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아이유 <밤편지> 中 일부-


작년 2017년 3월 발표된 이 노래는 오랜 시간 음원 차트 1위와 더불어 골든디스크 음원부문 대상 등 가수 아이유를 다시 한 번 부각시킨 노래라고 할 수 있다. 평소 아이유를 좋아하여 모든 노래를 다 찾아듣는 편인데, 이 노래는 아이유가 작사한 수많은 노래들 중 가사로는 최고라고 여긴다. 반딧불을 보낸다는 의미가 곧 사랑한다는 말이라는 화자는, 언젠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당신을 늘 그리워하며 반딧불 같은 일상 속 작은 것에 사랑한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언제나 당신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화자의 순수한 마음이 잘 드러나 노래를 듣는 내내 미소를 짓게 한다. 이러한 화자의 면모를 생각해보았을 때 딱 떠오르는 시는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였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전문-


화자는 달이 떴다는 단순한 이유로 전화를 준 당신에 의해 한없이 들뜨고 신나 있다. 반딧불을 창에 보내는 행위처럼, 이 시의 화자 또한 이러한 자신의 ‘사무쳐 오는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낸다. 평범한 밤이, 매일 뜨는 달이 당신의 전화 한 번으로 인해 세상 가장 ‘신나고 근사’한 것이 되고 있는 것이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화자에게 달을 핑계로 전화를 한 당신 또한 이러한 화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된다. 세상에 달이 떴다고 전화를 하는 사람은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닌 이상 썸이나 연인 관계에 있는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서로 연락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핑계는 없고, 결국 달이 떴다는, 강변에 달빛이 곱다는 이유를 대며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는 마음이 너무나도 예쁘다. 일상 속 스쳐지나가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랑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고픈 마음과 이와 잘 어울리는 은은한 밤의 풍경은 충분히 시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까지 순수하게 상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부럽기도 하다.


시와 음악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운율은 시에서 핵심요소이고, 시의 기원을 살펴보면 신과의 소통을 위한 노래에서 기원하였기도 하다. 우리는 시를 감상하며 마음의 울림을 느끼고, 인식이 넓혀지며 사유가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음악 감상은 단순 취미를 넘어 하루의 힐링이 되기도 하고, 좋은 가사를 음미하며 감성을 일깨우기도 한다. 시와 음악은 이렇게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진달래꽃’처럼 시의 가사를 그대로 인용하는 노래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애이불비’처럼 한 시인의 사상을 이용하여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도 한다. 좋은 시를 읽고 싶은 마음처럼 좋은 가사를 곱씹으며 마음의 울림을 느끼고 싶은 것, 그것이 음악이 널리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아닐까.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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